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 적멸보궁을 다녀와서 >
관불심
2008년 10월 둘째 토요휴업일! 아침 7시였다. 부산진역에서 우리를 태운 ‘모던관광버스’는 오대산 적멸보궁들을 향해 출발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8명으로 2진으로 나뉘어 송자샘 신랑차와 봉향샘의 신랑차를 타고 진역에 모여 30분전에 대기한 버스에 이미 타고 있었다. 큰 버스에 함께 한 전체 인원이 22명이라니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송자샘을 빼곤 7명이 모두 초행길이라 다소 들떠 있었다. 5시간 반 소요예정이란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사자산 법흥사로 향했다.
5시간 만에 도착을 했다. 맛있는 송편과 찰떡 한 조각까지 곁들인 점심 공양을 맛있게 마치고 적멸보궁으로 올랐다. 20분도 안 되어, 반듯한 거의 보통 사찰의 대웅전 크기의 적멸보궁에 도착했다. 적멸보궁 법당 뒤에는 고승들의 무덤인 커다란 구릉 같은 게 있어 왕릉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구릉 앞에 놓인 자그마한 탑이 바로 사리탑! 일행은 마음을 가다듬고 108배를 올렸다. 땀이 가볍게 온 몸에 배였다. 법당 바깥은 기분 좋을 만큼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둘러 월정사로 향했다. 그러나 월정사에서는 큰 문화행사 탓인지 좁은 산길에 주차된 차들과 오고가는 차들이 엉켜 한참을 산길에서 지체가 되었다. 일행은 계획을 바꿔 곧바로 상원사로 향했다. 여기는 강원도 평창! 절 입구에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문수성전’ 이란 아주 커다란, 어른 키가 넘을 듯한 돌 표지판이 서 있었는데 적멸보궁과 문수성전의 글자는 휘갈긴 멋진 필체도 필체려니와 금박으로된 낙관모양으로 표짓돌에 새겨진 게 인상적이었다.
은혜 갚은 까치의 전설을 품고 있다는 단풍빛의 상원사를 입구만 보고 30분 정도(1.5키로) 더 걸어 중대에 있는 사자암으로 갔다. 오후 5시였다. 저녁 공양을 맛있게 하고 예약된 숙소를 찾았다. 짐을 던지다시피하곤 서둘러 적멸보궁으로 올라갔다.(600미터) 저녁 예불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는데 20여분 올라가는 산길이 참으로 고왔다. 적멸보궁! 법흥사 적멸보궁처럼 법당 뒤에 낮은 구릉이 있었고 사리탑은 작은 송이버섯 모양이었다. 저 어딘가쯤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리라. 법당은 참으로 작아 열 명에서 스물 명 정도도 겨우 절을 할 정도였다. 법당의 촛불 아래에서 두 시간 동안 예불이 이어졌다. 적요한 산을 울려 퍼지는 카랑카랑한 젊은 스님의 목소리가 참 강인하게 느껴졌다. 여기 적멸보궁과 비로전 법당은 정해진 날 외에는 밤에는 모두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숙소의 잘 마련된 세면실에서 씻곤 눈을 붙였다.
금강정진회 여자 일행 모두가 한 방에 묵었다. 우리가 묵을 방이름은 ‘하늘 바다’였다. 옆방 이름은 ‘달마 미소’였는데 그 작명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다음 날 새벽 두어 시부터 먼저 일어나 행동하는 사람도 있어 오래 숙면을 할 수는 없었다. 잠을 깬 김에 일행 중 몇몇은 3시도 안 되어 다시 랜턴을 들고 적멸보궁 새벽예불에 참석하러 가고 봉향샘과 나는 비로전에서 4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새벽예불에 동참하기로 했다. 새벽 예불을 보러 숙소를 나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별들의 잔치라니! 감탄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런 별들의 모습은 내 평생 서너 번째로 보는 것 같았다. 비로전 새벽 예불은 동참자가 서넛이라 더 오붓한 느낌도 들었다. 내가 새벽 예불을 한 사자암의 비로전은 문수동자 500분과 문수보살 500분이 부조로 장엄되어 있었는데 참으로 웅장하면서도 멋있었다. 잠시 짬이 나 나는 ‘잡보장경 용왕게송’을 한바닥 사경했다. 손으로 가슴으로 사경했다. 익혀도 익혀도 몸으로 익히는 데는 아직도 어렵기만 한 말씀이었다.
