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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본문 : 살후1:3-4
<장점을 보라>
어떤 사람이나 다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림자도
동일한 크기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장점이 있으면 그에 비례하여
약점(단점)도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야지,
단점만 보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결국 인간관계가 파탄 나고 맙니다.
장점을 보고 그 장점을 격려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 하고....
단점은 권면하되 조용히 기도해 주는 것이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서로 어두운 면을 보지 마시고
밝을 면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약점에 대해서는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적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그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교하지 마시고 그 교회에 주신 은사(장점)를 보고
칭찬하고 격려하면 더 좋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그 연약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세워진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의
장점과 약점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의 장점에 대하여 감사와 격려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3-9절).
또한 그들에게 약점이 있음을 깨닫고
교훈하고 기도하였습니다(10-12절).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그러면 바울이 감사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첫 번째 장점은 무엇입니까?
3절b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란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었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와서 전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행17:1-3>
1절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간 동안(세 안식일),
그리고 얼마동안 야손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구약성경이 고난과 죽임을 당한 뒤에
부활하실 메시아를 예언했다는 것,
둘째,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예, 그들이 믿은 것은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메시아(그리스도)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해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나
성경에 예언된 대로 삼일 만에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아(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믿은 믿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더욱’ 자랐다는 말은 이전 보다
더 자랐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편지를 썼을 때보다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났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은
디모데가 소식을 가져온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칭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 그들의 믿음은
아직 공고한 것이 아니기에,...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방문하기를 원했습니다.
살전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디모데를 통해 그들의 믿음이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사그라지지 않고...
도리어 자라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체와 같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믿음은 생명체와 같다는 것입니다.
자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포는 끊임없이 갱신을 합니다.
이 갱신의 시간이 느려지면서 늙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늙는 것도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장이 멈추면 죽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자라나지 않으면 퇴보하고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믿음)을 씨에 비유하여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타시고 많은 군종들이
해변에 모였을 때에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막4:3-9>
3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절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절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절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절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그런데 군중들이 떠나고 예수님과 제자들만
남았을 때에 제자들이 비유의 의미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14-20절>
14절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절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절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절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그렇습니다. 동일한 씨이지만
어디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결실의 정도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복음(말씀)이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지지만
자라는 정도가 다 다릅니다.
저는 이 비유를 통하여
‘씨 뿌리는 자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비유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씨 뿌리는 자’와 ‘씨들’과
여러 가지 ‘땅들’입니다.
그중에서 우리 주님은 자신을
‘씨 뿌리는 자’로 생각하셨습니다.
이 비유 속에 담겨 있는
주님의 마음은 이런 것입니다.
세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땅에 뿌려지기만 하면
이전의 실패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결실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설적인 홈런 타자는
베이브 루스(Babe Ruth)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714개의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물론 이 기록은 후에 다른 사람에 의해 깨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홈런왕’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또한 ‘삼진 왕’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는 무려 1330개의 삼진을 당했다고 합니다.
홈런의 거의 배 정도의 삼진을 당한 것입니다.
지금도 프로야구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의 타율이
겨우 3할 정도입니다.
결국 7할은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사역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늘 비유를 확률적으로 따지면
4번 중에 3번은 실패했습니다.
75%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길 가와 바위와
가시덤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의 수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다니며
복음의 씨를 뿌리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다면
우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분적인 낭비와 일시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승리를 믿으며 계속 뿌리면.....
언젠가 풍성하게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저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말씀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서 금방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강단에 서는 이유는,
한 사람의 좋은 땅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에 뿌려진 씨가 백배의 결실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만한
그런 좋은 땅을 만날 기대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라기는커녕 퇴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시면 .....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는데 ....
그 귀신이 쉴 곳을 얻지 못하여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와 보니 ....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기에
나가서 저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1:24-26>
24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절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절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퇴보하다 못해 이전보다
더 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더욱 자랐다”고 하는 것은
정말 감사할만한 일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믿음이 자라야 한다는 것에
강력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스스로도 믿음이 성장해 가기를
강력히 소망하였습니다.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또한 성도들에게도 강력하게 권고하였습니다.
고전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이런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 영적인 부모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가장 기쁠 때가 언제입니까? ..
자녀들이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균형 있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반면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녀를 낳기는
낳았는데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균형 있게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Adult child(성인 아이)란 말이 있습니다.
밥은 잘 먹어 몸집은 큰데,
나이는 어른인데 ....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그에 못 미치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또 육체적으로는 건강한데, 지적으로,
영적으로 그에 못 미쳐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물론 그런 자녀도 내 자식인 것만은
틀림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하지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환란 중에도,
그가 전한 복음의 씨가 싹이 나서
더욱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바울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에서 성장하라>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려면
이것에서부터 성장을 가져와야 합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골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경말씀, 설교를
계속 들을 때 믿음이 자랍니다.
둘째, 봉사와 헌신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교회, 사회, 가정)에서
그 말씀이 실천되어야 합니다(교회 봉사, 사회봉사).
어린아이가 자라 그 가족을 부양하듯이...
세상의 학문이나 기술도 이론을 배우면
반드시 실습을 해야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엡4:11-12>
11절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날마다 갱신되어야 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세포가 계속해서 재생하는 것처럼...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우리 금산교회가 믿음에서
더욱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성도님들의 삶의 자리(현장)에서
그 말씀이 교훈이 되어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저와 성도님들을 통해...
우리 금산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도 확장되고 자라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