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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0~12장 주해와 적용]
사울의 나라, 다윗의 나라
왕대일 /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역대상 10-12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울의 몰락에 대한 짧은 증언이고(10:1-14), 다른 하나는 온 이스라엘(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 대한 긴 해설이다(1:1~12:40). 전자는 사울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스케치(10:1~12)에 이어 그의 죽음에 대한 신학적 평가로 끝난다(10:13~14). 후자는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 대한 힘찬 증언(11:1~9)에 이어 다윗의 시대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도하는 군사적 개요로 끝난다(11:10~12:40). 군사적 개요는 형식상 다윗을 돕는 용사들을 소개하는 긴 명단이다. 이 명단은 다시 서론적 소개(11:10) → 용사들의 용맹담(11:11~25) → 군대 용사들의 명단(11:26~47) → 특정 지파에서 다윗을 도운 사람들에 대한 소개(12:1~22) → 다윗의 병력 목록(12:23~40)의 순서로 전개된다.
역대상 10~12장의 구조
본문의 큰 두 단락(10:1~14;11:1~12:40)은 모두 전쟁을 배경으로 삼는다. 물론 글의 형식은 서로 다르다. 처음에 자세한 이야기로, 나중에 간단한 에피소드를 섞은 명단과 목록으로 본문을 이끌어 간다. 하지만 각 단락이 전하는 전쟁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첫 번째 단락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지고 쫓기다가 비참하게 죽고 만다. 두 번째 단락에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기고 승리한 용사들을 강조한다. 첫 번째 단락 의 중심에 사울이 있고, 두 번째 단락의 중심에 다윗이 있다.
I. 패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울의 죽음 10:1~14
𝙰. 사울의 몰락, 역사적 보도 10:1~12
B. 사울의 실패, 신학적 평가 10:13~14
II. 강성한 나라 이스라엘, 온 이스라엘의 왕 다윗 111~12:40
A.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신학적 평가 11:1~9
B. 다윗의 용사들, 상징적 카탈로그 11:10~12:40
본문 구성상 사울의 시대는 다윗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그 시간이 길지 모르겠지만, 역대기 신앙의 눈으로 보면 사울의 시대는 아주 짧다. 사울은 순전히 다윗 시대를 여는 서막으 로만 등장했다가 사라질 뿐이다. 이런 대칭 구도 속에서 10장 13절과 11장 9절은 10~12장의 두 단락(10:1~14; 11:1~12:38)의 분위기를 압축하는 의미상의 대구를 이룬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대상10:13a)”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대상11:9)”
본문은 우리에게 실패하고 성공한 자가 누구인지를 전한다. 사울이 실패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베냐민 지파가 실패한 것은 그 지도자가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누구나 실패하게 된다. 다윗이 성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머리가 된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울의 실패는 완료형이지만 다윗의 성공은 진행형이다. 다윗은 ‘점점 강성하여 가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 함께 해야 점점 강해질 수 있다. 한 사회도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해야 강성해질 수 있다. 한 나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강대해질 수 있다. 다윗 왕이 여는 이스라엘 왕국의 들머리는 바로 이런 뜻을 가르치는 시금석이 된다.
역대상 10~12장의 주해
1. 사울의 몰락, 역사적 보도(10:1~12)
1) 본문의 이해
사울의 족보(대상 935-44)에 이어 소개되는 본문은 사울의 비극적인 죽음을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본문은 사울 왕국의 멸망에 대해 다루면서도 사울을 결코 왕으로 호칭하지 않는다. 사울의 ‘그 나라(אֶת־הַמְּלוּכָ֔ה, 에트-함멜루카)’라는 말을 거론하지만(10:14), 사울을 왕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사울의 주검에서 갑옷을 벗겨 그들의 신전에 보관하고 그 머리를 다곤 신전에 매달아 둔 것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9~10절). 그럼에도 본문에선 사울을 왕으로 부르지 않는다(비교, 대상11:1~2).
이 단락의 서두는 다짜고짜 이스라엘의 패전과 사울 집안의 몰락을 전하기에 바쁘다(1절).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힘 한 번 제대로 못 쓴 채 도망하게 되고(그것도 길보아 산에서) 사울의 아들들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2절). 본문의 관심은 오로지 사울과 그 아들들의 몰락을 전하는 데에만 쏠려 있다.
