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四大美女—楊貴妃

楊貴妃(719年—756年),本名楊玉環,初入道家時獲道名太真。原籍山西省永濟縣,因為父親早年去世,她被寄養在楊玄璬的家裡。楊玉環精通音律,擅歌舞,並善彈琵琶,因美貌出眾,十七歲的時候成為唐玄宗的第十八王子壽王李瑁的妃子。楊貴妃與西施、王昭君,貂蟬並稱為中國古代四大美女。
史書上用“資質豐豔”一詞形容楊貴妃的容貌。體態豐滿,皮膚白皙。楊貴妃每天用溫泉水沐浴和用新式化妝法來保持著自己的美貌。
貴妃好食荔枝。《新唐書》中《楊貴妃傳》記載:“妃嗜荔支,必欲生致之,乃置騎傳送,走數千里,味未變已至京師。”因為楊貴妃这一喜好,荔枝成了風靡一時的水果。
楊貴妃是唐代宮廷音樂家、歌舞家,其音樂才華在歷代後妃中鮮見。她的優秀不僅表現在美貌還能歌善舞,機智聰敏。後世的人們為了傳誦為她編寫了各種的傳記式戲劇。
756年楊貴妃自縊身亡。
양귀비(719년— 756년)의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며 잠시 도가에 입문했을 때 법명은 태진(太眞)이다. 산시성 용제현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사천성 관리이던 숙부 양현옥의 집에서 자랐다. 양옥환은 노래와 춤에 능하고 비파 등 각종 악기에 뛰어나고 미모가 출중해 17세에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이모(壽王李瑁)의 비가 되었다. 양귀비는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과 더불어 중국의 4대미인이라고 불렸다.
역사서에는 그녀의 용모를 ‘자질풍염(資質豊艷)’이라 하고 있는데 이는 풍만하고 농염하다는 의미이다. 통통한 몸매에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졌던 양귀비는 매일 온천물에 몸을 닦고 새로운 화장법으로 미모를 가꿨다.
신당서(新唐書)의 양귀비전(楊貴妃傳)에 보면 "비기여지(妃嗜荔枝), 필욕생치지(必欲生致之), 내치기전송(乃置騎傳送), 주수천리(走數千里), 미미변기지경도(味未變己至京都)" 라는 말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양귀비는 여지를 매우 좋아했다. 여지가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양귀비 앞에 여지를 즉시 대령해야 했다. 그래서 현종(玄宗)은 기병(騎兵)을 파송하여 수 천리 길을 달려 신선한 여지를 따가지고 여지의 맛이 변하기 전에 장안(長安) 까지 도착하게 하였다." 는 뜻이다. 양귀비 때문에 여지는 만천하에 알려졌고 인기있는 과일이 되었다.
양귀비는 당나라 궁중 음악가, 무용가라고 하며 그녀의 예술적 재능은 역대 황후와 귀비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다. 양귀비는 절세의 풍만한 미인일 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뛰어났고 총명을 겸비해 후세에도 그녀의 전기는 각종 희곡이나 극작품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다.
756년 양귀비는 목을 매어 생을 마감했다.
(출처: 원광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