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 목사님의 새로운 시도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의 지역 교외에서 어린 시절 신앙생활만 해 온 탓에 그리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저에게, 결혼이라는 시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교회에서 벗어난 시점) 이후로 몇 가지 일들로 인하여 교회라는
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서인지... 목사님께서 구상하시는 새로운 포맷의 교회에 대해 기대가 많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북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처럼, 어쩌면 제 신앙의 틀을 유지하고 싶었다면 저도 어린 시절 그 교회 밖으로 벗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원치 않았지만, 그
교회를 벗어나 다른 교회 모습들을 보고 난 뒤 신앙의 형식에 대한 기존 갖고 있던 전통적인 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어린 시절 그 교회 틀 밖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다른 종교를 가진 천주교인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같은 기독교이지만, 엄연히 다른 종교로 분리되어
있고,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상호 배척이 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천주교인은 자식을 불교도와는 결혼 시켜도 개신교도와는
결혼시키지 않는다"라고 할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처럼 천주교와 개신교가 멀지 않은 것 같더군요.
처음 저는 제 아내가 저를 따라 개신교로 개종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에 열심이신 저의 어머니만큼 장모님도 천주교에 열심이신 바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덕택에 가끔 저는 천주교 성당에 가 볼 수도 있었고, 아내 또한 개신교
교회에 따라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아내는 천주교 용어로 출석을 안 하는 "냉담자" 상태이고, 저만 혼자 개신교 교회에 나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게 금단의 구역과도 같았던 천주교 성당에 몇 번 가 보면서 신앙적인 본질의 문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교회의 운영방식에 대해서 관심 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 개신교에서 보지 못한 내용들이었으며, 개신교에 익숙한 제게는 심히 부러운 부분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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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를 옮기면 성도의 의사에 관계 없이 자동으로 새로 이동한 거주지 가장 가까운 곳의
성당으로 교적을 이동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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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인구/신도 증가에 따라 (때로는 신도시/주택단지 건설 등의 이유로) 성당이 신설되는데, 이 때에는 주변 성당의 기존 성도들은 주소지에
따라 신규 성당으로 자동 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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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이유로 인하여, 성도들은 자기 교적지를
두고 다른 곳으로 멀리 성당을 가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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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인 이유로 성당의 재정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지역본부 또는 중앙회가 재정을 걷고 재분배 하므로, 가난한
성당, 부자 성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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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에게는 숙식과 최소한의 생계비만 공적으로 지급되다.
성직자가 되는 순간 먹고 살아가는 생계에 대한 근심도 없어지지만, 반대로 세속적인 부의
축적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가톨릭 성직자들은 가족을 가질 수 없는 바, 부의 축적의 동인이 일반인에 비하여 크지 않아 부에 대해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결혼 금지로 인해 생기는 동성연애와 같은 부작용도 함께 있긴 하지만 이는 소수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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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정확히 정해진
기간만 해당 성당에 근무하며, 일정 시간 후 자동으로 다른 성당으로 전출되고 새로운 성직자가 전입한다. 성도들은 성직자를 손수 택할 일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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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은 상호 인사권한이 없고 오로지 상위 조직에서 인사발령을 내므로 주임신부라고 해도
성당 내에서 일방적인 권력을 가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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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가톨릭
교회에 있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 교회처럼 재산을 놓고 일어나는 분쟁이 성당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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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강제되지 않으며, 대신 원하는 사람은
교부금을 납부한다.
개신교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참 체계화 된 조직 운영이라 감탄할 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특별한 조직이 아닌 일반적인 중앙 통제 체제를 가진 일반적인 조직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내용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각 군대 부대를 생각하면 됩니다.
반대로, 왜 한국 개신교는 이렇게 되지 못하였을까 생각한다면,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각 나라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각 교단들이 교세를 세워가기 시작하였던 문제로 시작되어
개별적인 교회들이 자생적으로 개척되면서 파편화 되는 바람에 기대하기 어려워 진 부분들이겠지요. (비유가
좀 그렇지만, 세속적인 것에 빗대자면, 천주교는 직영점만
운영하는 스타벅스 형태의 교세 확장을 한 반면, 개신교는 이름만 빌려주고 각 점포 주인이 따로 있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교세 확장이 된 것이지요)
이제는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탓에 위와 같은 천주교 성당들의 운영방식을 개신교 교회에서 기대하기 힘들어져
버린 상황입니다. 개신교의 입장으로 볼 때는 영원히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모습이 되는 것 같더군요.
