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성씨 ♣
태초 우리나라 성(姓)의 시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잘 나타나 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성씨는 부여왕의 성인 해부루(解夫婁)와 해모수(解慕漱)의 해(解)씨이지요
이'해'씨는 보다 후대인 고구려의 시조성인 고(高)씨를 건너뛰어
제2대 유리왕부터 제5대 모본왕까지 쓰였어요
그리고 이 해(解)씨는 백제의 왕족인 해루(解婁),해구(解仇),해충(解忠)으로 이어지지요
다음으로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박(朴)씨
고구려 시조인 고주몽(高朱蒙)의 고(高)씨
가라 시조인 김수로(金首露)의 김(金)씨이지요
백제시조는 성씨는 없고 이름만 '온조'(溫祚)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신라의 제4대왕 석탈해(昔脫解)와 김알지(金閼智)에서 김(金)씨와 석(昔)씨를 다시 추가할수 있어요
위에 열거한 성씨들은 모두가 임금의 성(姓)이며 또한 모두가 해당 성씨의 시조(始祖)이지요
그리고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란 의미에서 해(解)씨라 하였고
고주몽(高朱蒙)은 고구려(高句麗)란 나라 이름에서 고(高)자를 따다 성을 삼았다고 하지요
그리고 박혁거세(朴赫居世)는 박처럼 생긴 큰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박(朴)씨라 하였으며
김수로(金首露)는 금알(金卵)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김(金)씨라 하였지요
김알지(金閼智)도 금궤(金櫃)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역시 김(金)씨가 되었어요
석탈해(昔脫解)는 "아기가 들어 있는 상자가 바닷가로 떠밀려 오는 것을
까치가 짖음으로 신호를 보내 한 노파에게 알려 주었다"하여 까치작(鵲)자의 앞부분인
'석(昔)'을 떼어다가 성씨를 삼았다"고 "삼국사기"에 적혀 있지요
그런데 원래 우리나라 토착민들은 성씨가 없었어요
계속적인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만 성씨를 가지고 있었으며
삼국시대 말기때에 와서 신라에서는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지요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년 전에 죽고없는 먼 조상님들(혁거세, 알지 등등)에게서
성씨를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지요
조선시대 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양반보다 양민.쌍놈(천민)들이 더 많았고
성씨를 갖고있는 사람들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어요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압력 덕분에 호적에 성씨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만들어 올렸다”는 그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문의 비밀”로 숨겨 두어야 했지요
그 당시 성씨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백성들은 양반제도가 비록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어렵게 얻은 “양반의 성씨”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1940년대에 일본이 “이제 조선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하고 앞으로 성씨로 인한 조선인 일본인 간의
차별대우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라 하였지요
성씨 자체를 “가문의 역사”로 생각하는 많은 우리 백성들은 당연히 반대하였고
일본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의 반대를 보고
“거참, 이상하다. 그깟 성(姓)씨 가지고 왜들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하네요
그런데 성씨에 별 의미를 두지않는 일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성씨를 만들어 신고한 사람도 있었지요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신청 첫날 아침에 맨 먼저 신고하였는데
이광수가 만든 성씨는 “일본 천황고향의 뒷산인 향구산(香久山)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향산(香山)이었지요
이광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성씨란 건 별 것 아니야”라는
자기네들의 전통적 인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는 못하였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초기만해도 성(姓)씨있는 양반은 10%뿐이 안되었는데
조선중기 양반계급이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평민들도 각 씨족 별로 구전 해오던
자료에 의하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토착민들은 지역별 연결에 따라
동일 씨족으로 족보를 가지게 되었지요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고 생활한 유랑민이거나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개똥이, 삼돌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에는 공명첩이라는 매관매직이 자행되면서 몰락한 양반들의 도움으로
평민과 천민들도 성(姓)을 가지게 되었지요
1909년 일제가 민적(호적법)시행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까지
그들이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제가 만들어 주었는데
그 때 가장 인기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 이, 박 등"이었다 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양반성인 김,이,박 이 갑자기 많아지게 된 것인데
