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유교적 문화 속에서 남성들은 느낌을 무시한다>고 유교문화를 질타하고 있다. 과연 옳은 말인가? 유교인들은 기독교 측으로부터 끊임없이 유교문화를 말살하려는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들의
교리를 비판한적은 없다. 그러나 그 신성한 언어를 구사해야할 종교인이 아래와 같은 유교왜곡을 <유교문화>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근거없이 공개적으로 내놓아도 되는 것인가? 엄중히 묻고 싶다.<아래 기사 주서 부분>
유교는 정신과 느낌을 가장 민감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 사유의 핵심이다. 오히려 그 심신의 포용력과 균형력을 높이사야하는 것이 그 진상이다. 유교는 철학과 정신 예술을 수용하고 각 종교와 각종의 문화체계들은 온전히 포괄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그 기초로 하고 있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분야에서 그렇게 아무렇게나 비판할 수 있는 또 그래도 좋을 만큼 무용한 것은 아니다.
아래와 같은 비판은 그 비판자의 역사적 안목을 그 편협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주장은 지성사적 입장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막설에 불과하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오늘날 유교 왜곡에 가장 책임있는 분야의 일원으로서 이제는 그동안의 행태를 뼈아프게 반성하여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커다란 장래의 후회를 남기지 않게 될 것이다. 유교인들이 일일히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군자적 행태를 역이용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 파렴치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 이기적 주장은 사실상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런 분이 어떻게 생활을 증진할 수 있는 순수한 느낌의 경지를 논할
수 있는가?
夏夷案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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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02-07-23 () 00면 951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캠페인] 말보다 느낌으로 교감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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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랬을까?’.가정 내에서,직장 또는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후회는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한다.인간의 행복은 모든 사고와 감정을 의식을 통해서 느끼는 것으로 시작한다.겉사람의 의식과 의지는
속사람이 조정해 행복과 불행으로 교차시킨다.특히 병든 가정이 건강치 못한 이유는 내면의 상처가 생각과 의식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상한 마음밭에서는 천국이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아무리 좋은 구원의 복음이라도 마음밭이 병들어 있다면 마음의 천국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가정에 좋은 가족이 있다 하여도 가족공동체에 상한 감정으로 병들어 있는 가족이 있다면 대화,결정,하나됨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그 뿌리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불신 때문에 영양분을 줄기로 보낼 수 없다.병든
가족은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잘 변화되지 않으며 행함의
결실을 느끼기도 힘들다.
태아 또는 어린 시절과 생활 속의 인간관계에서 말을 통하여 주고받은 아픈 상처는 죄를 낳게 되며 지속적으로 인간을 괴롭히기도 하여 나도 모르는 나의 뜻과 마음이 죄를 잉태케 하여 하나님을 멀리 느끼게 한다.그 죄가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들어옴으로써 상한 감정을 만들고 그 상처로 인해서
가족과 인간관계를 병들게 한다.
이제는 말보다는 느낌을 말하라.그리고 내용만 알려고 하지 말고 과정을
존중해주는 넉넉함도 가져보자.유교적 문화배경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남성들은 느낌을 무시한다.느낌에는 윤리성이 없으므로 느낌을 들어줄 때
가족치유는 시작되며 깊은 느낌을 공감해줄 때일수록 더 큰 치유가 일어난다.억압된 감정을 많이 느끼고 공감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 눈물로 아픔을
씻게 하여 보자.행복한 가족시스템은 구성원 모두가 건강해져야 이루어질
수 있다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사랑과 격려로 치유를 돕자.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최귀석 장로(한국가정사역학회 감사·한국훼이스 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이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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