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길
김 학 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신 아버지께서는 나도 아버지 뒤를 따르기를 바라셨으나 입학시험에 떨어져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로 나의 직업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하던 날 즐거워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에서 내가 경찰이 된 것을 대견해 하시는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 제복을 입은 모습을 한번쯤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외출시 사복을 입어야 하는 학교 규정상 그럴 수 없었기에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집으로 향하는 내 짐속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제복이 한 벌 더 들어가게 되었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알 수 없는 기대와 흥분으로 정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후 TV를 보시던 부모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멋있다’ 라는 한마디와 함께 무덤덤한 표정으로 계속 TV를 보시는 것이었다. 기대와 다른 상황에 실망스러웠지만 19살의 나이에 육사에 들어가셔서 40년 가까이 군복을 입고 살아오신 아버님과 당신의 아내인 어머니께는 그런 모습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여름휴가라는 즐거움 때문에 그 날의 실망감은 금새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휴가의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이면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집안을 이리저리 헤메이다 서재의 책상밑에서 어머님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고 그 속에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적어놓고 계셨다.
오늘 아들이 경찰복을 입은 모습으로 집에 왔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던 날 난 너무 기뻤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답답하고 어려운 걸까? 너무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명예의 길을 가려고 하는 아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외로운 그 길에 그 녀석의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시 해 왔던 ‘명예’ 라는 단어가 그 날 이후 나에게는 큰 화두가 되었고, 이제 종착지를 알 수 없는 ‘명예의 길’ 의 입구에서 그 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려 하는 것이다.
명예란 무엇인가?
명예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도덕적․인격적 존엄에 대한 자각 및 타인의 그것에 대한 승인․존경․칭찬”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쉽게 말해서 명예란 스스로의 가치기준이나 행동양식을 확립하고 이를 행할 때 그에 대한 타인의 좋은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찰관으로서 우리는 삶 속에서 올바른 가치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생활을 견지하여야 하며 스스로가 세워놓은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항상 자기 자신 내부의 그릇된 생각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가족의 신뢰,조직내에서 상관과 부하의 신뢰, 그리고, 국민의 신뢰이며, 바로 그러한 것들이 모여 명예가 되는 것일 것이다.
명예란 경찰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법을 집행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관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하고 한 차원 높은 윤리의식과 신념 그리고 행동양식이라는 가치기준이 요구될 것이며,경찰조직의 간부로서 나에게는 여타 경찰관들 보다 그 기준에 대한 더 큰 정도의 실천이 요구 될 것이다.
장미꽃을 직접 경험한 자만이 장미의 향기와 그 가시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하듯이 나는 아직 명예의 향기와 아픔을 알수가 없다. 하지만 앞으로 경찰관으로서 나의 삶에 있어서 나의 조국과 사회의 안녕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하여 항상 가치기준을 점검하고 그 기준을 실천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 할 수 있을 때 나의 삶은 명예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며, 나의 제복과 계급장은 더 이상 의복의 일종이 아닌 경찰정신으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 구석구석에 감히 “나는 명예로운 대한민국의 경찰간부다”라고 소리높여 외쳐본다. 叡智
첫댓글 퍼가도 될런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