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권력의 원리'를 생각한다 ㅡ명제 0. 클러스터링, 권력 이전에 군집이 있었다
- 국민주권 그리고 지구촌이 일상적으로 위태로운 시대, 새롭게 권력을 설계하자
개미굴 앞에 서다
여름날 공원의 돌 하나를 들어올려 보자. 그 아래에서 개미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개미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듯하지만,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전체가 하나의 의지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무리는 알을 옮기고, 어떤 무리는 통로를 막으며, 어떤 무리는 위협의 근원인 당신을 향해 달려든다. 명령을 내리는 자가 없다. 그러나 혼란은 없다.
개미 한 마리는 보잘것없다. 뇌의 크기가 모래알만 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개미 군집은 다르다. 수십만 마리가 이루는 집단은 온도를 조절하고, 식량을 비축하며, 전쟁을 치르고, 심지어 농사를 짓는다. 잎꾼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굴 속으로 운반하고, 그것을 배지로 삼아 버섯을 재배한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하기 수천만 년 전부터 개미는 이미 농부였다.
개미 한 마리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개미 군집은 갖는다. 이것이 군집화(clustering)의 첫 번째 신비다. 모이면 달라진다.
에드워드 윌슨이 발견한 것
개미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가 있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2021)이다. 그는 개미를 연구하다가 진화론의 오래된 난제와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단순하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는 개체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개미는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개미는 평생 알을 낳지 않는다. 번식을 포기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직접 남기지 않으면서 오로지 여왕개미와 군집을 위해 일하다가 죽는다. 왜 이런 일이 진화했는가.
기존의 설명은 '친족선택(kin selection)'이었다. 1960년대 윌리엄 해밀턴이 제안한 이론으로, 같은 여왕에서 태어난 일개미들은 유전자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에, 동생의 생존을 돕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윌슨도 한때 이 이론을 지지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윌슨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친족선택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너무 많았다. 2012년 윌슨은 《지구의 사회적 정복(The Social Conquest of Earth)》에서 자신의 과거 입장을 뒤집으며 선언했다. "그 아름다운 이론은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대안은 집단선택(group selection)이다.
핵심 논지는 이렇다. 자연선택은 개체에만 작용하지 않는다. 집단 전체에도 작용한다. 더 잘 협력하는 집단은 덜 협력하는 집단을 이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집단의 특성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개미 군집이 '초개체(superorganism)'처럼 작동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군집 자체가 하나의 선택 단위가 된 것이다.
윌슨이 말하는 '진사회성(眞社會性, eusociality)'은 이 원리가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다. 진사회성이란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사회 형태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협력해서 새끼를 돌보며, 번식 개체와 비번식 개체로 역할이 분담된다. 개미, 꿀벌, 흰개미가 여기 속하고, 윌슨의 충격적인 주장에 따르면 인간도 진사회성 동물이다.
지구상에 100만 종이 넘는 곤충이 있지만 진사회성을 진화시킨 종은 스무 종 남짓이다. 그 극소수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지구상 전체 개미의 무게는 나머지 모든 곤충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많다. 열대 우림 일부 지역에서는 개미와 흰개미가 전체 동물 생물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한 종의 영장류가 6만 년 만에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윌슨은 묻는다. 왜 하필 이 종들인가. 무엇이 이들을 지구의 정복자로 만들었는가. 답은 하나다. 집단으로 행동하는 능력, 즉 클러스터링의 힘이다.
개체선택은 이기심을 낳는다. 집단선택은 이타심을 낳는다. 이 두 힘이 충돌하면서 우리 안에 영웅과 비겁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가 생겨난다. 윌슨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내면은 "개체선택과 집단선택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전쟁터다.
우리가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 집단을 구하고, 때로는 집단을 배신해 자신을 챙기는 것은 변덕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수억 년 진화가 우리 안에 새겨 넣은 두 가지 본능이 매 순간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긴장 위에, 권력이 자란다.
꿀벌의 민주주의
꿀벌의 세계는 개미보다 더 정교하다.
