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2회 ― 재봉틀보다 빠른 입
1978년 3월.
K예술대학교 의상디자인과의 첫 수업 날.
송강인은 강의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바지 뒤를 슬쩍 만져 보았다.
멀쩡했다.
어제 하미송이 꿰매 준 바로 그 나팔바지였다.
물론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세 번이나 뒤를 확인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한 번.
왼쪽으로 돌아서 한 번.
마지막으로 거울을 두 개 맞대어 한 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숙집 아주머니가 물었다.
"학생, 뭐 잃어버렸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꾸 엉덩이를 봐?"
"확인할 게 있어서요."
아주머니는 잠시 강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 처음 올라오면 다 그래."
강인은 묻고 싶었다.
대체 뭐가 다 그렇다는 건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왠지 설명이 더 길어질 것 같았다.
강인이 강의실로 들어서자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쪽이다, 나팔바지!"
박도윤이었다.
강인은 못 들은 척했다.
"야! 송 나팔!"
강인은 계속 걸었다.
"송 엉덩이!"
강인이 멈췄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도윤이 싱긋 웃었다.
"왜? 이제 들려?"
강인은 도윤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너 오늘부터 내 친구 아니다."
"어제도 그런 말 했잖아."
"오늘은 진짜야."
"좋아. 그럼 친구 말고 형제 하자."
"싫어."
"가족은 버리는 거 아니다."
강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도윤이 갑자기 강인의 바지 뒤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인이 움찔했다.
"왜?"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바라보았다.
강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야."
"응."
"왜 보는데?"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뭔데?"
"어제보다 잘생겨 보이는데."
강인이 벌떡 일어났다.
"죽을래?"
도윤은 웃으며 옆자리로 도망갔다.
그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순간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김태석 교수였다.
쉰을 넘긴 나이.
검은 터틀넥에 짙은 재킷, 은빛이 섞인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눈빛.
대한민국 패션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별명도 있었다.
'무서운 교수님.'
이유는 간단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김태석 교수는 교탁 앞에 섰다.
강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도윤조차 입을 다물었다.
강인이 속삭였다.
"너도 조용할 줄 아는구나."
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살고 싶어."
김태석 교수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거기."
강인과 도윤이 동시에 허리를 폈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나?"
도윤이 즉시 대답했다.
"아무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강인이 옆에서 말했다.
"했습니다."
도윤이 강인을 바라보았다.
배신당한 표정이었다.
김태석 교수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였지?"
강인이 대답했다.
"얘가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김태석 교수는 잠시 강인을 바라보았다.
강인도 교수를 바라보았다.
긴 침묵.
그리고 교수가 말했다.
"나도 자네가 그러길 바라네."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도윤이 강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첫날부터 찍혔다."
강인이 대답했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나는 왜?"
"네가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걸 왜 교수님한테 말해!"
"물어보셨으니까."
도윤은 이마를 짚었다.
"너 서울 생활 오래 못 하겠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김태석 교수는 칠판에 커다란 글씨를 썼다.
옷.
그리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옷이란 무엇인가?"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또."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시대와 문화를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김태석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교실 앞쪽에 앉은 최현우가 손을 들었다.
"인간의 욕망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학생들이 감탄했다.
"와."
"역시 최현우."
학생회장 최현우.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실력, 발표 능력까지 갖춘 의상디자인과의 엘리트였다.
그 옆에는 오세나가 앉아 있었다.
재벌가 막내딸.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완벽주의자.
세나가 작게 말했다.
"답이 너무 길어."
현우가 물었다.
"별로야?"
"틀렸다는 건 아니야."
"그럼?"
"교수님은 한마디를 물었는데 넌 논문을 발표했잖아."
현우가 피식 웃었다.
"질투하나?"
세나는 앞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1등은 2등을 질투하지 않아."
현우의 미소가 사라졌다.
"지난 학기엔 내가 1등이었어."
"0.2점 차이로."
"그것도 1등이야."
"축하해. 평생 간직해."
두 사람의 조용한 전쟁이 시작됐다.
김태석 교수는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감각입니다."
"창의성입니다."
"열정입니다."
"관찰력입니다."
"노력입니다."
김태석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맨 뒤에 앉은 강인을 발견했다.
"거기."
강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수가 말했다.
"두리번거리지 말고 자네."
강인이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그래."
강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
"송강인입니다."
"송강인 학생."
"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강인은 잠시 생각했다.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도윤이 속삭였다.
"감각이라고 해. 감각."
강인은 대답했다.
