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ARD FINEMAN 워싱턴 지국 기자
2003-05-09
정치부 기자라면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시에 가 있어야 했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 순회 토론회가 첫 테이프를 끊는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매거진의 메릴 고든 기자는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 행사는 ABC 방송이 주최하는 토요일 밤 토론회였다.
A Long Shadow
정치부 기자라면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시에 가 있어야 했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 순회 토론회가 첫 테이프를 끊는 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매거진의 메릴 고든 기자는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 행사는 ABC 방송이 주최하는 토요일 밤 토론회였다. 그러나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온 9명의 인지도가 너무 낮은 탓에 토론회를 중계하기로 한 ABC 가맹 방송국은 57개밖에 안됐다. 미국 영토의 절반밖에 방송이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도 ‘심야 지방 뉴스’가 끝난 11시 30분에 녹화방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고든은 오랜만에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화려한 행사에 초대받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자신의 공보비서였던 리자 카푸토의 베이비 샤워(출산을 앞두고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 겸 일요일 브런치 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힐러리의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힐러리 열풍’이 한창이었다. 그날 베이비 샤워에는 자신의 프로에 힐러리를 섭외하고 싶어하는 케이티 커릭, 다이앤 소여, 바버라 월터스 등 잘나가는 여성 방송인들 외에도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항공편 사정상 고든은 도저히 뉴욕에 갈 형편이 안됐다.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의 고문을 맡고 있는 정치 컨설턴트 맨디 그룬월드도 동의했다. “이번 행사는 베이비 샤워 중의 베이비 샤워다.”
현직 대통령에 도전하는 후보 경선은 언제나 그늘에서 시작되지만 이번에 민주당은 정말 문제가 많다. 막강한 두 세력 사이에 끼인 것이다. 한쪽은 물론 테러와의 세계전쟁에서 총사령관을 자처하며 인기 과시를 위해서는 해상에 떠 있는 모든 함선, 아니면 적어도 항모 한대를 사용할 용의가 있는 ‘전시’ 대통령 조지 W. 부시다. 그리고 다른쪽은 클린턴 부부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클린턴 부부를 매도한다. 그러나 클린턴 부부는 미국 경제의 ‘황금시절’을 세운 건축가로, 특히 민주당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민주당이 부시를 누르고 이기려면 클린턴의 경제업적을 떠벌려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 말 많은 클린턴을 2004년 무대에 다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6월에는 힐러리의 자서전 ‘리빙 히스토리’가 출간되면서 클린턴 향수 열풍이 일 것이다. 힐러리의 책은 남편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밀회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특별히 흥미진진한 내용은 없겠지만 종합적 충격파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클린턴 부부와 가까운 한 친구는 “남편을 비난하는 흉내만 내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판에 1백만부를 찍는다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나 받음직한 대접이다. 어쨌든 그 많은 책을 다 팔려면 웬만한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평소 언론과 거리를 두는 힐러리가 직접 판매를 지휘할 계획이다. 한편 그녀의 남편도 한창 자서전 집필에 몰두해 있어 2004년 가을께 출간할 예정이다. 하필이면 선거유세가 한창인 때다.
빌 클린턴은 무대에 서지 않아도 늘 중심인물이다. 클린턴은 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 경선의 비공식 정보센터를 자처하며 후보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지도 않은 충고를 하고 소문을 잠재운다. 그의 한 보좌관은 “그는 이 분야에 관한 한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예비후보들은 클린턴의 전화를 중요하게 간주하며 앞다퉈 전략가로서의 클린턴을 칭송하기에 바쁘다.
이번주 공식적으로 선거유세를 시작하는 밥 그레이엄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은 “클린턴은 항상 좋은 충고를 해준다”고 말했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는 클린턴처럼 유능한 사람을 또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의 진의를 의심하는 전략가들도 있다. 한 예비후보의 보좌관은 “그의 부인은 2008년 대선에 출마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돌아가고 싶다면 그 전에 먼저 우리가 백악관에 들어가도록 돕는 이유는 뭘까.”
클린턴은 조심스레 엄정중립을 표방한다. 지난주 하워드 딘과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 간의 논쟁에 휘말렸을 때도 중립을 지켰다. 극단적 표현을 즐겨 쓰는 딘은 “미국의 군사력이 언제까지나 세계 최강은 아닐 것”이라는 말을 했다. 케리의 베트남전 참전 경력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케리 진영이 가만있을 리 없다. 그런 발언은 딘이 군사력의 쇠퇴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진한 겁쟁이라는 점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방어에 나선 딘 진영은 클린턴의 발언을 찾아내 인터넷에 올렸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분노한 국가들에 ‘포위’되는 사태를 피하려면 외교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클린턴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여행 중에는 좀체로 연락하기가 쉽지 않던 클린턴이 멕시코시티에서 워싱턴 포스트지에 전화를 걸어 왔다. “나는 우리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지 말자고 말한 적이 없다.”(그러나 딘은 여전히 반전이념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후세인이 미국에 위협적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경제 이야기라면 누가 자신을 거론하든 개의치 않는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예비후보들은 열심히 그의 이름을 들먹였다. 금요일 저녁 파티석상에서 최근의 실업률 증가는 부시가 “클린턴 시절 말년의 풍요를 낭비했다”는 증거라고 밥 그레이엄은 말했다. 민주당 내부인사들은 그런 현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을 강력히 밀고 있는 짐 헌트 전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클린턴은 점점 더 중요한 보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주에는 공화당에 투표했다가 요즘 경제상황을 보고는 ‘아무래도 그 클린턴이라는 친구를 다시 불러들여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워드 딘은 클린턴의 경제 실적을 고려할 때 “그와 함께 선거유세를 다녀도 떳떳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예비후보들이 2004년 가을에 과연 그렇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도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클린턴 부부의 연속극 같은 스캔들이 한가지 이유다. 군대에 관한 클린턴의 이미지도 또다른 이유가 된다. 남녀를 막론하고 많은 군 장교들이 그를 욕한다. 요즘 군인들의 인기가 한창인데 말이다. 그들은 클린턴의 과거사를 잘 안다. 석연찮은 병역기피 혐의와 1972년 반전을 부르짖던 조지 맥거번의 선거유세에 참여했다는 것이 클린턴의 원죄다.
맥거번 선거유세는 예비후보들에게도 반가운 과거가 아니다. 예컨대 존 케리는 그해 맥거번의 예비선거 유세에 참여했던 사실을 광고할 생각이 없다. 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년 클린턴의 자서전이 나오면 1972년 유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모인 기자들은 힐러리가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또 베이비 샤워에 참석한 세 여성 거물 중 누가 섭외에 성공했는지도 궁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