길보아 산은 이스라엘의 영토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가나안 땅 지중해 연안에 모여 살던 블레셋 사람들과 달리, 가나안의 중원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길보아 산은 저 너른 이스르엘 평원에서부터 광대한 북쪽 지대를 아우르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 만큼 전략적으로 소중한 곳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싸움터에 나서자마자 길보아 산을 사수하기는커녕 그곳을 버리고 도망치기에 급급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본문은 사울 때문에 당한 이스라엘의 수치를 고발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본문은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길보아 산 전투에서 사울의 세 아들(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고(2절), 화살에 맞은 사울은 적의 손에 죽지 않으려고 자신의 칼을 뽑아 그 위에 엎어짐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숨가쁘게 보도할 뿐이다(3~4절). 사울 집안이 송두리째 말살되고 말았다는 것이다(6절), 역대기 기자는 사울이 처음에 왕으로 옹립된 배경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역대상 10장은 사울의 전 생애를 장황하게 해설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다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만 한 사람의 종말을 제시하고자 할 뿐이다.
2) 설교자를 위한 적용
이 단락의 메시지는 사무엘상 4장 1~11절 과의 비교에서 얻어진다.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블레셋 군대에게 진 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진영에 빼앗겼던 것이다(삼상4:1b-11). 하지만 그때 블레셋의 다곤 신상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진 채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히는 역사(役事)가 일어났다(삼상5:1~4).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로 사울의 시체(머리)가 다곤 신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10절). 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는가?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면 그 지도자를 따르는 공동체는 위기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지도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다면 그 지도자를 따르는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하게 된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아픔이 우리 마음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11~12절).
2. 사울의 실패, 신학적 평가(10:13~14)
1) 본문의 이해
왜 사울이 그토록 처참하게 죽었을까? 본문은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서 역대기 기자의 고유한 기록이다. 본문과 병행하는 사무엘상 31장 1~13절에는 이런 해설이 나오지 않는다. 본문에서 중요한 용어는 사울이 ‘여호와께 범죄하였다(מָעַ֣ל בַּֽיהוָ֔ה, 마알 바아도나이)’라는 지적이다. 히브리어 ‘마알’은 우상 숭배처럼 하나님 께 저지른 죄를 지칭하는 용어다(겔14:13; 15:7). 본문에서 사울이 저지른 죄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알’이라는 단어로 봐서 사울의 범죄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였다고 암시하고 있다.
사울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신앙적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사울이 비참하게 죽은 것은 순전히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점쟁이(개역에서는 ‘신접한 자’)와 상의하고 그에게서 지도를 받았기 때문이다(참조. 사8:19; 비교 삼상28:7).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으로 심판하셨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기셨다(14b절). 사울의 실패는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요인에 있지 않다.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사울은 주님을 배신했다. 둘째, 사울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셋째, 사울은 주님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을 하나로 요약하면 바로 사울이 ‘하나님께 범죄하였다(표준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을 배신하였다’)’는 말이다(13b절).
2) 설교자를 위한 적용
사울의 실패와 다윗의 성공을 비교해 보자. 사용은 하나님께 묻지 않은 자였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 자였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하러 나갈 때 하나님께 먼저 물었다.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대상14:10)” 하나님께 열린 자는 세상의 문제를 극복한다. 하나님께 닫힌 자는 세상의 문제 속에 갇히고 만다. 이런 인과응보 원칙은 역대기가 전하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하나님 신앙이 왕성했을 때 그 나라는 흥왕하고, 하나님 신앙이 쇠락했을 때 그 나라는 쇠퇴했다. 이스라엘 신앙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인과응보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울의 몰락은 이런 교훈을 깨닫게 하는 좋은 범례가 된다. 사울의 자리를 다윗에게 넘겨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우쳐 주는 좋은 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라. 거기에 세상의 매듭이 풀리는 길이 열리게 되리라.
