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5장은 두루마리와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1절의 하나님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는 인류에 대한 심판과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봉해진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자가 없어서 요한은 슬퍼합니다(2-4절). 그럴때에 장로 중의 한 사람(이십사 장로는 창조주를 예배하고 섬기는 존귀한 천사들로 봄/조지 비슬리 머레이)이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합니다. 곧 ‘다윗의 뿌리’(사 11:1, 10)인 그리스도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이겼다는 의미로 이제 그가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실 수 있다고 합니다(5절).
그런 가운데서 요한은 6-7절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한 어린 양을 보게 됩니다. 그 양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그러면서도 살아 승리하여 ‘그 보좌의 중앙’에 서 있습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은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또한, 사53:7절의 도살된 어린 양, 곧 모든 인류를 위하여 무고하게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어린 양은 ‘일곱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뿔은 막대한 권능(시 75:4-7)과 왕의 신분(슥 1:18)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양들을 파멸시키려는 들짐승을 정복하면서 양떼를 건져내는 자로 메시아를 나타내는 당대의 묵시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또한, 스가랴 4:10절에서 ‘일곱 눈’을 가진 이는 바로 하나님이신데, 이는 곧 전지하심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동일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복음 16:7-11절(보혜사 성령에 대한 내용)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룹니다. 즉 구약의 약속과 묵시적 소망의 메시아가 ‘새 언약의 성취 자’로서 계시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8-10절에서 그룹과 장로들은 ‘새 노래’를 부릅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새 시대를 도입하셨기 때문입니다(참고, 사42:9-10). 예수님은 만방으로부터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비유는 값을 지불하고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상징합니다. 모형은 애굽으로부터 풀려난 이스라엘 해방의 상징인데, 구속 주의 핏 값으로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더 위대한 해방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을 받은 자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이 됩니다(10절). 그리하여 하나님의 옛 백성이 부르심을 받은 그 소명을 성취하게 됩니다(출 19:6, '너희가 내개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1-14절에서 천사의 무리가 어린 양에 대한 칭송의 노래를 이어 받습니다. 이 영광송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시작에서 그분의 권능과 복을 언급하고 있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죽은 자의 연역에 있는 모든 피조물도 마침내 천사와 천사장의 무리에 합류하여(13절)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6장은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입니다.
인을 떼는 것은 심판을 가져오지만, 이 심판은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모습의 전조입니다.
1-2절은 첫째 인 심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말 탄 기사가 복음의 승리를 표상한다고 주장하면서 막13:10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기사의 명백한 유사성에 비추어볼 때, 네 기사 모두 심판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듯 합니다. 이번 기사는 압도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2절).
3-4절은 둘째 인 심판입니다. 이 기사 역시 전쟁하는 힘을 가리킵니다. 첫 번째 기사가 침략하는 군대를 표상한다면, 이 두 번째 기사는 나라들 사이의 적대와 내전까지도 포함해서 분쟁이라는 일반적인 혼란을 표상하고 있습니다(4절).
5-6절은 셋째 인 심판입니다. 검은 말을 탄 기사는 기근을 가리킵니다. 기사의 손에 들린 저울은 식량 부족을 시사하며, 인용된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한 데나리온(‘하루치 품삯’으로 적지 않은 돈)에 밀 한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인데, 밀 한되는 한 사람의 하루치 식량으로는 족하겠지만, 식구에게 부족합니다. 보리 석 되는 좀더 먹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근근히 생계가 유지되는 정도일 것입니다. 반면,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말은 그런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려는 배려를 반영합니다. 계시록이 쓰이기 얼마 전에 로마 제국 안에 포도주는 풍성했으나 곡물은 갑작스럽게 부족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포도 경작에 제약을 가하고 곡물 수확 증대를 명령했던 일이 있었는데, 본문이 그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7-8절은 넷째 인 심판입니다. 네 번째 기사의 이름은 ‘사망’입니다. 에스겔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네 가지 고통스런 행위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칼, 기근, 사나운 짐승, 그리고 전염병입니다(겔 14:21). 그래서 이 본문의 사망은 전염병에 의한 죽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는 죽음으로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심판이 죄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히 9:27-28).
9-11절은 다섯째 인 심판입니다. 순교자들의 영혼은 ‘제물’로 바쳐졌기 때문에 ‘제단 아래에’ 있는데, 그들이 가진 증거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9절). 그리고 순교자들에게 주어진 ‘흰 두루마기’는 그들에 대한 세상의 정죄에 직면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사실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의 기도가 응답 되므로 끝날이 재촉되는 것 같습니다(10-11절).
12-17절은 여섯째 인 심판입니다. 세상 끝에 있을 우주적인 징조에 대한 묘사는 여호와의 날에 대해 말하는 상당수의 구약 구절에서 온 것입니다(큰 지진-겔38:19-20, 해가 검은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이 온통 피같이 되는 것-사13:10; 겔32:7-8; 욜2:10, 3:15,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것-사34:4, 바위 틈 사이에 숨은 것-사2:10, 산들을 향한 기도-호10:8). 이러한 ‘징조’들은 종말이 가까웠다는 징후가 아니라 이미 당도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17절). 15-17절의 모든 심판의 대상자들의 부르짖음은 제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의 부르짖음과 대조를 이룹니다. 마지막 날은 우주에 대한 궁극적인 권위를 가진 이의 정체와 어린 양의 저항할 수 없는 심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7절,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오늘도 주의 자녀 된 자로써 감사하며,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 하는 귀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첫댓글 장로 중 한 사람이 말하길,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의 인을 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눈을 들어 보았을 때 유대 지파의 사자로 소개된 그는 어린 양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그 몸에는 자신의 피로 사람들의 속량하기 위해 일찍이 죽임당하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5:1-10) 이 어린 양의 죽음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앞에서도 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모두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도와 대조적으로, 어린 양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땅의 임금들부터 종에 이르는 모든 자들이 산들과 바위가 그들에게 떨어지길 애원합니다. 죽음보다도 진노의 하나님앞에 서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6:12-17)
죄인과 의인의 운명을 나란히 놓고 보니,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을 만큼 무거운 죄의 무게를 벗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없이 설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의 선물인지 알것 같습니다. 하늘의 생물들과 장로들, 천사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 드리는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보니 내 기도의 내용 또한 하나님앞에 마땅히 드려야할 감사와 찬양이 얼마나 빈약한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을 만큼 죄의 무게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늘 이 은혜가운데 살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아 요한이 크게 울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이 온 피조세계에 바로 서게 되길 온 피조물들이 고대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롬 8:19).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권은 십자가와 부활로 본격적으로 행사되기 시작했고, 그 절정이 심판인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 심판은 전쟁의 과정에서 성도들의 희생이 따르게 되지만 그 길이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나라(백성)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땅에서 왕 노릇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보았어요 (5:10).
요한이 크게 울었던 이유가 하나님의 주권이 온 피조세계에 바로 서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는 것! 아멘입니다.
핏값에 대해 생각하며 거듭난 자로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를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서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날마다 감사와 기쁨가운데 거듭나며, 주님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그 피로 생명을 사서 만민이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자에게만 구원이 임함을 또한 믿습니다.
아멘입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자에게만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