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여행 준비, 전 재산이었던 아파트까지 팔아 여행 경비 마련, 12년 된 미니버스를 1년간
숙식 가능한 ‘길 위의 집’으로 개조, 울산 간절곶에서부터 포르투칼 호카곶까지 미니버스만 몰아 350일 세계일주! 이 거짓말 같은 일을 실행한
주인공이 바로 빼빼가족이다.
매스컴을 통해 화제의 인물로 오르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을 썼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족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달린 한 가족의
여정이 아버지의 글과 어머니의 그림, 아이들의 포토에세이로 흥미롭게 담겨 있다.
350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가족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셨을 텐데,
근황 좀 알려주세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이들은 1년여의 여행 기간 동안
각자 분담하여 기록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 들를 정리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 진땀을 흘렸습니다. 지금은 대학 준비 중인 큰딸 다윤이, 식당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세상을 배우고 있는 둘째 진영이, 고등학교 1학년에 복학한 막내 진우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행 중 책을 내보자는 출판사의 행운의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글쓰기로 멋진 고통의 시간, 10개월을 보냈고 책이 출간된 요즘에는 박
여사(아이들 엄마)와 함께 짓다만 집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도 갖고 있고요.
유라시아대륙을 미니버스로 횡단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4평 정도의
작은 공간은 가족의 생각이 보일 정도로 작은 공간입니다. 이 작은 집에서 한 가족이 1년을 잘 살아내려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는 아이들의 어깨에 무엇이 올라와 있는지, 현시대의 부모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해서 다섯
명의 가족이 서로를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여행, 그 중에서도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방편이
미니버스를 몰고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니실 때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었죠? 학교
대신 선택한 여행에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고3, 고1, 중3. 이 시기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라는 것, 아이들이 자신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 부모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올려놓아야 할 시기라는 것,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이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의 중심에 ‘가족’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들은 여전히 공부는 뒷전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듯 보이고, 서로가 할 이야기가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결혼을 한 후에도 서로 만나 가족의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감사한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조금씩 움직이는 집이라 매일이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만남, 도난, 등 여러 가지 일중에 차량의 큰 고장(밋숀파손)으로 이탈리아 기아 A/S에 발이 묶였을 때 일 것입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의 셍겐조약으로 무비자 90일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도난으로 수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수리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을
때입니다. 정말 고마운 것은 우리의 사정을 들은 기아 이탈리아 법인에서 셍겐조약을 해결하는 방법에 머리를 맞대어 주셨고 큰 돈의 수리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준 가족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라는 이유로.
작가님이 꼽는 최고의 여행지를 소개해주세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입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1차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곳입니다. 해서 여행이 힘들 때마다 ‘바이칼 호수까지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도 드넓고 험난한 시베리아벌판을 지나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바이칼 호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양으로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여행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걸. 더불어 그곳에서 만난 마음 착한 어부들과 나눴던 보드카의 맛은 어떤 술보다도 진하고 향긋했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에 언젠가 꼭 한번 바이칼 호수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길 위에서 ‘아버지’라는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여행을 가기 전과 후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여행 전에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살았지 가족을 위하고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무엇을 위해 열심히 쫓아다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늘 무엇에게 열심히 쫓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허울뿐인
‘아버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그냥 부르기 위한 이름이 아닌 아이들 마음속에서,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 박 여사의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울림이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찾아주었습니다.
여행은 중독이라는 말이 있지요. 힘들 게 다녀왔어도 다시 떠나고
싶은 게 또 여행이니까요. 다음 여행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번에 간다면 또 가족과 함께 떠나고 싶은지도 여쭤볼게요.
여행 준비 기간 1년, 여행 기간 1년, 합이 2년을
다섯 가족이 24시간 삼시세끼를 같이 했습니다. 아이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앞으로 여행은 따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