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이들이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만들어 준것은 조선의 양반 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그리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노비를 양민화시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 이었다고 하네요
일례로 김좌진 장군댁 노비 100여명도 안동 김씨 호적을 만들어 가졌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양반집 법도는 엄격한 유교의 윤리로 교육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으로 행세하기는 행동거지며 언행이며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다 하지요
양반은 항상 따르는 권속들에 대한 책임감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중압감을 느끼며 생활하였으며
자신의 행동이 가문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오늘처럼 막된 행동이나 막 말을 할수가 없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번 양반의 명예를 잃은 가문으로 찍혀지면 자녀들의 출가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성씨가 그 사람의 도덕과 품행을 구속했다고 할수 있어요
그래서 법도와 예를 생명같이 여기고 고고한 삶을 살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는것이지요
따라서 천민은 흉내 낼수도 내려해도 할수없는 고도의 품행이 요구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양반계급이 타파되고 사대부는 무위도식 할때라
구태여 양반행세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였다 하네요
그래서 족보가 없거나 성씨만 양반입네 떠드는 사람들은 양반집의 돌쇠이었거나
그 마을 "개똥이"였을 확률이 높은것도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지요
그럼 여기서 우리나라 성씨에 대해 알아 보기로해요
한국의성(姓)은 본(本)을 필수요소로 하므로
각 성씨마다 한개 이상의 본관(本貫)이 있어요
한국의 성씨는 삼국시대에 중국의 성씨 제도를 차용한것이 많고
고려시대부터 족보를 만들고 성씨가 고정되기 시작했지요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경우도 있어요(複姓)
한국에서는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의 성(姓)을 가진 사람이
전체인구의 약 54%를 차지해 이들 성씨의 인구 비중이 매우 높지요
1985년에는 274개의 성씨 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286개로 늘어 났어요
그런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갑자기 성씨가 5,582개로 급증했어요
2000년의 286개에 비해 12배 이상 증가 되었지요
그것은 대부분 귀화성으로 한자가 없는 성씨가 무려 4,075개나 되고 있지요
그런데 한자가 있는 성씨만 따져도 1507개로 5.27배로 폭증하였어요
이는 귀화인이 한자로 등록한 경우도 있겠지만
2015년 전수조사가 예전과는 달리 본관이 다른 성을 각각의 성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라 하네요
아무튼 우리나라 본래의 성은 300여개가 정설이지요
우리나라의 10대성을 알아보면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인데
“김(金)” 씨는 우리 나라 인구의 21.6%인 992만 여명으로 제일 많으며
“이(李)” 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4.8%로 679만 여명으로 2위이고
“박(朴)” 씨는 또 그보다 훨씬 적은 8.5%로 389만 여명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 뒤를 잇는“최(崔),정(鄭)”씨는 4% 대이고
“강(姜), 조(趙), 윤(尹), 장(張)”씨는 2% 대이며
그리고“임(林)”씨부터 21위“전(全)”씨까지 1%대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3대 성씨를 빼고나면 성씨별 인구수가 거의 일정한 차이를 유지하고 있지요
중국이나 일본의 성씨는 1위부터 2, 3위의 분포가 비교적 고르게 나타나
특정 성씨로 인구수가 지나치게 몰리는 경우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1, 2위가 이상할 정도로 특별히 많아진 것은
1900년대초 처음 호적법이 시행될때 “양반이 되고 싶은”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기형적인 분포가 나타났다고 하지요
민족의 역사를 논할때 성씨가 무언가 하는것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고 하지요
일본인들은 당연히 성씨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착 같은 것이 거의 없어요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은 다르지요
어느집 가문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품을 가름하기 때문이었지요
일본인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일제감정기때 양반과 천민의 계급을 타파한다면서
“신분 표시가 없는 호적법”을 시행하였고 여기에“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운동을 전개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결과는 일본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어요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돌쇠, 밤쇠, 삼월이, 오월이..” 들은
일본처럼 새로이 성씨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이들 대부분이 그 동네 지주나 양반들에게 부탁하여