마치고 나오니 시간이 또 촉박하여 아침공양을 서둘러 마쳤다. 찹쌀을 섞지도 않은 듯한데 밥이 어찌나 찰지고 맛도 좋던지……. 공양을 마치고 정수기 옆에 불전함이 보였다. 어제 저녁공양에도 밥과 나물과 김치 반찬이 너무 맛좋아 두 그릇을 먹었던 기억이 나서 두 끼 공양한 만큼의 보시를 했다. 공양간에서 재물보시를 한 건 처음이었다.
상원사로 내려오는 새벽 산길은, 감탄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정희샘 말대로 그 맑은 공기며 여명 속에서 물들어 가는 단풍들의 수줍음으로 참으로 상쾌하고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상원사의 문수전은 개축 중이었는데 법당안은 다른 법당과는 달리 문수보살과 문수동자가 유리곽 속에 모셔져 있었다. 평소에는 가족과 중생의 안녕을 발원하지만 지혜의 보살이라는 문수보살님께는 국시를 앞두고 있는 장남의 시험운을 108배를 하면서 발원하였다.
상원사에서 9시에 출발하니 막힘없는 차로는 10여분만에 월정사에 도착했다. 어제 큰 축제 중 의식행사를 하였는지 마당엔 아직 행사 의자들이 치워져 있지 않았다. 좀 있다 울력 협조를 알리는 방송과 함께 의자들은 치워졌지만 오늘도 축제는 계속되는지 다양한 체험부스들이 아침을 맞아 깨어나고 있었다. 적광전에서 108배를 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마치 지붕위의 눈이 녹듯, 낙숫물 떨어지듯 모든 지붕에서 똑똑똑 물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온도 차이인가? 다른 절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인솔자겸 총무를 맡은 송자샘이 예비비로 남겨둔 경비로 감자떡을 한 봉지씩 사 주었다. 강원도 기념품으론 제격 같았다. 여러 가지로 맘 써서 일행을 이끌어주는 송자샘한테는 늘 고마운 맘이 들었다.
9시에 정선에 있는 정암사를 향해 나섰다. 가는 길에 ‘가을에’라는 영화 촬영지로 알려진 ‘선돌’ 구경도 잠시 하였다. 강을 끼고 있는 풍경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도 참 좋았고 기암인 선돌도 신기하기만 했다. ‘선돌’에서 10여 분 더 가니 장릉이 나왔다. 장릉 앞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행 중 사찰 공양만 하고 가니 좀 아쉽다고 한 사람이 있어서 일정을 수정한 모양이었는데 먹어보니 절 공양보다 되레 못한 듯도 하였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맛있게 점심을 먹고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비운의 왕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참배하였다. 12시가 되어 정암사로 다시 향했다.
1시 20분에 적멸보궁 정암사에 도착했다. 정암사는 이미 단풍이 한창이었고 자그마한 절이 참 아담하고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에서 108배를 하는 도반들도 있었고 우리는 잠시 5~10분 올라가면 나오는 수마노탑<도난의 우려가 있는 금이나 은이 아닌 ‘마노’를 가지고 탑을 만들었다고 함> 앞에서 108배를 올렸다. 오늘만도 108배를 네 번이나 했음에도 신기하게 춤을 추듯 절이 가볍게 잘 되는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맑은 공기와 맑은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오후 2시 30분! 이제 1박 2일의 순례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차가 막혀 우회도로를 돌아왔음에도 예정보다 더 지체가 되었다. 늦어진 귀가로 일정에 없던 저녁공양까지 경주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칼국수로 먹게 되었다. 7만원의 경비로 금강정진회는 수익을 얻기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더 자주 금강정진회를 이용해 주는 게 보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밤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참 먼 길이었으나 먼 길이었기에 더 귀하고 고마운 여정이기도 했다. 송자샘이 좋아한다는 중대 사자암 공양간에 있던 ‘오대 광명’ 문구를 되새겨보면서 함께한 고마운 우리 일행들과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참으로 행복해지기를 발원해본다.
-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 몸이 맑아집니다!
- 생각이 밝아집니다.
-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 부처님의 가피로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 <잡보장경 용왕게송>
*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여 주고 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기쁨을 주어라.
*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미워하지 말라.
*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 객기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라.
*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지혜롭게 중도를 지켜라.
*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 재물을 오물처럼 보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오대산>: 어원에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에 석가, 관음, 미타, 지장, 문수보살님이 상주하여 설법하시는 성지란 뜻도 있다함.
첫댓글 너무 좋네요. 참 좋은 시간들이었어요. 관불심님 덕에 새록새록 추억에 젖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