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기다림
핸 1:2-14
최근 정치판에서 어느 한 목사님이 구설주에 올라서 여당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과 관련된 여권인사들에게 주의를 주고 심지어 그 목사님과 관련된 당원들은 다 퇴출해야 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계에서도 이 목사님을 이단으로 지목하는 교단들이 많은데 우리 통합측 교단도 이 목사님을 집회금지 및 참석보류 목사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구국사랑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참으로 뜨겁고 본받을만하지만 너무 과하게 정치랑 관여를 하다보니 여러사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질문도 합니다.
과연 목사가 저렇게 정치에 관여를 해서도 됩니까?
천주교의 정의사제단과 같이 기독교도 정치에 깊히 관여해도 되느냐?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따른다고 해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를 하고 있지만 교회는 어쩔수 없이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사회는 민주화 과정과 빈곤화 과정과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태생적으로 정치와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에는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우리 교단에서는 주기철 목사님이라는 순교자가 나오고 고신측이 갈라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6.25전쟁때에는 또한 교회는 공산주의와 싸우게 되는 최선봉에 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부때에도 교회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어서 민중의 편에 서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다 보니까 핍박도 받고 반대로 너무 신앙만 강조하던 보수적 교회는 욕까지 얻어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회와 정치문제에 깊히 관여한 카톨릭 교회나 기장측 교단은 오히려 세간의 칭송을 받게 되었고 너무 경건일색의 보수적 장로교회는 세간의 비판을 받는 결과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 깊히 사회문제에 관여한다면 예배와 기도 그리고 말씀전파라는 교회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하고 반면에 사회문제에 전혀 관심을 닫고 교회안에서 은헤받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이기적인 교회, 나만 하는 교회가 되어버리기에 또한 경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게실 때에도 제자들은 사회문제 정치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 시대는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지배를 받았듯이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라 무엇보다도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강하게 바라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다고 하니까 가장 관심있는 관심사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나라가 로마로부터 언제쯤 독립을 하겠습니까?
6절 말씀에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7절 말씀에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중 심지어 이스라엘독립군에서 나와 예수님을 따른 이들도 있는데 주님의 대답은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이 예수님이라면 메시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망의 독립을 안겨주시고 그 옛날 다윗디대처럼 왕국의 부흥과 발전을 이루어 주시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 때문에 주님을 따른 제자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이 세상 문제에 대해서 관심 끊어라 라고 하십니다.
대신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말씀 그리고 꼭 외워야 할 말씀인 행 1:8절 말씀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볼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제자들이 가졌던 정치적 세속적 관심사에 대해서 주님의 대답은 더 중요한 문제가 너희들에게 있는데 성령을 받아 나의 증인이 되는 일에 힘써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속적인 관심사랑 정치적인 문제에 너무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부탁의 말씀이십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격 말씀이기에 매우 중요한 부탁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행 1;8말씀이 주님의 유언적 말씀이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당부의 부탁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기다리라입니다.
4절 말씀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도의 삶은 늘 기다리는 믿음의 삶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하염없이 앉아서 힘 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다림은 능동적이요 진취적이요 주님이 꼭 주신다는 약속을 받으려는 적극적 행동의 기다림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을까요?
14절 말씀에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기다림의 신앙이란 기도에 힘쓰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에 힘쓰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한 약속은 무엇일까요?
1.성령의 세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4-5절 말씀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주님의 약속은 성령을 주실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세레를 받기 위해 기다려라 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성령세례란 뭘까요?
신학적으로 의견이 분분한데 일단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할 때에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3:14
이렇게 예수 믿고 영접하고 나서 받는 성령을 성령 세례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성령을 받고 나서 변화되어야 하는데 별로 바뀐게 없어요.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게속 나쁜 습관에 머물러 있고, 가끔 술담배도 하고, 성경읽는 것보다 만화나 티비 보는 것이 더 좋고, 기도하는 것 보다 친구와 수다 떠는게 더 좋고, 전도할려니 왠지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고, 십일조 내는 것보다 외식해서 고기 사먹는 게 더 나은 것 같고, 봄 가을 철에는 꽃구경 단풍 구경 간다고 주일 예배 한두 번씩은 빠지게 되는 등..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는데 아직 나는 육신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학자들중 성령세례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받게 되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상의 것을 말한다 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레가 뭘까요?
세례는 원래 침례였습니다.
세례는 물만 묻혀서 머리에 안수하는 것이고 침례는 물 속에 그냥 푹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말씀에 요단강에 들어가서셔 푹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셧다는 것입니다.
즉 원래는 다 침례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강이 없고 물이 없는 곳에서도 세레를 해야 하니 간이식으로 머리 위에 안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세레란 성령 침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물속으로 내가 푹 완전히 잠기는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까지 성령안으로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속에 내가 들어가니 나는 숨을 못쉬고 죽습니다.
즉 내 육체와 자아와 욕망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성령으로 다 적져서서 나오게 되면서 나는 완전히 성령에 젖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이것을 성령충만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세례는 성령충만을 의미한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행 2장과 3장에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아서 그렇다 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성령 받은 것에 만족해 하지 말고 완전히 성령의 물 속에 푹 잠겨 들어 가서 내가 완전히 죽고 성령의 사람으로 나올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내가 성령의 세레를 너희에게 주리라.
성령충만을 받지 못한 우리는 어쩌면 아직 주님의 이 약속을 못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날마다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야 행 1:8말씀처럼 권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너능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충만을 기다려야 된다고요?
14절 말씀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씀으로 성령충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루 10분도 기도 안하면서 성령충만을 기다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쓰는 것 외에는 기다리는 방법이 없습니다.
2.주님의 약속 즉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11절 말씀에 천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우리에게 임하실 것이다 라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 이 약속을 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주님의 재림 이다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이 세상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되고, 요한계시록 말씀처럼 세상의 종말이 다 되어서 땅과 바다는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어서 누구는 영생으로 누구는 영벌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 내가 다시 오리라 라는 이 약속은 우리에게는 끝이 있으며 종말이 있으며 마지막 날에는 누구나가 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엄숙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심판이 있고 끝이 있고, 상벌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행동을 돌아보게 되며 아무렇게나 내 기분대로 내 욕심대로 내 쾌락과 향락과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 우리 성도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늘 기름을 준비하면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종말론적 신앙이다 라고 말합니다.
엣날 다미선교회난 무슨 이단들처런 주님이 언제 몇일 날 오리라 하는 것에 빠져서 너무 종마론적 신앙으로 사는 것도 문제지만 주님이 올 때는 아직 깡깡 멀었어 하면서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맨날 술에 취해 놀고 먹고 마시면서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풍류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사는 것 또한 큰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해도 주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부끄럼 없는 경건한 믿음과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일까요?
성경의 첫 말씀은 다 아시죠? 창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게 22:20-21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즉 주님의 재림의 약속을 기다리며 우리는 살 것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라나타 라고 하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 마다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도 인사해 봅시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