봄이 되어 군집이 커지면 꿀벌 무리는 새로운 집을 찾아 이동한다. 이때 수백 마리의 정찰벌이 먼저 흩어져 적당한 장소를 탐색한다. 각 정찰벌은 돌아와서 '춤'으로 자신이 발견한 장소를 보고한다. 춤의 활기와 지속시간이 그 장소의 품질을 나타낸다.
좋은 장소를 발견한 정찰벌은 오래, 활발하게 춤을 춘다. 다른 벌들이 그 춤을 보고 해당 장소를 직접 확인하러 간다. 마음에 들면 합류해 함께 춤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춤을 추지 않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여러 장소 후보들에 대한 '지지'가 경쟁한다. 최종적으로 무리 전체의 75% 이상이 한 장소를 지지하게 되면, 비로소 이동이 시작된다. 여왕벌이 결정하지 않는다. 다수결도 아니다. 정보가 집합되고, 검증되고,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최선의 선택이 떠오른다.
생물학자 토머스 실리는 이것을 가리켜 "꿀벌의 민주주의"라 불렀다.
여왕벌은 군주가 아니다. 여왕벌의 역할은 알을 낳는 것이다. 군집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집단 전체의 정보처리 과정이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개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밑으로부터 솟아오른다.
이것이 군집화의 두 번째 신비다. 모이면 지혜가 생긴다.
군집화의 조건
개미와 꿀벌이 이처럼 정교한 집단을 이루는 데는 조건이 있다. 무작정 모이는 것이 아니다.
첫째, 소통이 있어야 한다. 개미는 페로몬으로, 꿀벌은 춤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소통이 끊기면 군집은 순식간에 혼돈으로 빠진다. 개미 군집에서 페로몬 흔적을 인위적으로 교란하면, 개미들은 같은 원을 반복해서 돌다가 지쳐 죽는다. '개미 죽음의 원(ant mill)'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소통이 없는 집단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 개미 군집에는 여왕, 병정, 일개미, 정찰개미가 있다. 꿀벌 군집에는 여왕, 수벌, 일벌이 있고, 일벌 안에서도 나이와 시기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면 군집은 효율을 잃는다. 역할이 나뉘어야 전체가 기능한다.
셋째, 공동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개미와 꿀벌을 하나로 묶는 것은 유전적 근연도(近緣度)다. 같은 여왕에서 태어난 개체들은 유전자를 공유하며, 군집의 생존이 곧 자신의 유전자 생존이다. 이 생물학적 이해관계가 군집을 단단하게 결속시킨다.
소통, 역할 분담, 공동의 목적.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질 때 군집은 단순한 개체들의 합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된다.
클러스터링은 왜 커지는가 — 터친의 발견
그렇다면 군집은 왜 점점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가. 역사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피터 터친이 이 질문에 답했다.
▷ 피터 터친 Peter Turchin, 1957~. 러시아 출신 미국 진화생물학자·복잡계 역사학자. 수학적 모델로 문명의 흥망을 연구하는 '클리오다이내믹스(Cliodynamics)'를 창시했다. 저서 《초사회성》(Ultrasociety, 2016).
터친은 《초사회성(Ultrasociety)》에서 인류 역사 1만 년을 추적하여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진 것은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라 전쟁의 압력 속에서였다. 작은 부족들이 더 큰 적과 마주칠 때, 살아남는 것은 더 잘 협력하는 집단이었다. 협력하지 못한 집단은 정복당하거나 흡수되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군집의 규모는 가족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제국으로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터친은 이것을 "전쟁이 협력의 산파였다"는 역설적 문장으로 압축했다.
이 발견은 클러스터링의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군집은 그저 모여서 커지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압력, 특히 생존을 위협하는 압력이 군집을 더 큰 군집으로 밀어 올린다. 명제0이 말하는 "군집화는 생존에서 출발하여 문명을 향해 나아간다"는 문장의 역사적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터친의 통찰에는 동시에 어두운 함의가 있다. 전쟁이 협력의 산파였다면, 지금 인류가 마주한 핵전쟁의 시대에 그 산파술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과거에는 패배한 집단이 흡수되고 살아남은 집단이 더 커지는 식으로 클러스터링이 전진했다. 그러나 핵무기 시대의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모두를 소멸시킬 수 있다.
