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숲'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중미산 ‘상록수’의 추억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을까, 중미산 자연휴양림의 ‘상록수’ 현관에서 난데없이 노래판이 벌어졌다. 추적추적 는개가 하염없이 내리는 7월 하순, 통나무집 숙소의 식당 안에 놓인 식탁과 의자를 들고 비가 들치지 않는 현관에 6인의 취객들이 모여든 것이다. 종이컵에 맥주잔이 돌아가고 덩달아 노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마당에 홀로 나가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를 열창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아련하게 들려 왔다. 주위에 빽빽하게 자리한 침엽수림과 활엽수림 그리고 가로등은 여름밤의 운치를 돋우고 있었다. 다행히 평일이어서 주위에 투숙객들은 아무도 없었다.
해마다 여름방학이 돌아오면 우리 학교 생활지도부 교사들은 곧장 연수를 떠난다. 1학기 동안 학생지도를 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다. 연수지는 바다가 아닌 산. 중미산 휴양림이었다. 한 학년에 17개 학급, 도합 51개 학급으로 구성된 우리 학교는 메머드급이다. 2천여 명의 학생들을 소수의 담당교사가 지도함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학생들의 인권이 최고로 존중되는 이 시점에서 학생지도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했다. 두발과 복장이 단정한 학생, 예의 바른 학생, 실력과 인성을 고루 갖춘 학생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세 대의 차에 분승해서 차를 몰았다. 서울의 학교에서 양평의 휴양림까지 1박2일의 일정에 들어간 것이다. 9명의 동료들, 새벽 1시가 넘어서자 하나둘 곯아떨어졌다. 거실에서 술잔을 홀짝거리며, 지난 학기를 되짚으며 앞날을 얘기하던 부장교사가 느닷없는 제안을 했다.
“밖으로 나가자.”
상록수 현관에서 바라본 밖은 절경이었다. 1백여 미터 앞에 가로등 불빛이 보이고, 그 불빛 주위로 이슬비가 바람결에 흩날리고, 공기는 서울과 완연히 다르고. 누가 말했다. 신혼여행 때보다 더 운치가 있는 풍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굳이 외화 허비하며 해외여행 할 필요 없다고, 한반도 구석구석까지 잘 살피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곳은 아직도 많다고, 중미산 상록수 현관에서 바라본 가로등이 바로 그 장관이라고. 일행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대화 없이 가로등 쪽만 바라보았다. 뒤이어 자연스레 노래가 흘렀음은 물론.
거역하기 어려운 인간의 생체리듬. 새벽 4시가 되자 일행은 모두 잠자리에 접어들었다. 보일러를 켠 채 모든 문은 가급적 개방했다. 시원한 공기, 순수한 공기를 자면서도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8시 무렵, 나는 눈을 자연스레 떴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1주일에 한두 번꼴로 시달렸던 편두통, 출발할 때 느껴졌던 머리의 지끈지끈함도 휴양림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4시간을 자도 졸리지 않았다. 하품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 예닐곱 시간을 반드시 자야만 그날 일이 제대로 풀렸던 나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놀라지 않았다. 답은 자연에게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중간에 위치하여 무게 있고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이름한 중미산(仲美山), 그 산자락 통나무집에서 피톤치드의 효과를 인정한 나는 동료들이 TV 보고 몸을 씻으며 ‘아점’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홀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 인근에는 한 시간짜리 숲 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자귀나무, 신갈나무, 국수나무, 나리꽃 등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산책하는 나를 반기는 듯 했다. 특히, 코끝을 스치는 알싸한 솔향.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자연의 숨결을 마음껏 느꼈다.
계곡물에 다다랐다. 거기서 얼굴을 씻으며 내 심신에 덕지덕지 자리한 오물들까지 털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나무에서도 향기가 났고, 물에서도 향기가 났으며, 어느 순간 나에게서도 그 자연의 향기가 묻어 있음을 느꼈다. 나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은 은연중 삶의 지침 하나를 나에게 선사해 준 것이다. 자연은 이제 위대한 스승이었다.
우거진 수풀과 계곡을 따라 흐르는 청정수가 함께 어우러진 중미산 자연휴양림! 상록수 현관! 엄마야 누나야! 가로등과 이슬비! 피톤치드! 1박2일의 아니 열여덟 시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하던 두통이 사라져서 좋았다.
앞만 보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사에서 잠시의 휴식은 인간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다. 특히, 숲 속 여행은 인간도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임을 체득하게 해 준다. 서울로 귀가하는 차 안에서 차창을 활짝 연 채 자연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초등학생 딸과 함께 3인의 가족이 다시 이 휴양림에 오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남모를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