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
시에 미혹되어 살아온 지 30년이다. 여전히 시는 알 수 없는 물음표이고, 도저히 알지 못할 허공의 깊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 ‘시적인 것’의 탐색이야말로 시로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라 믿는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모든 시적 담론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시의 성채를 위해 ‘시적인 것’을 반죽하거나 구부러뜨릴 수도 있다. 이 책은 내 누추한 시 창작 강의 노트 속의 ‘시적인 것’을 추려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시인이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의 나라라면 적어도 시적인 일들이 곳곳에 넘쳐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비시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움직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인이 되는 일을 단순히 개인적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장신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혹시 글 쓰는 자의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를 쓰는 기술과 훈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조금 따져보고 싶었다. 특히 조선 후기의 문인들 가운데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등의 촘촘하고 감동적인 산문을 읽고 배운 바가 많다. 여기에다 중국 시론의 유구한 토론 과정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로부터 들어온 근대적 시학의 결핍을 동아시아 시학의 전통으로 메울 수도 있으리라는 작은 기대감이 생겨났다. 이 책에서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시 창작방법과 글쓰기 전반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점검을 시도해보고자 하였다.
2008년 5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한겨레에 연재한 원고에다 대폭 손질을 가하고 내용을 보탰다. 시인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도 못하고 시들을 함부로 인용한 죄가 크다. 독자들께 시작법과 더불어 한국어로 쓴 시의 정수를 맛보는 즐거움을 과외로 선사하고 싶었다. 이 책의 모든 오류는 나의 것이고, 질책은 여러분의 것이다. 미흡한 것은 눈에 띄는 대로 차차 바로잡아 가려고 한다.
2009년 봄 안도현
머리글
폼페이의 한 귀족 저택에서 발굴된 여성 장신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