그 “양반님”들의 성씨를 얻어 와서는 관청에 신고하는 현상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이때에 김(金)씨나 이(李)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지요
세계 어느나라에도 특정 성씨가 총인구의 20%를 넘어가는 경우가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만
“김(金)” 씨만 21.6%이고 “이(李)” 씨는 14.8%로
세계에서 유래없는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아무튼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러이 이루어졌고
옛날 이야기에 그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구월이...”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무슨무슨 정승, 판서의 몇대 손”이 되어 버렸고
오로지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양반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또한 제사를 가장 많이 지내는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성씨도 없는 쌍놈들(천민)”은 제사고 차례고 지낼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모두 명절날이면 차례를 지내고 있지요
어찌보면 세시풍속이 변하여 자신의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리는것은 나무랄것이 없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양반 자손으로 지내고 있으니
그 많던 천민이나 노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참고로 5000년 전부터 성씨를 사용해 온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성씨별 인구 1, 2, 3위의 비율은 각각 7.4%, 7.2%, 6.8%로 되어 있어서
특정 성씨로 몰리는 현상은 없다고 하지요
중국은 인구 0.1% 이상을 차지하는 성씨가 모두 129개로 나타났는데
이 129개 성씨의 인구 합계는 중국인구의 87%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자연적인 종족번식으로는 특정성씨가 10%대를 넘기기가 불가능하다 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의 5대성(姓)을
가진사람이 전체인구의 약 54%를 차지하고 있다하니 무언가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는것이 아닐런지요
해서
조심스럽게 말하건데
집안에 족보가 없거나 종중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번쯤 곰곰 생각해 보심도 좋을듯 하네요
허기사 요즘 세태에 양반쌍놈이 무엇이 필요하며 설사 조상이 양반이었든
쌍놈이었든 이를두고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럼 여기서 우리나라 성씨의 분포도와 중국의 성씨를 비교해 보기로해요
金 : 21.59%, 한국 1위 (중국 64위)
한국 발음이 현재는 “김”이지만 옛날에는 “금”으로 읽었다는 주장도 있음.
현재 중국 배우 중에도 이씨 성을 가진 배우가 있는데 “금성무”라고 보도되고 있음
이 글자의 현대식 중국 표준발음은 “찐”임
李 : 14.78%, 한국 2위(중국 1위 7.4%)
한국 중국 합하면 1억이 넘어가는 전세계에서 1위인 성씨임
중국 북한에서는 “리”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만 “이”라고 읽고 있음.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영어로 쓸때에는 대부분 “Lee(리)”라고 쓰고 있음
박 : 8.47%, 한국 3위(중국 100위 내에서는 안 보임)
한자로 “朴”을 쓰기도 하지만 원래 “바가지”란 뜻의 순우리말 토종 성씨임.
“박혁거세”의 “박”은 “박만큼이나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은 말임
영어로 "Park" "Pak" 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나 "Paak" 이라고 쓰는것이 가장무난함.
최(崔) : 4.72%, 한국 4위(중국 58위)
정(鄭) : 4.37%, 한국 5위(중국 21위)
강(姜) : 2.27%, 한국 6위(중국 50위)
조(趙) : 2.14%, 한국 7위(중국 8위)
윤(尹) : 2.06%, 한국 8위(중국 95위)
장(張) : 2.00%, 한국 9위(중국 3위)
임(林) : 1.66%, 한국 10위(중국 17위/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오(吳) : 1.54%, 한국 11위(중국 10위)
한(韓) : 1.53%, 한국 12위(중국 26위)
신(申) : 1.52%, 한국 13위(고려태조가 하사한 성씨임.
일본으로 넘어가 정착한 일족이 있음)
서(徐) : 1.51%, 한국 14위(중국 11위)
권(權) : 1.42%, 한국 15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황(黃) : 1.40%, 한국 16위(중국 7위)
안(安) : 1.39%, 한국 17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송(宋) : 1.38%, 한국 18위(중국 23위)
유(柳) : 1.31%, 한국 19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
홍(洪) : 1.13%, 한국 20위(중국 99위)
전(全) : 1.07%, 한국 21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고려 왕씨 유래설이 있음)
고(高) : 0.95%, 한국 22위(중국 19위)
문(文) : 0.93%, 한국 23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손(孫) : 0.90%, 한국 24위(중국 12위)
양(梁) : 0.85%, 한국 25위(중국 20위)
배(裵) : 0.81%, 한국 26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조(曺) : 0.79%, 한국 27위(중국 27위)
백(白) : 0.76%, 한국 28위(중국 79위)
허(許) : 0.65%, 한국 29위(중국 28위)
남(南) : 0.56%, 한국 30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우리 나라 31위 이후의 성씨는 다음과 같음.
