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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비전을 이루어야 하는가?
성경/에스더 4:12-17절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에는 어떤 게 있을까?
경희대 겸임교수이자 성공학 칼럼니스트인 이내화 교수는 자기 경험담을 소개했다. 수년전 지방에 있는 모 대학에 가서 ‘성공취업’이란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의장에 모인 학생들의 태도에 자못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생들에 비해 이들의 자세가 엉망이었고, 한 절반 정도가 수업시간에 졸았다. 같은 돈을 내고 공부를 하는 대학생이지만 많이 달랐다.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오면서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에 있는 대학의 DNA가 다른 것일까? 아니면 학풍 탓일까? 내 강의가 잘못되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때 그가 내린 결론은 ‘습관의 차이’였다. 학생들의 차이엔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잠자는 시간’ ‘인내심’ ‘열정’등 3가지가 달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차이 같지만 성공의 무대에선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95%가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에는 사소한 습관 차이라는 것이다. 성공자에겐 행동이 있지만 실패자에겐 목표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왜 방주를 지어라고 하셨는가?
노아 480세 때에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120년 후에 있을 홍수심판을 위해 방주를 지으라고 비전을 주셨다. 노아는 120년 후에 있을 홍수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믿음의 민족을 이루어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318명의 군사를 훈련하여 포로로 잡혀 있는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한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갔으며 마침내 히브리 민족을 이루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왜 꿈을 주셨을까?
요셉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면서 살았다. 형제들의 미움으로 애굽에 팔려가는 비통한 신세가 되었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마침내 애굽 제국의 총리라는 오른다. 하나님은 왜 요셉에게 역경을 이기고 꿈을 이루게 하셨을까? 가족 구원과 세상 구원에 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세기 45:5-8절)
사도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 당시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여러 교파가 있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젤롯당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교파에 속하여 오시지 않으셨다. 교파를 초월해서 오셨다. 교파를 초월해서 일하셨다. 교파를 초월하여 제자들을 뽑으셨다. 대부분 서민 출신이었다. 기존 세력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직접 뽑으신 제자들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경에 입각한 개혁정신, 개혁신앙을 가진 일꾼들로 양육하셨다. 직접 현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본을 보이셨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서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썩지 않을 것을 위해 살라고 하셨다. 그것은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을 사랑하셨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꿈을 주셨다. 그 꿈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다.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의 위해 꿈을 꾸며 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한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배워야 하는가? 어떤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앞에서 소개한 신앙의 인물들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위하고 그리고 이웃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일이다.
주사파들의 꿈!
자유롭고 잘사는 대한민국에 주사파는 그들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다. 교수와 변호사들이 많다. 이정희,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서울대 교수, 한명숙 의원, 성공회대학 교수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1948. 8. 15일 건국을 부정한다. 6․25 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가장 나쁜 대통령으로 꼽는다. 왜냐하면 통일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통일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대로 가면 2020-2030년 사이에는 엄청난 이념갈등으로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북 좌파들은 적화통일이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했던 고려연방제를 꿈꾸고 있다. 2003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 했던 백요셉 씨는 북한을 찬양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주사파와 종북주의자 비판을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으로 매도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찬양하는 북한에 가서 '수령님 빅엿'을 외칠 용기는 있는가?"
주사파들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의 꿈은 사악한 것이지만,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혹독한 시련 속에서 굴하지 않고 먼저 사회적인 꿈을 이루고 난 후에 그들이 꿈꾸던 공산주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외면할 때, 가마솥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쏟아버릴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렘 1:13-14) 2600년 전 예레미야가 유다에게 경고했던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고 한국에게 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하늘 꿈을 이루어 가신 것처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우리와 우리 교회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반드시 꿈을 이루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이 꿈이야말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14절 하반절을 읽어보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무슨 말인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하만의 계략에 빠져 줄을 위기에 있는 흩어져 사는 유대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포로 자손들이다. 포로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었다. 훗날 모르드개는 2차 포로귀한 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여기 왕후의 자리(royal position)란,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보았다.
첫째/직임의 자리를 의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직임은 존귀한 직분이다. 그래서 royal position이라는 것이다. 목사, 장로, 권도사, 권사, 안수집사, 전도사, 집사, 전도대장, 관리장, 부장 등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 세우신 royal position이다. 이 존귀한 직임은 그 사람을 충성되어 여겨서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감사한다고 고백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그러면 왜 존귀한 직임을 주셨는가? 제자들에게 왜 고기 낚는 어부가 되지 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는가?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며,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화생으로 교회와 예수를 핍박하는 바울을 왜 사도로 부르셨는가?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성경은 직임을 허락하신 세 가지로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❶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❷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❸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to prepare God's people for works of service,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built up.“(엡 4:11-12) 여기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란,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도를 하는 사람으로, 도시 곳곳에 빌딩을 세우듯이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하라고 존귀한 직임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둘째/사회적 지위를 의미할 수 있다.
