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전기의 문학
-조선 건국 직후에는 왜 새 왕조 창건을 칭송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문학작품의 창작 동기로 작용했을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문학적 효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태희: 악장을 들 수 있는데, 악장과 같은 경우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름으로써 새 왕국 건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의의가 있다. 또한 새 왕조 창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데 창작 동기가 있을 것이다. 문학은 특정한 의도를 지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효용성이 있다. ★★
-<용비어천가>와 같은 악장문학은 조선왕조가 안정기로 접어 들어가며 왜 쇠퇴해 갈 수밖에 없었을까?
이지유: 불안정한 시기에 왕조창업을 합리화하기 위해 창작되었는데,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듦에 따라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이태희: 용비어천가와 같은 작품은 목적이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반대파들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조선 왕조가 안정기에 접어듦으로써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최윤상: 악장 말고도 여러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문학 장르가 탄생하였기 때문에
정철원: 시대별로 유행하는 하위 변종 문학 장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사멸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학장르가 탄생하는 경향이 있다.
양원모 쌤: 악장문학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았을 것이다. 독자층이 주로 조선건국 세력과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그리고 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의 작품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적 감동보다는 정치적 목적성이 강했으므로...
김평안: 악장 문학작품을 공연하는 과정에서 너무 현장이 화려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공감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악장 문학이 화려한 공연의 형태로 향유되었다는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고려 속요의 경우엔 민간에 전승되던 백성의 노래가 조선 왕조의 궁중잔치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지만 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
-조선 전기 ‘시조 문학 갈래’에 드러난 한국문학의 전통적 특질은 무엇일까?
정시진: 사대부 계층이 주로 향유했다. '의리, 도덕'과 같은 교훈적 가치를 주로 노래한 점이 중심적 특질이다. (유교적 덕목 같은 내용에 국한)
이태희: 시조의 형식이 매우 정형화되어 있고 내용 또한 충효예의지신 같은 유고적 덕목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최윤상: 시조의 향유계층은 주로 양반 사대부로 제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태희: 자연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자연과 인간사의 대비라든지 자연 예찬적인 태도가 많이 드러난다. 순수한 자연과 대비하여 속세를 부정적인 관점으로 비판한다.
김선호: 사대부뿐만이 아니라 기녀들도 양반들과 서로 시조를 나누면서 향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향유계층이 확대되면서 독자적인 국문시가로 정착되는 기반을 마련했을 것이다.
이태희: 인간의 사랑과 같은 지극한 감정이나 정서를 실어 나르는 대표적인 (서정시가 계열의) 문학으로서 기능했을 것이다.
-<관동별곡>과 같은 가사 작품이 조선 당대에는 매우 인기가 있어 널리 불려졌다고 하는데, 현대 독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철원: 관동별곡은 지금의 언어와는 많이 다른 표기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최윤상: 지금과는 시대적 배경이 많이 달라서.
조시현: 현대독자들은 당대독자들과는 달리 자연을 소재로 삼아 문학을 창작하는 관습이 다소 약해졌다.
양원모 쌤: 현대인들과는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사 문학은 운문과 산문 중, 어느 갈래에 속할까?
이태희: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서사적으로 드러내고, 그러한 스토리 속에서 환기되는 정서를 함께 드러내기 때문에.
정시진: 산문적인 부분도 많지만 가사의 율격을 보면 4음보 위주로 되어 있음. 가사는 마치 여러편의 정형시들이 합해진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한글이 창제되고 나서도 왜 곧바로 한글 소설이 나오지 않고 여전히 한문 소설의 형태로 창작되었을까?
정철원: 한글이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정목: 한글 창제 초기에는 사대부들이 한글은 너무 쉬운 글이라는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국문학이 천대되었다.
양원모 쌤: 이 당시 한자는 집권층의 권력(헤게모니)적 수단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태희: 한글 창제 직후, 바로 단어나 어휘 체계가 풍부하게 완성되어 소설을 완성짓는 단계까진 못 갔을 것이다. 즉 미묘하고 섬세한 예술적 정서나 복잡한 이야기의 흐름을 표현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다.
-김시습의 소설을 왜 낭만적, 환상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해 보세요.
2. 조선 후기의 문학
-조선 후기에는 임란과 병란 등으로 인한 사회문화적인 문제점들이 문학작품에 형상화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문학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와 모순을 담아내는 것일까?
정철원: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 (문학 작품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전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본질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강한 행동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참여'에서 그 정수를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여 문학론자들의 근본적인 문학관이기도 하지요. 작가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자입니다. 끊임없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독자에게 알리고 사회가 개선될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는 존재이기도 하죠. 조선 후기엔 서민들의 인식에 있어 근대적 각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점차 지배층의 부조리와 위선을 깨닫게 되고 마치 현대의 지식인들처럼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게 되는 거죠. 누구나 쓰기 쉽고 익히기 쉬운 문자인 한글의 일상화가 서민들의 사회적 안목을 널리 확장하는 도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윤상: 간접적으로 사회문제를 비판하기 위해서.
정시진: 작가는 진공 속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 안에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가 지닌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시진군은 사고의 표현이 상당히 유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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