특히 교회의 재산권을 둘러싼 논쟁들과 이로 인하여 성도들이 상처받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들은 한국 개신교가
요즈음 많이 겪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혼을 한 저는 정들었던 서대문구를 떠나 올림픽공원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모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는 우연히도
제가 어린 시절 다니던 “그 교회”와 같은 교파이면서 같은
노회에 소속되어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교회는 아주 큰 내홍을 앓고 있었습니다. 초대 개척을 하신 목사님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고, 상당수의 교인들은 이를 조직적으로 반대하면서 교회 안에 큰 분란이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은 세습은 완료되었으나, 교인들은 큰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고
많은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재산이 목사의 사유재산과 구분하기 어려운
한국 개신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되더군요.
이후, 저는 동대문구로 이사를 하였는데, 집 근처에 “어린 시절 그 교회”와
연관이 되어 있는 또다른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번에는 이 교회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장로님들간의 갈등이 노출되는 교회였습니다. 제황적
리더십을 가진 담임목사님은 설교시간에 맘에 안드는 장로님을 대놓고 반말하면서 야단치고, 실적이 부족한
교역자들을 매년 무자르듯 갈아치우곤 하셨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저도 보기 어려운 풍경을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더군요. 이는 개인적인 리더십의 차원이긴 해도, 눈쌀이
찌뿌려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인도네시아에 파견되어 근무한 지 3년이 되어갑니다. 여기서 한인 교회를 찾아 출석하면서도 한국에서 느끼던 문제점들을 여실히 똑같이 느끼게 되더군요. 이 나라 선교를 위해 개척된 교회가 아니라, 이 나라에 건너온 한국사람을
위한 교회인 만큼 어쩔 수 없이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판박이처럼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타지에 나와 있는 한국 성도들의 신앙 터전을 만들어주는 취지는 맞지만, 선교적인
측면은 아닌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상상 가능하시겠지만, 여기서도
새로 개척되는 교회가 있고, 새로운 신도가 늘지 않는 인도네시아 한인 교민/주재원들의 인구 특성을 생각할 때, 새로운 교회들은 다른교회 출석하는
성도들을 뺏어와야 하는 제로섬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저는 가나안 성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디 교회에도
등록하지 않고 커뮤니티에도 끼지 않은 상태로 신앙생활만 하고 싶은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도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빠져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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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던 간에....
신앙이란 본질의 문제가 교회라는 Frame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보니,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문제들은 성도들의 신앙 본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으며, 개신교 밖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합니다.
목사님께서 이러한 현대 한국개신교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온라인 교회를 개척하시겠다는 뜻에 큰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당연하겠지만, 목사님의 이러한 첫걸음이 아마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IPTV가 처음 나왔을 때, 이것이
방송인지, 통신인지 상당히 혼란스러웠듯, 목사님이 소속되어
있는 교단으로부터 마가 교회가 단순한 개신교인들 간의 말씀 나눔 커뮤니티인지, 아니면 정말 실체가 있는
교회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부터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존 교회의 형식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분들의 입장에서 "교회의 본질 중의 하나인 성도간 교제 (모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주일의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목회자가 집전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행위"가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아 교회로 볼 수 없다는 의견들도 나올 것입니다.
저는 굳게 믿습니다. 법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지, 법이 세상보다 먼저 변화한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즉, 새로운 개념과 틀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데 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정착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법과 제도들은 이에 따라 바뀌게 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IPTV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사용하며, 양방향으로 교신을 하는 "단방향 broadcasting"와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신으로 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IPTV의 최종 결과물은 “사람이 집에 앉아서 TV를 통하여 시청각 Content를 보는 행위”라는 방송과 다르지 않은 본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신쪽에서 규제할 지, 방송위원회에서
규제할 지 한 동안 애매하였겠지만, 본질 상 방송임을 인정하고 지금은 방송위원회의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가교회가 교회인지 아닌지에 대해 한 동안 논란에 휩싸일 수 있겠으나, 결국은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앙의 터전”이 분명해 질 것이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의 포맷이 기성교회들과 공존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가교회를 개척하시면서 “양적 부흥”이
아닌 “자리매김”을 염두에 두고 계심이 잘 느껴집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나서는 개척자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뜻을 받잡아 이 교회의 자리매김을
잘 해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목사님도 쉬흔이 넘으신 바, 항상 건강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곳 타지에서 혼자 살다 보니 가족을 향한 그리움도 문제지만 건강도 현실적인 문제더군요. 열심히 운동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도 체력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마가교회와 목사님께 함께 있길 기도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