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에드만’이 뭐냐고? 영화 제목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주인공 이름이 제목인 영화다. 일상 모습을 감독 특유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있다. 오늘은 이 영화에 꽂혔다.
내가 각본을 직접 쓰는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이번 영화처럼 감독의 사유를 영화 속에서 맛볼 수 있어서다. 이 영화는 감독 이야기부터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의 사진을 봤는데 딱하고 끌리는 게 있다. 소탈하고 스타일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올해 마흔 초반의 여자다. 만약 이 영화를 남자 감독이 각본 쓰고 연출했다면 난 이렇게까지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지진 못했을 거다. 왜냐고?
이 영화는 여자가 지닌 소소한 감각에서 나오는 에피소드가 많다. 이건 여자 감독만이 그려낼 수 있는 거다. 남자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참여한다면 대개 대사가 없고 무게감 있는 전개를 펼칠 거다. 그런데 토니 에드만은 그렇지 않다. 장면마다 여자 특유의 삶에 대한 끈적함이 담겨 있다. 게다가 감독의 유머는 이 영화를 생기 있게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내용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딸과 소원한 관계에 있는 아버지의 고군분투기인데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에 실망한 딸은 삶의 목적을 자신의 커리어 성공에 둔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딸 앞에 어느 날 실패투성이 아버지가 나타난다. 단순한 이 스토리를 감독은 유머를 자아내며 치유적으로 풀어냈다.
당신의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숨이 크게 쉬어 나오게 하였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영화를 보는 중반 이후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영화였다. 역시 왜냐고?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거대해 보였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의 모습은 왜소하게 비친다. 영화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실패를 맛본 많은 아빠는 실의에 빠져 하루를 살아낸다. 씁쓸하게도 나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한 그의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고난에 찼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세월과 함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겉멋만 들어 삶은 쉽고 단순한 거라고 떠들어대는데, 아버지는 긴 시간을 침묵으로 사셨다. 이 영화는 그렇게 부자 관계를 수 없이 되뇌게 했다. 힘이 점점 빠지지 않나? 그렇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힘은 시작된다.
현실 속 이야기를 영화는 유머 있게 그린다.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올해 가장 훌륭한 작품에 손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부녀 관계의 치유란 부분을 역시 훌륭히 다룬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딸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바쁘게 지낸다. 그런 딸에게 아빠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가선다. 소통될 수 없는 두 존재가 만나는 지점이다. 현실에서 우리도 다수는 아버지와 남과 남의 관계일 만큼 소통 없이 지낸다. 그 부분을 영화는 이야기하며 우리의 마음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어트린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나도 아버지와 그런 관계에 있지나 않나 생각하게 되고, 소통 방식을 궁리한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치유해 간다.
갑자기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란 말이 생각난다. 정신의 여백 없이는 어떠한 창조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도 떠오른다. 토니 에드만, 이 영화를 보며 바쁨에 빠진 사람들은 여유를 가져 보기를 권하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소원한 사람들은 치유되기를 바란다.
올해 본 가장 매력적인 영화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조금 보다가 흥미를 잃고 난 꺼버렸을 거다. 당장, 영화관으로 달려갈 일이다.
김신웅 심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