인류는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낡은 산파술 없이 새로운 클러스터링—지구 공동체로의 도약—을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이 책이 뒤에서 다룰 지구촌 권력 설계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간, 가장 복잡한 군집
인간도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개미나 꿀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군집을 이룬다.
개미와 꿀벌의 군집화는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이끈다. 개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군집의 일원이 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군집화는 의식적 선택을 포함한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할지를, 어느 정도는 선택한다. 가족이라는 출발점은 선택이 아니지만, 그 이후의 집단들 — 친구, 직장, 공동체, 국가에 대한 충성 — 은 의식과 의지의 영역을 포함한다.
이 선택의 여지가 인간 군집화를 복잡하게 만든다. 개미는 군집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집단을 떠날 수 있고, 다른 집단으로 옮길 수 있으며, 여러 집단에 동시에 속할 수 있다. 한 사람이 가족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특정 종교의 신자이고, 노동조합원이며, 특정 정당의 지지자일 수 있다. 정체성이 중첩된다.
그리고 인간의 군집에는 언어가 있다. 개미의 페로몬, 꿀벌의 춤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복잡성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허구를 공유할 수 있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인간 군집화의 비밀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믿는다"는 공유된 이야기 — 신화, 종교, 국가, 화폐 — 가 혈연도 지연도 넘어서는 거대한 집단을 가능하게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수백만 명이 같은 국기 아래 모인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같은 화폐를 신뢰한다.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대륙을 가로질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이것은 개미와 꿀벌이 결코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인간은 상상된 공동체를 실제 군집으로 만드는 유일한 종이다.
군집화가 권력에 앞선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출발점에 도달한다. 권력은 군집에서 태어난다. 군집이 없으면 권력도 없다. 홀로 있는 존재에게 권력은 없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은 아무것도 지배하지 않는다. 권력은 반드시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둘이 모이면 이미 어떤 형태로든 힘의 관계가 발생한다. 셋이 모이면 더 복잡해진다. 수백만이 모이면 그것이 국가가 된다.
그러므로 권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군집화를 이해해야 한다. 왜 모이는가. 어떻게 모이는가. 모임이 어떤 구조를 만드는가. 이 질문들이 권력 이해의 토대다.
개미는 생존을 위해 모인다. 꿀벌은 번식과 생존을 위해 모인다. 인간도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모였다. 혼자서는 맹수를 이길 수 없었고, 혼자서는 긴 겨울을 버틸 수 없었다. 모여야 살았다. 군집은 생존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군집화는 생존을 넘어섰다. 생존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인간은 더 큰 목적을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더 좋은 삶, 더 공정한 세상, 더 아름다운 문명. 이 목적들이 군집의 규모를 키우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 권력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클러스터링, 문명의 0번째 원리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란 개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며 집단을 형성하는 현상이다. 물리학에서는 입자들이 모여 별이 되고 은하가 된다. 생물학에서는 세포들이 모여 기관이 되고 생명이 된다. 사회학에서는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고 문명이 된다.
클러스터링은 우주의 원리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원리이고, 사회의 원리다. 모임이 있어야 구조가 생긴다. 구조가 있어야 기능이 생긴다. 기능이 있어야 목적이 실현된다.
인간의 군집화, 즉 클러스터링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권력은 그 다음에 온다. 사람들이 모이고, 그 모임 속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해지고, 의사결정을 위한 구조가 생기고, 그 구조 속에서 권력이 자라난다.
그러므로 권력의 이야기는 클러스터링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개미굴의 정교함에서, 꿀벌의 춤에서,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에서.
우리가 왜 모이는지를 알면, 우리가 무엇을 위임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위임하는지를 알면, 권력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자.
명제 0 — 권력이 있기 전에 군집이 있었다. 군집화는 생명의 원리이자 문명의 원리다. 인간의 클러스터링은 생존에서 출발하여 문명을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권력을 탄생시킨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