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는 여기저기 카페나 제과점 같은 곳, 심지어는 대중음식점에서도 팔고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도 공산품으로 있는 여름 간식이지만, 의외로 잘 만드는 곳은 드문 아이템입니다. (흡사 냉면과도 비슷하군요.)
개인적으로 팥빙수를 매우 좋아하지만 제과점의 알록달록한 팥빙수는 안 먹는 관계로 1년에 사먹는 횟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만드는 전문점의 경우는 일부러 달려가곤 하죠.
지나가던 길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뭔가 전문점의 포스를 풍기는 곳을 발견했네요. 상호는 팥장군.
목동사거리에서 까치산역으로 가는 곰달래길에 위치한 가게입니다.
큰 간판에는 팥장군이라 씌여 있는데 작은 간판에는 '잭 프로스트'라는 영문이 있군요. 영미문화권에서 동장군을 의미하는 말이죠.
와~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양호한 비주얼이군요.
그런데 얼음을 보는 순간, 뭔가 기억에서 닮은 모습이 바로 연상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촌동의 '동빙고'.
그곳의 얼음과 동일하게 느껴지더군요. 얼음만 떠 입속에서 감촉을 느끼니 추측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동빙고의 빙수 얼음은 다른 가게들과 많이 다릅니다.
먹고난 뒤 확인을 위해 주방 쪽을 보니 역시 추측이 맞았더군요. 동빙고와 동일한 메이커의 빙삭기를 사용하고 있었네요.
바로 이게 그 빙삭기. 일본의 '하츠유키'라는 브랜드입니다. 하츠유키는 初雪이라는 한자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초설, 첫눈이라는 뜻이죠. 빙수를 만드는 기계로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없는 이름 같습니다.
요즘 거의 대부분의 팥빙수는 얼음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 이건 얼음을 만드는 원료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얼음의 형상에 대한 얘기입니다. 절대 다수의 팥빙수는, 설령 매우 유명한 전문점이라 할지라도 빙수 얼음은 그냥 각얼음을 잘게 부수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입에 넣으면 자글자글한 입자 형태로 남아 있어 식감이 그리 좋지 않게 되죠.
하지만 이 업체의 기계는 오래 전 손으로 돌려 만드는 방식과 흡사하게 큰 얼음을 대패로 깎듯이 빙수 얼음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은 입 안에 넣으면 자글거리지 않고 빠르게 녹아들어갑니다. 마치 첫눈처럼 말이죠.
우유를 얼린 얼음을 잘게 부숴 먹는 것보다 제 입맛에는 이렇게 물만으로 얼린 얼음의 사르르 녹는 감촉이 더욱 더 여름철의 호사로 느껴지네요.
그렇다고 우유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아랫쪽에 넉넉히 담겨 있습니다.
제 취향은 빙수가 나오자마자 푹푹 섞어 곤죽을 만들어서 먹는 게 아니라 이렇게 형태를 유지한 상태를 남겨 가면서 먹는 것이기 때문에 얼음의 질감에 중점을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푹푹 섞어 드시는 분들이라면 얼음은 깎던 부수던 결과물은 별 차이가 없는 문제겠죠.
그러고 보니 팥빙수에서 팥에 대한 얘기를 하질 않았군요. 일단 달지 않습니다. 보통의 팥빙수들이 단팥빵에 들어가는 팥소와 동일한 당도의 당침팥을 쓰는 데에 비해 여기는 팥죽보다 아주 약간 단 정도만으로 감미를 했네요. 그만큼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빙수였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얼음의) 팥빙수는 동빙고였는데 사실 여름철에 가면 줄 서서 먹는 게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죠.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보다 낮지 않은 품질의 빙수를 그보다 더 싼 가격에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무척 기쁘군요.
앞으로 꾸준히 자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출 처 : '도싸 서울 게시판' 구정님께서 정보 공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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