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토론] 대한민국의 원자력 정책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누가 책임지는가
이정윤 대표 (원자력안전과미래)
이 질문이 국민주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발제문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나는 원자력 안전 현장과 시민사회에서 이 문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 질문을 더하고 싶다.
1. 대통령 보고 의제를 결정하는 사람들
최근 원자력 정책의 진행과정을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나 국정기획 과정에서 핵잠수함,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공개토론도 없었다.
그런데 그해 10월 한미 정상외교에서 이 문제가 최고위급 의제로 등장했다. 핵잠수함·농축·재처리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다. 한미관계, 핵비확산체제, 동북아 안보와 국가재정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국가전략이다. 정상 간 의제가 되고 국가 간 협상의 대상이 되면 되돌리기도 어렵다. 그 이후 상황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SMR과 핵융합이 국가 미래산업으로 부상하고, 원전 수명연장이 추진되고 있으며, 테라파워를 비롯한 미국 차세대 원자로 사업에 한국 기업의 투자·제작·시공·보증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은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되고, SMR과 핵융합은 7대 Seed 사업에까지 포함됐다.
각각은 별개의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하나의 흐름이다.
원자력산업의 영역이 발전사업을 넘어 안보·외교·수출·금융·첨단산업·국가 연구개발까지 전방위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국가전략의 전환을 누가 결정했는가.
국민에게 물었는가. 국회에서 충분히 토론했는가. 시민사회와 독립적인 전문가에게 다른 선택지를 검토할 기회가 주어졌는가.
나는 그 과정이 충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 결정권보다 중요한 것은 의제 설정권이다
대통령 개인의 원전 찬반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다는 것과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의제를 누가 만드는가는 전혀 다르다. 원자력산업계에는 공기업, 연구기관, 핵공학계, 관련 기업과 관료조직을 연결하는 강력한 전문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정책과 사업을 제안하고 기술적 필요성을 설명하며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만드는 데도 큰 영향력을 갖는다.
반면 그 결정으로 위험을 부담할 국민과 시민사회, 지역주민, 독립적인 안전·경제·재정 전문가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정책의 선택지가 한 방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즉 피해를 보는 시민의 권리는 참여가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거버넌스는 곧 국민주권의 문제다.
3. 더 심각한 것은 책임의 부재다
원자력 정책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 결정이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원전을 건설하고 수명을 연장하면 사업자는 전기를 팔고 산업계는 사업을 얻는다. SMR·핵융합·핵잠수함·농축·재처리가 국가사업이 되면 관련 산업과 연구기관에는 막대한 시장과 연구개발사업이 생긴다.
그러나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원전사업자의 손해배상 책임은 대형 원전사고의 사회적 피해를 감당할 수준과 거리가 멀다. 감당할 수 없는 방사선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 넘어간다.(한수원이 감당하는 손해배상법상 피해보상은 건당 5천억원이며 이는 다수기를 포함한 금액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더 명확하다. 전기는 현재 세대가 사용하고 산업은 현재 이익을 얻지만, 폐기물 관리책임은 수많은 미래세대에게 남긴다.
해외 원전과 검증되지 않은 차세대 원자로 사업에 국가와 공기업이 투자했다가 실패해도 결국 국민의 재산이 손실된다.
이익은 산업이 가져가고, 실패비용은 국가가 부담하고, 방사능 사고위험은 국민이 감당하고, 핵폐기물은 미래세대가 떠안는 구조다.
4. ESG와도 거리가 먼 국가전략
국가전략산업이라면 최소한 환경(E), 사회적 책임(S), 거버넌스(G)에 대한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원자력은 이 세 가지 모두에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환경(E)에는 방사선 위험과 고준위폐기물이 있다. 사회적 책임(S)에서는 사고와 장기적 피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거버넌스(G)에서는 사업의 이해관계자가 정책결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위험을 부담할 국민은 결정과정에서 주변에 머문다.
E도, S도, G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국가전략인지 물어야 한다.
5. ‘핵쿠데타’와 ‘도둑 정책’
나는 이 구조를 두 가지 말로 표현하고 싶다.
국익과 안보논리를 치장하여 결정권을 이해관계자가 가져가는 구조가 정책 거버넌스 차원의 ‘핵쿠데타’라면, 이익은 가져가고 책임은 국민에게 넘기는 구조는 ‘도둑 정책’이다. 누군가 실제로 돈을 훔쳤다는 뜻이 아니다.
결정권과 이익은 안으로 가져가면서 위험과 비용과 책임은 밖으로 떠넘기는 정책구조를 말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을 앞세운 방대한 추진정책은 안전과 핵폐기물의 전국화로 마지막 피해자이며 본의 아니게 책임자가 된 시민사회를 대통령과 갈라놓는 정책인 것이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의 원자력 정책을 비판하고 대통령은 이미 국가정책이 된 사업을 방어하게 된다. 정작 정책을 만들고 확대해 온 이해관계자들은 그 뒤에 남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국가 거버넌스인지 물어야 한다.
6. 국민주권은 책임을 묻는 권리다
원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다음 문제다.
추진하더라도 중대사고, 경제성, 사고배상, 핵폐기물과 해체비용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핵잠수함·농축·재처리도 안보상의 편익뿐 아니라 비용과 외교·비확산 위험, 실패했을 때의 책임까지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그 결과에도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국민주권은 선거 때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국가의 의제를 만들고, 누가 결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를 국민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대한민국의 원자력 정책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누가 책임지는가.
결정과 이익은 특정 산업에 집중되고 위험과 책임은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넘어간다면, 이것은 원전 몇 기를 더 짓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국민주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