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을 오를 수 있는 가장 짧은 등산코스 천왕봉을 오르는 지름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법계사까지는 칼바위, 망바위로 해서 오르는 길과 순두류를 거쳐 오르는 두 갈래 코스가 있는데 순두류로 해서 오른다면 비록 2km는 더 걷지만 거의 엇비슷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디로 해서 오르더라도 무방하다. 다만 칼바위, 망바위 길은가파른 능선길이라 더운 여름철에는 짜증스럽고 식수 부족을 느끼곤 하므로 순두류까지의 비포장도로로 길을 거쳐 계곡과 접해 오르는 길이 수월한 면도 없지 않다.
칼바위 이정표에서 우측 돌계단길을 올라오면 좌측으로 철다리를 건너게 된다. 비교적 계류도 넉넉하게 흐르고 공간도 주변에 많이 있으나 법계사 까지는 식수가 없으므로 식수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왼편 가파른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한참 후에 평탄한 능선이 잠시 나오게 된다. 멀리 법천폭포의 요란한 물소리가 발길을 부여잡는 전망 좋은 곳이다. 참나무, 박달나무, 도토리나무 등이 우거진 길을 가다보면 새로 산죽을 베어 등반로를 뚫은 길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사태진곳도 많다. 진달래 관목이 눈에 많이 띄고 좌우 양쪽의 전망은 탁 트여 촛대봉, 연하봉이 가늠되기도 한다.
꾸불꾸불한 오르막길을 인내심을 가지고 오르다보면 어느덧 거대한 둥그스럼한 바위가 막아 서는데 망바위다. 마치 경계병처럼 망을 보고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그렇게 이름지어졌는데 자못 그 기세가 늠름하다. 망바위에서는 덕천강, 경호강의 유유한 물줄기가 들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주변 야산의 풍광이 이채롭게 보인다.
망바위에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한 능선 평지길이 펼쳐진다. 이길을 따라 얼마간 쭉 걸으면 좌측으로 방향이 꺽이면서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무수히 많은 돌밭길로 내려선다. 바위들로 병풍을 두른 공터가 나오는데 샘물도 두어 군데 솟아나고 비박한 흔적이 있는 삼각굴도 보인다. 주위에 공간도 있고 아담한 분위기가 마음을 끈다. 이곳에서 잠시 경사진 길을 올라오면 평탄한 공터가 다시 나오고 법계사와 로타리산장이 지척에 있다. 주위에 나무를 베어 천왕봉도 훤히 올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고운 최치원의 전설이 깃든 문창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1979년 10월 진주산악회 학술조사반에 의해서 법계사 서북쪽 30m 지점으로 위치 수정되었는데 이곳에는 최치원이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이라는 문구가 한자로 암벽에 새겨져 있다.
새로 발견된 문창대가 아닌 옛 문창대에는 3층으로 된 험준한 암석위에 깊이 20cm, 직경 40cm 가량의 돌우물이 있어 물이괴어 있는데 이것을 일명 '천년석천(千年石泉)'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부정한 자가 여길 오르면 비바람이 몰아쳐 떨어뜨려버린다고 하며 산 아래 마을주민들이 날이 가물면 이 물을 퍼나르기도 했다라고 전하며 ..... 그러면 곧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려서 이 돌우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로타리산장은 '78년 10월 당시 국제로타리클럽 부산지부에 의해서 건립된 단층 슬라브 건물이다. 건립 당시의 돈으로 3천만원이 들었다고 하며 25평 규모로 40여 명 정도 수용한다. 순두류쪽에서 수월하게 물품을 져올릴 수 있기 때문에 물품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고 겨울철에는 지리산 산장 중 유일하게 갈탄 난로불을 지피기도 한다.
로타리산장 바로 위쪽에 자리잡은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9년(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높은 산중에 위치한 절인데 고려 우왕 6년(1380년) 9월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에서 패한 왜군이 추성 통로로 후퇴하면서 분풀이로 천왕봉 성모상을 칼로 찍고 이 법계사마저 불태웠다. 1908년 항일 의병 박동의 부대가 덕산싸움에서 왜군에게 패한 뒤 이곳으로 후퇴하여 일본군과 맞섰지만 결국 다시 패함에 따라 법계사도 다시 한번 일본군에게 불타게 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인지 모르지만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느니 법계사가 없어야 일본이 흥한다느니 하는 숙명론적인 말들이 아직껏 전해온다. 그후에도 법계사는 6.25를 거치면서 빨치산 근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경측에 의해 지리산 여타의 사찰처럼 불타게 된다. 지금은 1981년 재건된 법당과 특이하게도 전통 무속신앙 등을 위한 배려로서 산신각, 칠성각 등 부속건물이 있다. 아마도 천왕봉에 성모상이 있었을 때 숱한 치성객, 기도객들이 이곳을 거쳐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같다. 법계사 경내에는 높이 3.6m의바위 위에 높이 2.5m의 3층석탑이 있다. 