31-40 심(沈) 유(劉) 노(盧) 하(河) 전(田) 정(丁) 성(成) 곽(郭) 차(車) 유(兪)
41-50 구(具) 우(禹) 주(朱) 임(任) 나(羅) 신(辛) 민(閔) 진(陳) 지(池) 엄(嚴)
51-60 원(元) 채(蔡) 강(康) 천(千) 양(楊) 공(孔) 현(玄) 방(方) 변(卞) 함(咸)
61-70 노(魯) 염(廉) 여(呂) 추(秋) 변(邊) 도(都) 석(石) 신(愼) 소(蘇) 선(宣)
71-80 주(周) 설(薛) 방(房) 마(馬) 정(程) 길(吉) 위(魏) 연(延) 표(表) 명(明)
81-90 기(奇) 금(琴) 왕(王) 반(潘) 옥(玉) 육(陸) 진(秦) 인(印) 맹(孟) 제(諸)
91-100 탁(卓) 모(牟) 남궁(南宮) 여(余) 장(蔣) 어(魚) 유(庾) 국(鞠) 은(殷) 편(片)
101-110 용(龍) 강(疆) 구(丘) 예(芮) 봉(奉) 한(漢) 경(慶) 소(邵) 사(史) 석(昔)
111-120 부(夫) 황보(皇甫) 가(賈) 복(卜) 천(天) 목(睦) 태(太) 지(智) 형(邢) 피(皮)
121-130 계(桂) 전(錢) 감(甘) 음(陰) 두(杜) 진(晋) 동(董) 장(章) 온(溫) 송(松)
131-140 경(景) 제갈(諸葛) 사공(司空) 호(扈) 하(夏) 빈(賓) 선우(鮮于) 연(燕) 채(菜)우(于)
141-150 범(范) 설(?) 양(樑) 갈(葛) 좌(左) 노(路) 반(班) 팽(彭) 승(承) 공(公)
151-160 간(簡) 상(尙) 기(箕) 국(國) 시(施) 서문(西門) 위(韋) 도(陶) 시(柴) 이(異)
161-170 호(胡) 채(采) 강(强) 진(眞) 빈(彬) 방(邦) 단(段) 서(西) 견(甄) 원(袁)
171-180 방(龐) 창(昌) 당(唐) 순(荀) 마(麻) 화(化) 구(邱) 모(毛) 이(伊) 양(襄)
181-190 종(鍾) 승(昇) 성(星) 독고(獨孤) 옹(邕) 빙(?) 장(莊) 추(鄒) 편(扁) 아(阿)
191-200 도(道) 평(平) 대(大) 풍(馮) 궁(弓) 강(剛) 연(連) 견(堅) 점(占) 흥(興)
201-210 섭(葉) 국(菊) 내(乃) 제(齊) 여(汝) 낭(浪) 봉(鳳) 해(海) 판(判) 초(楚)
211-220 필(弼) 궉(?) 근(斤) 사(舍) 매(梅) 동방(東方) 호(鎬) 두(頭) 미(米) 요(姚)
221-230 옹(雍) 야(夜) 묵(墨) 자(慈) 만(萬) 운(雲) 범(凡) 환(桓) 곡(曲) 탄(彈)
231-240 종(宗) 창(倉) 사(謝) 영(永) 포(包) 엽(葉) 수(水) 애(艾) 단(單) 부(傅)
241-250 순(淳) 순(舜) 돈(頓) 학(?) 비(丕) 영(榮) 개(介) 후(侯) 십(?) 뇌(雷)
251-260 난(欒) 춘(椿) 수(洙) 준(俊) 초(肖) 운(芸) 내(奈) 묘(苗) 담(譚) 장곡(長谷)
261-270 어금(魚金) 강전(岡田) 삼(森) 저(邸) 군(君) 초(初) 영(影) 교(橋) 순(順) 단(端)
271-280 후(后) 누(樓) 돈(敦) 소봉(小峰) 뇌(賴) 망절(網切) 원(苑) 즙(?) 증(增) 증(曾)
281 삼(杉) : <남자 2명>
282 우(宇): <남자 1명> 소(肖)예(乂) 빙(氷) 경(京) : <여자 각 1명>
(이상 총 286개 성씨)
이 중 최근에 새로 생긴 성씨 중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재하여 그리 된것도 있고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또는 중국 사람들의 성씨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즙(汁)씨 성을 가진 분도 다섯병 밖에 안되지만 요즘에는 귀화인이 너무 많아
보통 1명이나 2~3명 정도 이지요
독일에서 귀화한 독일인 이한우씨의 “독일이씨”는 현재 3명이지요
지난 86년 귀화한 이참(李參·과거명 이한우·49)씨는 ‘독일 이씨’의 시조이지요