3. 온 이스라엘의 왕 다윗, 신학적 평가(11:1~9)
1) 본문의 이해
본문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는 이야기(1~3절)와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을 떠나 여부스(예루살렘)를 차지하는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4~9절). 원래 다윗은 사울이 죽고 난 뒤 사울 왕국과 한동안 지루한 싸움을 벌였다(삼하1~4장). 그 싸움이 평정되고 난 다음에야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다스리던 시대를 청산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왕으로 옹립될 수 있었다. 다윗은 서른 살에 왕이 되어 사십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먼저 칠년 육개월 동안 헤브론에서, 나머지 삼십 삼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삼하5:4~5).
그러나 본문에선 이런 사실에 대해 크게 거론되지 않는다(비교 대상3:4, 29:27). 그대신에 다윗이 이스라엘을 ‘목양하는(תִרְעֶ֤ה, 티르에)’ 자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사사(נָגִיד, 나기드, 개역에서는 ‘주권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강조한다(2b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3b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여부스를 점령하는 것이었다(4~9절). 지정학적으로 헤브론은 너무 남쪽에 위치해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중앙에 위치한 여부스 성을 점령해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은 것은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적절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이런 지정학적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본문에서 다윗은 여부스 성을 피흘려가며 차지하지 않는다. 다만 ‘올라갔을’ 뿐이다(6b절).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עָלָה(알라)’가 그 앞에 나오는 ‘치다(נכה, 나카)’라는 말과 병행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עָלָה(알라)’는 말 그대로 ‘올라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이스라엘이 발로 밟는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신11:24)이 이뤄진 것이다. 이 약속을 성취하는 역사적 순간에 선봉장이었던 요압은 다윗의 용사들을 이끄는 총지휘관이었다
2) 설교자를 위한 적용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타협이나 협상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자기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쁨을 맛 보았다(참조 삼상15:28; 16:1). 다윗의 용사들은 여부스 도성을 피흘려가며 차지하지 않았다. 다만 ‘올라갔을’ 뿐이다(6b절). 올라갔더니 다윗의 것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곳이다(신12:5).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다윗은 점점 더 강대해 진다(9절).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의 자취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예배하는 자리에서 나타난다. 예배를 존중하는 삶에서 입증된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따라서 예배의 단을 쌓는 일이 소중하다.
4. 다윗의 용사들, 상징적 카탈로그(11:10~12:40)
1) 본문의 이해
(1) 머리말(11:10)
다윗의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וַיהוָ֥ה צְבָא֖וֹת, 아도나이 체바오트)이다(11:9). 하나님을 군사적 용어로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11장 10절~12장 40절은 다윗을 돕는 용사들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다. 11장 10절은 이 명단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다윗의 용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단순히 힘 있는 장사들이나 칼부림에 능숙한 싸움꾼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주연으로 활동한다면 이 용사들은 조연에 해당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다윗의 나라는 군사적으로 부강할 수 있었다.
(2) 다윗의 용사들의 용맹담(11:11~25)
다윗을 도운 용사들의 힘과 용기와 능력이 ‘삼십 명의 용사’ 또는 ‘세 용사’와 관련해 설명된다. 본문 서두(11절)에 나오는 ‘삼십 명의 우두머리’는 그리스어 번역본에서는 ‘세 용사’이다(RSV나 표준새번역은 그리스어 번역을 따른다). 이 세 용사가 누구인지, 그들이 삼십 명의 특별 부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본문은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 세 용사는 특별 부대(삼십 명의 용사)를 이끄는 지휘관인 듯하다. 한 사람은 야소브암(11절), 다른 한 사람은 엘르아살(12절), 나머지 한 사람은 역대기 본문에는 빠져 있지만 삼마(삼하23:11)이다. 삼십 명 특별 부대의 지도자는 때에 따라 바뀌기도 했다. 요압의 아우 아비새가 삼십 명 특별 부대의 우두머리로도 소개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20절; 비교, 대상12:4, 18).
다윗의 용사들이 벌인 용맹담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세 용사들이 블레셋 군대의 진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길어 온 이야기이다(15~19절). 그들은 목마른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왔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부어드렸다(18절). ‘부어드리다(나삭)’라는 말은 제단에 바치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다. 그 물이 피(생명)처럼 귀한 것이었기에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19절; 참조, 레17:14).