노아에게 왜 방주를 짓게 하셨는가? 아브라함을 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는가? 요셉에게 꿈을 주어 혹독한 고난 속에서 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는가? 처음에는 원망스럽고 사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요셉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모르드개는 본문 14절에서 에스더에게 하나님이 너를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후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만의 호의호식을 누리며 살 때, 하나님은 벌을 내리게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셋째/꿈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걸고 도전해야 한다.
본문 15-16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에스더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걸었다. 이렇게 생명을 걸어야 꿈이 이루어진다. 죽기를 각오하고 도전해야 이루어진다. 사회적 지위를 얻으라고 하신 것은 사회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청와대로 간 21세기 요셉, 주대준 장로
1989년 청와대 전산실 창설시 프로그램 개발 팀장으로 청와대 근무를 시작, 20여 년 동안 5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전산실장과 행정 본부장 등을 거쳐 경호 차장까지 지냈다. 청와대라는 특성상 한 사람이 20여 년간 주요 자리에서 지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직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살았던 그는 1991년부터 청와대 기독 신우회 창립이후 2008년 정년퇴직 때까지 신우회장을 맡았다. 퇴직 이후에는 자력으로 카이스트 교수로 들어가 7개월 만에 부총장직을 맡고 있다. ‘청와대로 간 요셉’이 지금은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교인 카이스트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부모를 여의고 고향의 단성 고아원에서 중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다. 대구로 올라와서 우산 공장에서 허드렛일과 소방서 사환을 하는 등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저히 잘 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의 ‘주대준’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그의 책 ‘바라봄의 법칙’에서 밝히고 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초등학교시절에 거제도 지세포리 교회에서 ‘주 예수’라는 간판을 보고 요셉의 꿈을 품게 되었다. 그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므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냈다. 주대준 장로는 바라봄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을 4가지로 든다. 약속의 말씀을 품은 것, 말씀 속 꿈과 능력을 바로 본 것, 어떤 도전과 환경적 어려움도 불퇴전의 믿음으로 뚫고 나간 것, 좌절할 상황 속에서도 이미 이뤄진 모습을 바라보고 입술로 선포하고 나간다고 한다.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한 ㈜에스씨엘 이상춘 대표이사의 이야기
1971년 경북 김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코앞에 둔 15세의 시골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주일학교부터 신앙생활을 한 소년은 버스 안에서 내내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나 부모님이 돈 때문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가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면 저처럼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이 없도록 돕겠습니다.” 21세에 독립해서 승승장구 하던 회사는 1980년 오일쇼크의 첫 위기를 만났으나 그동안 쌓아온 신용으로 부도는 겨우 막았다. 다시 잘되던 회사가 1990년 전국적인 노사분규로 2차 위기를 만났다. 이번에는 도저히 어려움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채무업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아내에 미안하다는 유서를 쓰는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성령의 강한 은혜가 임하며 그동안 돈 번다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던 것을 절절히 회개하면서 주님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자, 은행지점장이 부도를 막아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 회사는 연매출 1000억 원이 넘는 굴지의 회사로 거듭났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에스씨엘은 부천에 본사를 두고 화성과 당진, 중국 텐진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파주 소망교회 안수집사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8년, 사재 105억 원을 출연,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한 ㈜에스씨엘 이상춘 대표이사의 이야기다. 그 사이 출연금을 더 넣어 2012년 현재 111억 원을 보유한 상록수장학재단은 올해에만 350명의 학생에게 4억 여 원을 지급했다. 김천에 청소년전문 상록수교회를 설립했고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 난민수용소에 학교 두 곳을 지어주었다. 카자흐스탄에 병원을 지었고, 중국 심양에도 교회 2곳을 건축해 봉헌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땅을 매입, 기독교를 테마로 한 ‘성지순례길’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아도 하루아침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준비하고 도전해서 꿈을 이루어갔다. 2000. 12. 22일 성령의 말씀에서 그릇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첫째는 너희들이 준비하는 것이요. 둘째는 더 많은 유익을 주기 위한 목적이로다.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그 분야에 프로가 되어야 크게 쓰임을 받는다.
어떤 야생 물오리가 무리와 함께 날아가다가 혼자서 쉬려고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지붕 위에서 보니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집오리들이 앉아서 날지도 않고 주인이 주는 사료를 맛있게 먹으면서 한가로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물오리는 ‘나라고 저기서 못살 것 없지.’하고 집오리들과 섞여 살았다. 얼마 동안 그렇게 살다가 후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그는 깊은 고민이 빠져서 결심을 했다. ‘이러다가는 안 되지. 내 갈 곳으로 가야겠다.’ 다시 날개를 펴고 날려고 해도 날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몸에 기름이 졌고 날개는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관계로 무거운 몸을 띄우기에 벅찼던 것이다. 후회한 물오리는 날아가려고 발버둥 쳤으나, 결국 발버둥 치는 물오리를 집주인은 잡아먹고 말았다.
이것은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구원의 문제도 그렇고, 우리 비전 문제도 그렇다. 교회 비전도 그렇다. 성경을 통해서, 교회 역사를 통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교회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믿음과 지혜로 다시 도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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