"다리미입니다."
정적.
누군가 기침했다.
도윤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최현우가 강인을 바라보았다.
오세나도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김태석 교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다리미?"
"네."
"왜?"
강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름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다시 정적.
그리고.
"푸흡."
누군가 웃었다.
한 명이 웃자 두 명이 웃었고, 두 명이 웃자 결국 강의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도윤은 책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였다.
"미치겠다. 주름은 거짓말을 안 한대."
강인은 억울했다.
"왜 웃는 거야?"
"너는 안 웃겨서 더 웃겨."
김태석 교수는 웃지 않았다.
강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학생들의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잠시 후.
교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피식.
학생들이 놀랐다.
김태석 교수가 웃었다.
그것도 첫 수업에서.
김태석 교수는 말했다.
"좋은 답이다."
이번에는 강인이 놀랐다.
"정말입니까?"
"그래."
교수는 칠판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이라도 마무리가 엉망이면 좋은 옷이 될 수 없다. 재단도, 봉제도, 다림질도 모두 중요하지."
교수는 다시 강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송강인."
"네."
"자네 바지는 누가 다렸나?"
강인이 굳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나팔바지로 향했다.
도윤은 이미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인이 대답했다.
"제가 다렸습니다."
교수가 말했다.
"그렇군."
"네."
"다리미에게 사과하게."
강의실이 뒤집어졌다.
도윤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교수님, 존경합니다!"
"박도윤."
"네!"
"자네도 다리미와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군."
도윤의 웃음이 멈췄다.
이번에는 강인이 웃었다.
"하하."
도윤이 강인을 노려보았다.
"좋냐?"
"응."
"친구가 당했는데?"
"오늘부터 친구 아니라고 했잖아."
"이럴 때만 기억력이 좋네."
수업이 끝났다.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강인은 가방을 챙겼다.
그때 최현우가 그의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송강인."
"왜?"
"재미있는 답이었어."
"고마워."
현우는 잠시 강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디자인은 말로 하는 게 아니야."
강인이 대답했다.
"알아."
"실력으로 하는 거지."
"그것도 알아."
현우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강인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 도윤이 끼어들었다.
"자, 자. 첫날부터 싸우지 맙시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의상디자인과 학생들입니다."
세나가 지나가며 말했다.
"네가 제일 시끄러워."
도윤이 세나를 바라보았다.
"저를 아십니까?"
"몰라."
"그런데 어떻게 제가 시끄러운 걸 아십니까?"
"오늘 학교 전체가 알아."
세나는 그대로 지나갔다.
도윤이 멍하니 서 있었다.
강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축하한다."
"뭘?"
"유명해졌네."
"닥쳐."
바로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송강인 씨?"
강인의 몸이 굳었다.
도윤이 먼저 돌아보았다.
그리고 씩 웃었다.
"야."
"왜."
"너 귀부터 빨개진다."
강인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복도 끝에 하미송이 서 있었다.
옆에는 윤소희가 함께였다.
미송은 강인을 보며 웃었다.
"바지는 괜찮으세요?"
강의실에서 나오던 학생들이 일제히 멈췄다.
도윤의 눈이 반짝였다.
강인은 생각했다.
'망했다.'
미송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물었다.
"어제 꿰맨 데 안 터졌죠?"
순간 복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도윤이 말했다.
"여러분."
강인은 불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윤이 양팔을 벌렸다.
"소개합니다."
"박도윤."
"입학 첫날부터 선배에게 바지를 맡긴 남자."
"입 닥쳐."
"우리의 송강인!"
복도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강인은 눈을 감았다.
미송도 그제야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윤소희는 미송의 팔을 붙잡고 웃었다.
"미송아, 너 어제 대체 뭘 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바지를 꿰맸어?"
"찢어졌으니까!"
도윤이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뒤가 아주 시원하게―"
강인이 도윤의 입을 막았다.
"너 오늘 진짜 죽는다."
도윤은 입이 막힌 채 웅얼거렸다.
"교내 폭력은 안 된다니까!"
미송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을 바라보던 강인의 표정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본 사람이 있었다.
최현우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한 사람이 강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혜린.
화려한 외모와 당당한 걸음걸이로 이미 학교 안에서 유명한 패션모델.
혜린은 강인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 지었다.
"송강인……."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날 송강인은 세 가지 사실을 배웠다.
첫째.
주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둘째.
김태석 교수 앞에서는 다리미도 긴장한다.
그리고 셋째.
하미송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귀가 빨개진다.
다만 마지막 사실만큼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