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들이 인도에 와서 보는 것들은 대부분이 이슬람 시대의 건축물이다.
인도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인도에서 이슬람 건축물만 보는 것에 대해서 황당함을 느끼게 되는데 바라나시와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는 이슬람의 그림자가 전혀 없다.
인도 그대로의 모습인 힌두교를 믿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인의 모습을 보는 곳이 이곳이다.
세계의 사람들이 인도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갠지스강과, 화장(火葬)을 한 시신의 재를 그 강물에 뿌리는 것, 그리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인도인들일 것이다.
이 바라나시가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고 인공위성도 자체개발해서 발사할 수 있는 나라이며,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같은 회사에 핵심기술자로 근무하는 사람들도 인도인들이 많을 정도로 과학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는 99단을 외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19단을 외우고 심지어는 25단까지도 외운다고 하니 수학적 두뇌는 세계가 인정하
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수학에서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나라도 인도의 수학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인 윤회를 믿으며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환경을 견디며 사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인도
사람들이다.
인도의 어느 도시나 다 그런 느낌을 받지만 바라나시는 더욱 더 그렇다.
보통인의 상식을 가지고는 바라나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곳에 여행을 가서 가트(화장터)가 있는 갠지스강둑으로 걸어가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도착해서 처음 맞는 느낌은 외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도 많지만 릭샤나 오토릭샤, 오토바이, 버스, 택시 등
이 내뿜는 매연에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이고 인도(人道)에도 사람을 헤치고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서 이 사람들이 무
엇을 해서 어떻게 해서 벌어먹고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을 보면 수행이니 해탈이니 윤회니 하는 그런 사상들은 사치(奢侈)일 뿐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급급하며 생존경쟁도 릭샤를 모는 사람들끼리 경쟁도 치열하다.
가족의 생계가 릭샤(인력거)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데 경쟁에서 낙오가 되면 가족이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 쉬고 갠지스 강의 밤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 갠지스강 바로 옆에 있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말이 식당이지 배낭여행객들
을 위한 간이 식당이다.)으로 가기 위해서 오토릭샤를 또 타고 가는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인도의 다른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도로가 막힌다.
택시에서 내리면 일단 거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는데 관광객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인도 사람
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것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일행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가이드가 특별히 주의를 준다.
식당을 찾아가는 뒷골목은 미로처럼 되어 있는데 한 번 길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을 정로고 복잡하다.
겨우 사람이 비켜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인데 우리가 가는 이 길로 갠지강 화장터(화장터르 가트라고 한다)로 시신들이 지나가
는데 시신이 지나가면 옆으로 비켜 줘야 한다.
시신은 대로로 가지 않고 뒷골목으로 가는데 천으로 감싸 놓은 시진을 올려놓은 시신을 네 사람이 들것으로 옮기면서 소리를 지르
면서 간다.
식당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음에도 두 번이나 시신을 운반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식사를 하는 짦은 시간에도 시신을 옮기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창문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한국 같으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바라나시라는 도시가 어
떤 곳인지를 알기 때문에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식사를 하고 나서 갠지스 강으로 가는데 그 길은 시신이 지나간 바로 그 길이다. 갠지스 강 가트 뒤에는 장작이 많이 쌓여 있는데
그 장작들이 화장을 위한 장작이라고 한다.
돈이 많으면 장작을 많이 사서 시체롤 온전히 태울 수가 있고 돈이 적으면 장작을 조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덜 탄 시체를 갠지
스 강에 버리게 된다.
화장대(火葬臺)를 가트(Ghat)라고 하는데 바라나시에는 100여개의 가트가 있으며 상류에 있을수록 비싼 가트라고 한다.
그래서 네팔의 카트만두의 바그마타 강에서도 화장을 하는 가트들이 있고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은 그곳에서 화장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강에 도착하면 보트를 타게 되는데 어둡기 때문에 강의 모습이 어떤지를 알 수 없고 가트에서 화장하는 모습이 멀리 보이고 어떤
가트는 축제를 하는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불빛이 화려하다.
몇 군데의 가트에서는 화장을 하는 중이라서 불길이 일어나는 곳과 불길이 사그라지는 곳들이 보이는데 관광객들은 근처에 갈 수
도 없고 가까이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어서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으로 나가서 강 가운데서 갠지스 강변을 보게 된다.
인도사람(힌두교)들이 죽어서 갠지스강에서 화장을 하는 것을 인생에 가장 큰 소망으로 여기고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을
소망한다는 것은 매스컴 같은 데서 보아서 알겠지만 사람을 태워서 그 재가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에 목욕을 그렇게 하는 것은
그 물에 목욕을 하면 前生(전생) 현생, 來生(내생) 등의 죄업이 모두 씻겨진다고 믿기 때문이며 죽어서 갠지스강에 재를 뿌리게 되
면 윤회의 사슬이 끊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 것이지 그들의 믿음이 옳고 그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
믿음이라는 것이 본래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을 초월하여 믿는다는 것이니...
믿음의 속성을 가장 잘 이야기 한 사람이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리우스파와 대결하여 아나타시우스파를 현재의 기독
교의 주류로 만든 터툴니아누스인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믿는다”
뒤집어 말하면 교리는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교리(敎理)라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든 이론이라는 의미인데.....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교리는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라는 말인가.....
결국 종교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이성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 가면 이성은 무용지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