(3) 다윗 군대의 용사들 명단(11:26~47)
본문의 명단은 사무엘하 23장 8~39절과 병행된다. 다윗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충성을 다한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 명단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 본문에서 이 사람들 하나하나의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암몬 사람 셀렉(9점), 헷 사람 우리아(41절), 모압 사람 이드마(46절)가 그 명단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지파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4) 다윗을 따른 지파의 용사들(12:1~22)
이 단락은 다윗이 시글락에서 사울을 피해 숨어 지내던 시절에 다윗을 도왔던 용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베냐민, 갓, 유다, 므낫세 지파에서 온 사람들을 열거한다. 왜 네 지파 출신들만 거론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베냐민 지파 출신의 용사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이 사울의 일족이었지만 사울을 등지고 다윗을 도왔기 때문이다(1~7절). 유다 지파 출신의 용사들이 거론되는 것은 그들이 다윗이 속한 지파이기 때문이다(16~18절). 그러나 다윗을 돕는 용사들 중에 굳이 갓 지파 출신(8~15절)과 므낫세 지파 출신을 거론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19~22절).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돕다(에제르)’라는 말이다. 모두 다섯 번에 걸쳐 이 말이 반복된다(17, 18, 19, 21, 22절). 심지어 용사들의 이름씨에도 도움이란 말이 새겨져 있다(가령 3절의 ‘아히에셀’은 ‘도움의 형제’라는 뜻이고, 9절의 ‘에셀’은 ‘도움’이라는 뜻이다).
(5) 다윗의 병력 목록(12:23~40)
이 단락은 다윗을 찾아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왕으로 옹립하는 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수를 전한다. 이스라엘 온 지파, 레위 자손을 포함하여 모두 열 세 지파에서 온 사람들이 전열을 갖추고 헤브론에 이르러 ‘모두 한 마음으로’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1, 38절). 여기서 다윗의 군사력은 30만 명이 넘는다. 본문은 이런 숫자를 통해 다윗이 이룬 하나님의 군대가 얼마나 막강했는 지를 보여준다. 온 이스라엘이 합의해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39~40절).
2) 설교자를 위한 적용
용사가 누구인가? 용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에는 주연만 있어선 안 된다. 조연도 있어야 한다. 주연이나 조연이나 모두 연출자이신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있다. 주연이나 조연 사이에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일꾼들이다.
세상에선 단체마다 규율이 있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질서가 있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에선 규율이나 질서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헌신과 돌봄이다. 신앙 공동체는 헌신하는 사람이 있고 돌보는 지도자가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다윗의 용사들은 그처럼 헌신적인 자들이다. 다윗은 그들처럼 돌보는 자이다. 다윗을 돕는 삼십 명의 용사들이나 그 용사들을 배려하는 다윗의 처신이나 모두 신앙 공동체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헌신이 없는 힘은 교만에 빠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는 권위는 폭력에 빠진다.
다윗을 돕는 자들은 온 지파에서, 온 연령 층에서, 온 지역에서 골고루 이뤄졌다. 모두가 연합해 다윗을 도운 것이다. 혼자서 열 걸음을 앞서 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열 사람이 하나로 뭉쳐 한 걸음을 같이 가는 전진이 소중하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신다. 다윗의 성공을 하나님께서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 곁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12:22). 그 결과, 다윗의 군대가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큰 군대로 되었다. 지도자를 도울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 목자를 도울 성도 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
다윗을 왕으로 삼는 일에 온 이스라엘이 사흘 동안 먹고 마시며 기쁨의 축제를 이뤘다는 것(40절)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온 지파, 온 계층, 온 나라 사람들이 하나로 뭉쳤다는 뜻이다. 나라,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일이 어디서 가능한가? 먼저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온 교회와 온 사회와 온 나라가 기쁨으로 하나 되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맺는 말
사무엘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왕국은 태동할 때부터 이미 어둔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무엘서는 모두 23개의 장(章)을 이스라엘 건국사에 할애했다(삼상9~31장). 이런 점에서 역대기 기자는 달리 한다.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건국사와 관련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울 시대를 단 한 장으로 줄여 놓았다. 그러면서 온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부터였음을 크게 부각시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결과이다. 본문에 길게 소개된 군사들의 이름, 용맹담, 수는 다윗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제시하는 예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본문은 사울의 실패와 다윗의 성공을 뚜렷이 대비시킨다. 다윗이 왕이 되어 맨 처음 한 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인물이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역대상 10~12장은 실패와 성공의 패러다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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