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지금 이 책을 읽기 위해 쓰고 있는 시간을 다른데다 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밀린 일을 할 수도 있겠고, 텔레비전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읽다 만 소설을 계속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열거한 것말고도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많다. 결국 이 (재미없는) 책을 읽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 일들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치를 포기해야 했다는 의미에서 독자는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1억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일에 그 금액의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위해 포기한 여러 일 중 특히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한다고 하자. 그리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을 즐거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5만원에 해당한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이 주어졌을 때, 경제학자는 이 책을 읽는데 드는 '기회비용(機會費用, opportunity cost)'이 5만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그 가치에 해당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는 의미에서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으로 붙었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비용을 기회비용으로 파악하기를 요구하는데, 우리는 이 기회비용의 개념에서 경제학적 사고의 독특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예를 통해 기회비용이란 개념에 대해 설명해보기로 하자. 특급호텔의 이탈리아 요리부 주방장으로 있는 진충복 씨는 2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어느날 그는 독립하여 2호선 지하철 삼성역 부근에 '몬티첼로'라는 레스토랑을 개업하였다. 개업한 수 첫1년간의 총매상고는 3억원이었으며, 비용으로는 재료값, 인건비, 금리, 임대료, 제세공과금을 합쳐서 2억 8천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 첫해의 영업실적만 놓고 볼 때 진씨는 독립을 함으로써 이득을 본 셈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독립해서 얻은 이윤이 얼마인가를 계산해보아야 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한 실적을 기록한 회계장부를 보면 2천만원의 영업이윤이 생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결과를 보고 그가 독립하기로 한 결정은 잘된 것이었다고 평가해도 좋은가? 경제학자라면 그와 같은 평가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적인 계산에 의하면, 이 레스토랑의 운영을 통해 2천원의 이윤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4백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진씨는 독립한 것보다는 특별호텔의 주방장으로 그댈 남아 있는 편이 더 나았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다.
회계장부상에 나타나는 영업이윤은 비용을 계산할 때 영업주인 진씨가 쏟아부은 노력의 기회비용을 포함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진 결과다. 만약 그가 호텔의 주방장으로 계속 일했다면 200만원의 월급을 얻을 수 있었는데 레스토랑을 경영함으로써 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레스토랑 경영에 쏟아부은 그의 노력을 기회비용으로 환산해보면 연간 2천 4백만원에 달한다. 이를 비용에 포함시키면 첫해에 지출한 총비용은 3억4백만원으로 증가하며, 레스토랑 운영에서 4백만원의 손실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가 스스로에게 그 금액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용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은 실제로 지출되었는지에 관계없이 개념적으로 보아 비용이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의 여부만을 따진다. 그가 주방장으로서 연간 2천 4백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했으므로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비용을 파악해야 그가 독립하기로 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합리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일들을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다시 평가해보면 의외의 결과를 얻게 된다. 1억원 어치의 주식을 사놓았는데 그 다음날부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가슴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산 지 6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원래의 가격으로 돌아오자 그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팔아치웠다. 그는 겨우 본전을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만약 그 1억원으로 주식을 사지 않고 예금을 해두었다면 6개월 동안 최소 6맥만원의 이자수입이 생겼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즉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그 주식투자의 실적을 평가하면 6백만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3억원을 호가하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주택서비스의 구입에 월 3백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를 판 돈을 예금할 경우 매달 3백만원의 이자소득이 생겼을 텐데 이를 포기했으므로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의 예금이자율을 1%로 가정하였다.) 한 달에 고작 2백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가지고 그걸로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교육비 모두를 충당해야 하는 가정이 주택서비스 하나를 구입하는 데만 3백만원이나 지출한다면 별로 합리적인 선택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하고 거기서 생긴 차액을 투자신탁에 맡긴다면 그 집의 살림에는 훨씬 큰 여유가 생길 것이다.
덧붙이는 말 다만 앞으로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여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에 현재의 집에 눌러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