자연석 기단을 이용한 독특한 이 작품은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되고 보물 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계교에서 로타리산장으로 오르는 또다른 길 순두류 코스는 법계교에서 우측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울창한 낙엽송숲이 하늘을 찌를 듯 펼쳐진다. 지리산 어느곳보다도 조림상태가 양호한 곳이 바로 순두류 일원이다. 여름철 햇볕에 노출된 이 도로를 따라 오르면 후덥지근하지만 산죽나무숲과 미려한 낙엽송 지대를 바라보며 걷는 맛도 상쾌하다. 법계교에서 순두류 자연학습원 이정표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순두류는 해발 900m 지대에 경사 10도 정도로 전개된 완만한 3만여 평의 평지를 말한다. 이름 그대로 두류산이 순하게 흘러서 평원을 이룬 곳인데 사방을 가파른 연릉이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특이한 지세가 돋보인다 한때는 인삼재배밭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1960년대 지리산 개발 조사사업 때는 목축단지로 조성한다는 청사진도 나왔지만 비교적 돌이 많고 평지밭이 적어서 적지는 아닌 듯하다. 지금 이곳에는 지난 1981년 각도에 하나씩 자연학습장을 설치한다는 정부시책에 따라 경상남도 자연학습원이 들어서 있다. 1982년 착공하여 만 4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2만 평의 대지에 각종 수련동, 숙박동 등 건물이 들어서 있고 자체 야영장과 심신수련장이 구비되어 있다. 지난 1987년 4월 16일 개원한 이래 매년 3월말 - 11월에 걸쳐 경남지역의 초중고생을 비롯 공무원, 자연보호 명예감시원, 새마을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주로 자연보호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순두류 자연학습원과의 갈림길에서 왼편의 넓은 길을 오르면 현대식 화장실 건물이 있는 곳에서 넓은 길은 끝나고 소로길로 접어들게 된다. 각각의 나무에다 이름을 적은 노란 명찰이 눈에 띈다. 평탄한 오솔길로 얼마 안 가 계곡과 만나고 여기서 철다리를 건너면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속칭 중봉골(또는 마야계곡)이라 부르는 비경의 험난한 계곡 코스와의 갈림길이다.
여기서 왼편으로 조금 가면 다시 두번째 철다리를 건너게 된다. 맑은 계류가 더없이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고 이제부터는 산죽 소로길로 접어들어 미끄런 경사길을 오르게 된다. 잠시 오른쪽으로 휘어지던 등반로가 해발 1,200m 갈림길 이정표와 마주치고 여기서 좌측의 오르막 길을 택해 그늘진 숲을 오르면 점차 계류도 희미해지고 로타리산장에 이르게 된다.
로타리산장에서 천왕봉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이고 암벽등반을 방불케 하는 스릴도 있지만 눈, 비 올 때 어지간히 미끄러운게 아니므로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중간에 천왕샘이 있지만 수량도 적고 갈수기에는 바짝 말라버리므로 로타리산장 앞 샘터에서 식수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법계사 입구 왼편 비탈을 돌아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 야영장터가 나오고 산죽을 베어 뚫어놓은 길을 지나면서 경사도 차츰 가파라진다. 곳곳에 철책과 철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뒤돌아보면 멀리 남해 바닷가가 아른거리고 동쪽으로 웅석봉의 능선자락이 마치 얼룩말 무늬처럼 선명하다. 로타리산장에서 약 20-30분 오른 곳에 길이 10여 m, 높이 1.5m 정도의 길다란 굴이 나타난다. 텐트도 치고 비박한 흔적이 생생한데 옛 천불암터라고 한다. 등반로변에 위치하므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굴이 있는데 암법주굴이라 부른다.
암법주굴은 이성계가 팔도명산에 기도 드리던 굴이라 말하고 암법주굴의 위치를 법계사 우측 2km지점으로써 법계사와 천왕봉사이에 있었던 암자로 절이라기보다는 천연의 수도처였던 곳이기도하다. 근세에 와서는 동학농민전쟁과 의병란때 의병도총부 소관의 부상병 치료소, 여순병란과 6.25 전쟁중에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이 되었다. 지금은 때로 천막을 갖지 않은 등산객들이 여기서 불을 지펴 바위를 데운 뒤 그 위에 담요를 깔고 밤을 세우기도한다 . 옛 천불암터에서 철책을 붙잡고 오르면 한숨 돌릴 수 있는 평지가 펼쳐지고 잠시 후 개선문 이정표가 나온다. 천왕봉 서쪽의 통천문과 함께 천왕봉을 오르는 관문인 셈이지만 통천문처럼 신비스럽고 위엄을 갖춘 것은 아니다. 마치 개선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과거에는 좌측은 물론 우측에도 비슷한 높이의 바위기둥이 서 있었다. 지금은 우측의 기둥은 붕괴되어 없어지고 좌측에 높이 10m의 문설주 모양의 바위가 서 있을 뿐이다. 폭 2m의 개선문 사이로 비집고 올라가면 경사 급한 비탈길이 계속 이어진다. 철책을 부여잡고 힘겹게 올라선 곳에 약간의 공터와 함께 천왕샘이 나온다. 약 6m 정도의 바위 밑에서 희한하게 샘물이 흘러나오는데 1977년 두류산악회에서 석공을 동원하여 물이 고일 수도 있도록 홈도 팠지만 가물 때는 말라버리기 일쑤다. 해발 1,8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나오는 샘물로서 명목적 가치는 있지만 아무래도 천왕봉 암석지대에 스며든 물이 나오는 것이라 큰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곳에서는 천왕봉이 머리위에 있어 거리 300m정도이니 가파른 계단길로서 10분이상 소요된다.
첫댓글 대충 산은 다닌다고 다녔는데 실은 지리산을 못갔어. 솔바람, 지리산 정보 고마워. 근데 솔바람은 무슨 정보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