명아주나 비름 따위의 나물로 배를 채우는 사람은 성품이 마치 얼음처럼 맑고 구슬같이 깨끗하지만, 비단 옷과 흰 쌀밥을 먹는 사람은 심지어 종노릇까지도 달게 여깁니다.
조선 왕조 세종 때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이르고도 평생 청빈하게 산 사람으로 유명한 이는 황희(黃喜)정승을 첫째로 손꼽습니다.
황정승은 단벌 옷밖에 없었다고 하며, 그의 부인과 며느리도 나들이 옷이라고는 단 한 벌밖에 없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밖에 나가려면 옷을 번갈아 입었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어느 날 밤 갑작스럽게 대궐에서 내관이 찾아와서 “영상 대감, 상감마마께서 급히 들라시는 어명이옵니다.”
"무슨 일로 이 밤중에 부르실까?"
그런데 그 때 딱한 일이 생겼습니다. 단 한 벌밖에 없는 황 정승의 옷은 이미 빨기 위해 바지를 뜯어놓았습니다. 밤에 빨아 내일 아침까지 깨끗이 손질해서 입고 대궐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황 정승의 사정이 이러하니 대궐로 들어갈 때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부인, 그 뜯어놓은 대로 입고 가는 수밖에………."
그래서 황희 정승은 겉은 뜯어내고 솜과 안감만 붙은 옷을 입은 위에 관복을 차려 입고 급히 대궐로 들어갔습니다.
세종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를 부른 것이 아니라 황 정승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대신이 낮에 찾아와서 상감에게 이렇 게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 정승은 양털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다니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이 말이 사실인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 황 정승을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궐에 들어온 황 정승은 과연 듣던 대로 양털가죽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겉옷감을 뜯어낸 바지 속에 들어 있는 솜이 뭉실뭉실 붙어 있어 얼른 보기에는 양털 같았습니다.
“경의 바지는 양털가죽으로 지은 것이오?"
세종이 이렇게 묻자 황 정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하고 겉옷감을 뜯어내 솜으로 된 바지를 입고 오게 된 까닭을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허허, 그러시군요!"
세종은 마음 속으로 크게 감탄하고 황 정승에게 옷감을 내렸습니다.
영의정이라는 벼슬은 임금 바로 밑으로 신하들 중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였지만, 항상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는 곧은 성품을 지닌 그는 나라에서 주는 녹봉(봉급) 외에는 재물을 탐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만, 돈에 무릎을 꿇면서까지 돈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행동입니다.
돈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돈을 위해 태 어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저울질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이 아무리 깨끗하고 훌륭해도 돈이 없으면 남에게 무시당합니다. 그와 반대로 인격이 깨끗하지 못하면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온 갖 부끄러움을 당해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첨하기에 바쁩니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그 마음의 그릇에 맑은 생각이 항상 가득 차 있지만 인격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잘사는 사람의 마음의 그릇에는 교만이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차 있기가 쉽습니다.
** 이야기 채근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