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빚지는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그러려면 지역구도라는 지형이 아닌 다른 지형을 만들어서 그 지형에서 총선과 대선을 치루어야 한다. 유시민 새책 '(가제)국가란 무엇인가' 의 저술 배경이다.
** 필자 주 : '국가란 무엇인가' 책 이름에 '가제' 호칭을 한 것은, 이글이 쓰여진 시기가, 새책이 발간된 4월말 보다 훨씬 이전인 3월19일에 쓰여졌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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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 가 남긴 후유증은 심각하였다.
탄핵을 강행한 다수 야당들이 곧바로 실시된 총선에서 이른바 '탄핵역풍' 을 맞아 소수로 전락하고, 소수였기에 힘이 없어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했던 여당이 의회 다수당을 점하는 '역전'이 벌어진 것이다.
탄핵역풍의 총선으로 다수를 점하게 된 여당은
"사필귀정" 이라고 정의했고, 호사나
떨기 마련인 정치학자들은 누가 먹물 아니랄 까봐 " 다수 횡포로부터 소수 보호" 라는 그럴듯한 학문적 정의를 내렸다. 전부 거짓말이다.
" 다수로부터 소수의 보호 " - 라는 거짓된 명분을 걱정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딱 한 사람 있었다. 바로 다수의 횡포로 인해 탄핵을 당한 당사자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청와대 뒷산에서 탄핵반대 촛불의 거대한 물결을 보면서 여당이 다수가 되어도 의회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 고 걱정하였다.

노대통령의 걱정은 맞아떨어졌다. 다수가 되었지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소수로 전락한 야당 한나라당의 몽니부리기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녔다. '탄핵역풍'의 학습효과가 이번에는 거꾸로 다수여당의 발목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후의 재보선에서 42전 42승 무패 전승으로 소수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국민들은 언론에서 불러준 멘트를 앵무새처럼 복창한다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보호" 라고 말이다. 솔직한 속마음을 내보이기 보다는 언론이 미리 정해준대로 복창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정해준 대로 복창하는 국민들의 인터뷰를 받아서 내보내는 언론과 학자들은 악어의 미소를 지으며 '견제와 균형을 아는 성숙된 국민의식" 이라고 호사를 떤다. 그야말로 쇼를 하는 것이다.
" 다수로부터 소수의견 보호 " 그리고 "견제와 균형" 과연 이것이 국민의 심판이나 국가의사결정에서 작동되는 것이 맞나? 이것이 맞는다면 이제는 거꾸로 다수가 된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 을 앞세워 힘으로 강행하는 전횡은 어째서 묵인되는가?
의문은 여전히 계속된다. 가정해보자, 지금은 소수인 야당이 차후의 총선이나 대선에서 승리하여 다수가 된 다음에, 한나라당이나 이명박정권이 저지른 오류를 단죄하고 후퇴시킨 시스템을 다시 복원할 때,이명박정권이 내세웠듯이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를 내걸고 힘으로 밀어 부칠 수 있을 까? 이명박에게 묵인해 주었듯이 그때도 묵인이 될까? 천만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라는 걸 삼척동자도 안다.
차기의 총선이나 대선에서 현재의 야당진영이 다수가 되고 지금의 여당인 한나라당이 소수가 된다면 한나라당 세력은 또다시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보호" 를 명분으로 내걸고, 온갖 정치공세를 동원하여 몽니를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몽니는 또다시 '견제와 균형' 이라는 거짓 포장으로 둔갑되고 언론과 학자들의 옹호를 받을 것이다. 격투기 국회는 여전하고, 이어지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또다시 선거의 (여)왕이 탄생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과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보호' 라는 명분이나 명제는 이렇듯 자기들 필요할 때마다 숨바꼭질하는 '거대한 쇼~' 인 것이다. 이런 '거대한 쇼~' 가 지속되는 한 총선에서 승리하여 의회 다수를 점하거나,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되찾아 온다 해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시민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무엇이 거대한 쇼~이고, 거대한 쇼~ 의 장막 뒤에서 국민들의 의사 - 즉 '국론'이라고 포장되는 힘에 작동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언론도 알고 학자도 알고 모두 다 안다. 그렇다 지역구도다. 현재 한국의 거대 정당이 모두 지역구도에 기반한 정당이다.
선거 때 마다 '선거간섭(?)위원회' 가 공익광고로 내거는 것은 '선택은 정책으로" 이다. 그런데 막상 정책을 얘기하면? 선거간섭(?)위원회가 선거법위반이라며 단속한다. 이게 한국이다.
이 선거법 누가 만들었나? 양대 정당이다.
즉. 한국의 양대 정당은 정책의 차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 무슨 차이를 원하나? 지역차이다. 이게 본색이다.
그러므로 '정책대결' 이라는것은 쇼~ 일 뿐 진짜는 '지역대결' 이다. 이것이 '거대한 쇼~' 이다.
다수당이건 소수당이건 정책으로 합의하고 승복하지 않는다. 합의와 승복을 결정짓는 것은 의회세력판도가 아닌 것이다. 기실은 지역세력판도다. 극한 투쟁 아니면 야합일 뿐이다. 이것이 실체다. 나머지는 쇼~ 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유발한 실체는 지역감정세력이다. 노무현대통령 재임시절 의회기능 마비를 야기하고, 작동하지 못하는 의회를 보다 못해 '대연정'이라는 제안을 하게 한 것, 그것 역시나 철벽같은 지역구도에 막힌 때문이다. 그 이유는 노무현 자신이 지역구도를 화두로 삼아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지역구도 타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슬로건에서 타파는 쏙~ 빠지고 지역만 여전히 남아서 노무현의 발목을 잡았다. '국토균형발전' 이라는 해법 역시나 국민들의 귀에는 지역얘기로 들리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백약이 무효다. 지역을 화두로 삼아 승리한 원인이 지역으로 인해 지지층 붕괴를 초래한 바로 같은 원인인 것이다.
실체로 작동하는 것이 여하하건 간에, 총선이든 대선이든 지역구도나 지역가치를 이용한 승리는 결코 승리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승리해 보았자, '다수결의 원칙' 은 또다시 '소수의 보호' 라는 겉포장을 둘러쓴 지역대결세력의 몽니에 발목 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역에 빚지는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지역에 빚지지 않은 승리여야만 수구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지역가치가 아닌 국가가치, 지역의 정의가 아닌 국가의 정의라는 구도를 창출해야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지역구도라는 지형이 아닌 다른 지형을 만들어서 그 지형에서 총선과 대선을 치루어야 한다. 유시민 새책 '(가제)국가란 무엇인가' 의 저술 배경이다.
** 필자 주 : '국가란 무엇인가' 책 이름에 '가제'호칭을 한 것은, 이글이 쓰여진 시기가, 새책이 발간된 4월말 보다 훨씬 이전인 3월19일에 쓰여졌기 때문임.
(최초 포스팅 게시판- www.moveon21.com )
글쓴이: 아프로만 / 작성일자: 2011년 3월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