79년 기독교 관련 행사를 위해 방한했다가 눌러앉아 대학교수, 방송인
회사경영자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므로
‘독일 이씨’는 3명인 셈이지요
그 다음으로는 한국에 귀화한 미국인 로버트 할리씨로 “영도하씨”의 시조인데
자녀 3명을 합해서 모두 4명 이지요
또한 2000년 귀화한 러시아 대표 선수출신 골키퍼 신의손(申宜孫·45)씨는
별명을 한자로 옮긴 경우이지요
“구리신씨”의 시조인데 자녀 4명을 합해서 모두 5명이지요
러시아 이름은 사리체프지만 워낙 공을 잘막아 ‘신의 손’을 그대로 이름으로
만들었으며 4명의 자녀가 있어요
프로축구팀 안양LG 소속이라는 점에 착안 LG의 연습장이 있는 ‘구리(九里)’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인구 100명 미만인 ‘초희귀 성씨’도 42개나 되지요
1000명 미만인 성은 무려 112개에 달하지요
통계청이 확인한 100명 미만 성씨는 강전(岡田)씨, 뇌(雷)씨, 장곡(長谷)씨, 경(京)씨
빙씨, 삼(杉)씨, 예(乂)씨, 즙씨 등이지요
예컨대 즙씨는 일제시대 철도공무원으로 한국에 파견온 일본인 쓰지씨와
한국인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시조 즙간부(62)씨가 모친의 고향인 함경도 성진을
본관으로 즙씨를 호적에 등록한 것이지요
즙은 원래 일본 한자로 한국어 발음은 ‘십’이지만 호적에 올릴 당시 즙의 한국어
음이 없어 汁(즙)의 음을 빌렸다고 하는데 2000년 조사에서 즙씨와 같은 한자를
쓰는 십씨는 82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 외 태국태씨 몽골몽씨등 다문화가정이 늘다보니 희귀한 성씨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요
아무튼 귀화인의 성씨가 요즘엔 하루에 수십개씩 늘어 난다고 하니 머잖아 우리나라 성씨가
중국을 제치고 일본 다음으로 많아질 가능성도 있어요
기타 2음절 성씨
공손 - 앙암공손(仰岩公孫), 영동공손(永同公孫), 풍암공손(楓岩公孫)
남궁 - 함열남궁(咸悅南宮)
독고 - 광능독고(廣陵獨孤), 남원독고(南原獨孤)
동방 - 진주동방(晋州東方), 청주동방(淸州東方)
사공 - 군위사공(軍威司空), 효령사공(孝令司空)
사마 - 거평사마(居平司馬), 나주사마(羅州司馬), 이천사마(伊川司馬)
서문 - 안음서문(安陰西門)
석부 - 광릉석부(廣陵石扶)
선우 - 태원선우(太原鮮于)
영호 - 문화영호(文化令狐)
장리 - 남원장리(南原檣籬)
제갈 - 남양제갈(南陽諸葛)
황보 - 영천황보(永川皇甫), 황주황보(黃州皇甫)
아무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되어 있어요
전세계의 남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깜짝 놀라는 것이 두 가지라 하는데
한가지는 부인의 성씨 문제이고 또 한가지는 “부인이 남편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라 하는군요
“자다가 벌떡 깨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수 없는일”이라고 한다는군요
그들이 보는 한국은 거의 구제불능성 선천적 여성천국이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몇몇 여성들이 나라를 죄지우지 하고 있지요
다음편에는 "한국의 성씨" 2편을 올려 볼께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거사:조동렬(일송) *-
▲ 경주 김씨 조각조형물
▲ 청송 심씨 조각조형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