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시를 쓰는 당신에게
시를 써온 시간과 마음을 이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시를 쓰고자 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려 오랫동안 품어온 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아직도 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를 말하는 시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행복하다. 이 책은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시적인 것을 건져 올리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시의 언어를 다루고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에 가닿고 싶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시를 나누는 시간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사는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방법론이다. 시를 이미지의 산물이라고 한다거나, 시인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묘사의 중요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만큼 많은 이들이 좋은 묘사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묘사와 설명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이미지에 갇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묘사> 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경적 묘사는 물론이고 낯설게 다가오는 심상적 묘사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조립시점을 통해 전위적인 작품을 이해하고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현대시의 난해함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진술은 가장 많이 오해하는 시 언어이다. 흔히 시인의 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직접 말하는 것을 진술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진술> 편에서는 비유와 상징으로 기능하는, 우회적인 표현으로서의 진술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시적 진술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시적 사유의 세계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 편에서는 감정과 연계하여 화자의 문제까지 다뤘다. 감정의 과잉은 시를 처음 쓰는 이들만 저지르는 오류가 아니다. 오랫동안 시를 써온 경우에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의 기본은 감정의 절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묘사와 진술을 할 수 없다.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도 감정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시는 감정에서 시작한 이후 언어로 제시된다. 따라서 감정을 제대로 다뤄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수사> 편에서는 이론적인 수사법 대신 실제 시 쓰기에 도움이 되는 창작 방법론을 설명했다. 시의 언어가 실제로 작동하는 사례를 통해 시를 구축하는 방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묘사 진술 감정 수사』를 통해 많은 분이 시의 세계와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씨앗이 된 『묘사』와 『진술』은 권혁웅의 『환유』 정끝별의 『패러디』, 구모룡의 『제유』 엄경희의 『은유』 등과 함께 출간한 '시인 수업' 시리즈의 일부로 그동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슬로우북 출판사의 후의로 개정증보판을 내게 되었다. 『묘사』와 『진술』을 합하여 시 언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여기에 <감정>, <수사>편을 추가하여 시와 시 창작 방법론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시를 이해하고 쓰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시 창작이론과 방법론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돌아가신 스승을 생각한다. 오규원 선생님. 이 책은 오규원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선생님과 함께했던 지난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안경 너머에서 빛나던 선생님의 눈빛과 명동, 남산, 연구관 등의 공간이 떠오른다. 곁에서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스무 살의 내 시를 처음 호명해준 것도 선생님이었고 나의 시론과 창작 방법론을 갖게 된 것도 선생님 덕분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시의 언어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묘사와 진술, 감정과 수사를 통해 저마다 담고 있는 시와 만났으면 좋겠다. 고정관념을 접어두고 이 책을 따라간다면 좋은 시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려는 마음만으로도 시에 대한 마음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시를 쓰고자 마음먹었다면 이미 시의 자리에 놓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디 좋은 시의 영토에 당도하기를 바란다.
2023년 여름
조동범
2025. 3. 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