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4일(33키로 걸은날)
6시 45분 출발하자 비가 그쳤으므로 사흘간 걸쳤던 판쵸를 벗어 던지고 걸으니 몸이 가벼워진 듯 하다.
두시간 남짓 걸어 알레(Arre)에 도착하기 직전 제법 가파른 언덕을 넘어 내려가며 배가 고파 한손에는
하몬 덩어리와 바게뜨를 들고 다른 손에는 지팡이와 물병을 들고 걸어가며,
바게뜨를 한입 물어 뜯고 나서 손에 쥔 바게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바게뜨 속에 커다란 공기 구멍 두개가 보였던 것이다. 그까짓 공기구멍이 왜 웃음을 터지게 했을까?
스스로의 꼴이 쓸모없는 공기구멍 같아 보였을 것이다.
모든 주민은 일년에 반 파운드의 빵을 순례자에게 적선하여야 한다는 법률이 16세기에 시행 되었기
때문에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빵집과 바르가 많다는 알레에 들어서자 이상한 구호가 내눈을 끈다.
구호 윗쪽의 남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가리비 문양 만든 것과 노랑 화살표가 까미노 방향 표시다.
이곳 부터 길 잃어버리기 쉬운 도시 지역을 5키로 남짓 40대의 프랑스 아저씨와 함께 걷게 되었는데
이 아저씨는 프랑스 가이드북을 들고 불어로 지꺼리고, 나는 영어로 말하며, 친절한 현지인의 도움도
받은 뒤
드디어 11시경 매년 7월 6일부터 14일 까지 열리는 황소몰이 축제(San Fermin Festival)로 유명한
빰쁘로나(Pamplona)에 도착하여 도심으로 들어가니 이 아저씨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다.
고행길에 나선 남편을 면회(?) 온것이다. 유럽사람들 에게는 이런 경우가 많은것 같았다.
도시에 들어 왔으니 바르를 순례하며 유명하다는 리오하(Rioja) 적포도주와 따빠스 안주도 맛보고,주
민들도 만나 풍습도 익히고, 어제 신세진 이스돜 일행에게 저녁도 사면서 친분을 다지는것이 좋겠지만,
사흘간 배낭 메고 자연에서 지냈더니 넘치는 상점과 관광객들이 왠지 생소하고,저녁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이르다.
도심을 지나 공원벤치에서 양말을 고쳐 신고 다시 걷기시작했다.
나바라대학 캠퍼스에서 셀료 받으려다 사무실이 닫혀서 시간만 허비 했다.
<<쎄요>>
((스페인어로 Sello : 영어로 Stamp : 알베르게, 교회, 바르, 박물관등 순례자가 방문한 곳에서
끄레덴씨알에 찍어주는 방문 확인 스템프:
순례의 목적지인 싼디아고 대성당의 순례사무소에서 순례인증서(꼼뽀스뗄라 혹은 꼼뽀스뗄라나)를
발급할때 순례자의 순례 경로를 심사 하기 위한 일종의 경로 확인 도장이다.))
끄레덴씨알과 쎄요
햇빛이 강렬해 졌으므로 배낭에다 젖은 양말과 셔츠를 옷핀으로 주렁 주렁 매어 달고 다시 걷기 시작
하니 발바닥이 뜨거워 오기 시작한다.
씨수르 메노르(Cizur Menor)알베르게를 지나며 이곳에서 잘가 생각하다가 쉬기엔 너무 이르므로
더 걷기로 했는데, 오산이었다.
다음 알베르게까지 12키로 이상 남았는데도 내 발과 신발을 너무 과신 했던것이다.
<<순례 와 신발>>
((내가 신은 등산화는 영국제 가죽과, 이태리 비브람 창과, 미국 고어텍스 안감으로 만들었다는
광고를 보고 8년전에 제법 비싸게 산 것으로 그동안 지리산 종주도 하고 대청봉도 몇번 올라 내 발에
길들여 졌고,
국내에서 하루 30키로씩 이틀간 걸어 보기도 했고 평소 걷기를 좋아 해서 발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그 정도로도 까미노 걷기에는 역부족 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얇은 양말 두 켤레를 신거나 이중창 양말 한 켜레만 신었으나, 까미노에서는 물집을 방지
하려고 이중창 양말을 두 켜레씩 신었더니 물집은 안 생겼지만 구두가 꽉 끼어 발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져서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즉 내 등산화는 내 구두보다 한치수(5미리) 큰 것 이어서 길어야 2-3일 걸리는 국내 등산에서는 적당
하지만
몇 주가 소요되는 까미노 걷기에서는 두치수(1쎈치)가 큰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간 뜨거운 발을 이끌고 2시 20분경 뻬르돈 언덕(Alto del Perdon)을 자전거 끌고 오르는 사람 보다
더 힘들게 기어 올랐다.
저 아래 가까이 보이는 우떼르가(Uterga)마을까지 급경사 굵은 돌자갈 길을 팔딱 팔딱 뛰어도 보고,
엉거주춤 어기적 거리며 내려가
3시 30분 사설 알베르게인 까미도 델 뻬르돈(Camino del Perdon)에 투숙(10유로)하여 등산화 벗고
스포츠쎈달로 갈아 신으니 살것 같다.
이 알베르게에는 바르도 있고 침대에 제법 깨끗한 린넨도 깔아 주고 담요도 깨끗한 것을 제공하고
남녀 구분 샤워실, 변소, 안락의자가 있는 거실등 순례자로서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시켰는데 코스별 선택 범위도 넓고 맛도 좋은 편이었다.
다만 손님이 별로 없는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아 인사도 안받고 잘난척 하던 카나다 늙은이와 이 영감
보다 늦게와서 합석하여 영어 연습하는 듯 한 스페인 할멈이 내용도 없는 얘기를 너무 크게 떠들어서
포도주 맛이 가신게 아쉽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 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 이겠지만...
첫댓글 몸성희 건강하게 돌아오신것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장거리 산행도 같이 가시면 좋겠어요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