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좋은 수필의 조건
어떻게 하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까? 필자의 오랜 소망이기도 한 것을 위해 여러 선배들의 충고를 모아보았다.
김태길 선생은 <좋은 수필의 조건>에서
“문장에는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고, 내용에는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글이 좋은 수필”이라고 언급한다. 문학적 향기는 아무래도 글쓴이의 인품과 비례할 테고, 철학적 깊이는 작가의 내공과 관련되지 않을까. 철학적 깊이는 하루아침에 ‘뚝딱’ 채워질 수 있는 물통의 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단한 사색과 조용한 관조와 끊임없는 독서, 그리고 체계적인 문,사,철文史哲의 인문학 공부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수필로 가져오면 생각만 많이 하고 밑바탕이 되는 공부가 없으면 글이 쑥처럼 온 들판에 얕게 퍼져 벼리(중심사상)가 서지 않을 위험성이 있는 경우와 같다. 사유를 뒷밭침하는 ‘독서’는 과학적 근거, 문학적 전거가 되어 글의 뼈대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윤오영 선생은 수필 쓰기를 「양잠설」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 뽕을 덜 먹었다는 것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한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잠을 덜 잤다는 것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이야 대가지, 훌륭한 문장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고치를 못 지었다는 것이다. 일가一家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서 문장을 배웠다.
윤오영 선생의 「양잠설」에서 나도 큰 깨우침을 얻었다. 그동안 나의 독서라야 일관성 없는 남독에 불과하였고 이제야 작가의 사상과 문학의 연계성을 짚어보다가 겨우 그 뿌리의 연원을 짐작이나마 하게 된 것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영적靈的인 실재를 믿으며 자기 내면의 신성神性을 느끼고 더 큰 영혼과 소통해야 한다고 외친 콩코드의 철학자, 에머슨의 사상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닿아 있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황제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존재하는 것은 유전流轉하며 이것은 완벽하게 자연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인간 속에 있는 신성을 통해서 인간은 발전할 수 있는데 그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에머슨의 「자연론」, 소로의 「윌든」, 까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몽테뉴의 「수상록」은 모두 훌륭한 수필집이다. 몽테뉴의 철학은 고대 철학가 에피쿠로스, 호라티우스, 루크레티우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외친 프로타고라스 외에도 키케로와 세네카를 애독했고, 에머슨과 소로는 바가바드 기타, 유교, 힌두이즘의 동양철학에 심취하였다. 그들의 수필이 철학에 뿌리를 기댄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수필은 어떻게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수필은 뜻글이기 때문이다. 글 짓는 솜씨가 아무리 빼어나도 글감(사상)이 부실하다면 튼실한 고치집은 기대하기 어렵다. 글감(주제의식)도 좋고 고치집도 튼실하게 지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따 놓은 당상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주제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주제는 결국 인간을 묻는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맹난자 / 수필가. 에세이문학' 발행인 역임.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