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감도의 자기 와이어 녹음기(wire recorder)는 1900년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주18) 영화산업은 1930년대부터 광전지(photoelectric cell)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의 광학적 '사운드 온 필름 녹음'(sound-on-film recording) 기술을 채택하기 시작했다.(주19) 독일의 전자회사 AEG가 최초의 테이프 녹음기(tape recorder)인 '마그네토폰'(Magnetophon) K-1을 출시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마그네토폰 K-1'은 1935년 8월에 '베를린 라디오 쇼'(Berlin Radio Show)에서 공개됐다.(주20)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발터 베버(Walter Weber)는 '교류 편향'(AC biasing) 기술을 재발견하여 적용했다. 이 기술은 귀에 들리지 않는 고주파 음향을 추가하여, 자기 녹음의 감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이로 인해 1941년에 출시된 '마그네토폰 K-4'의 주파수 대역은 10 킬로헤르츠(kHz)까지 이동했고, 동적 범위(dynamic range)도 60 데시빌(60 dB)까지 개선하여,(주21) 당시까지 나온 모든 녹음 시스템의 능력을 뛰어넘었다.(주22)
AEG는 1942년부터 스테레오(stereo: 2트랙 방식) 방식으로 시험 녹음을 하고 있었다.(주23)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이 장치와 기술은 독일 바깥에서는 비밀로 남아 있었다. [나치 정권기 최대 기업이었던] 'IG 파르벤'(IG Farben) 사의 마그네토폰 녹음기들과 릴 테입들이 노획되어, 잭 물린(Jack Mullin: 1913~1999) 및 여타 인물들이 그 산화철 테이프들을 미국으로 가져왔던 것이다.(주24)
이때 노획된 녹음기와 테이프들은 미국 최초의 상업적인 전문가용 테이프 녹음기 개발에 토대가 되었다. 미국의 '앰펙스'(Ampex) 사가 '모델 200'(Model 200)을 출시했던 것이다.(주25) '모델 200'의 개발에는 가수이자 연예인이었던 빙 크로스비(Bing Crosby: 1903~1977)의 지원이 있었는데, 빙 크로스비는 사상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녹음 방송으로 진행했고, 테이프에 녹음을 한 스튜디오 마스터이기도 했다.(주26)
(사진) 일렉트로-어쿠스틱 테이프 뮤직의 전설적 선구자이자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 학자인 할림 엘-다브가 2009년도 '클리브랜드 페스티발'(Cleveland festival)에 등장한 모습. 그는 이 행사에서 드러머 1천명을 리드했다.
자기 음향 테이프는 뮤지션들과 작곡가들, 그리고 프로듀서들과 엔지니어들에게 새롭고도 다양한 음향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음향 테이프는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매우 신뢰할만 했으며, 재생 감도 역시 당시까지 나온 그 어떤 음향 매체들보다 나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디스크와는 달리 영화에서와 동일한 사용의 유연성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테이프는 속도를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녹음 중이나 재생 중에 뒤로 되돌릴 수도 있어서, 종종 놀랄만한 효과도 제공해주었다. 따라서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부분을 단절됨 없이 제거하거나 대체하는 일도 가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녹음의 테이프 일부만 잘라와서 편집하는 일도 가능했다.
또한 테이프를 이용하면 끊임없는 루프(loop: 반복녹음)를 만들 수도 있었다. 루프는 미리 녹음된 음원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재생시키는 패턴을 말한다. 이후 음향 앰프들과 믹싱용 장비 등 프로듀싱 장비들이 등장하면서, 테이프의 기능적 능력을 더욱 확대시켰다. 이러한 장비들은 이미 녹음된 음원이나 라이브 공연 음향, 연설이나 연주 등을 믹싱할 수도 있게 만들었고, 여러 음원들을 상대적으로 감도의 저하 없이 동시에 녹음할 수도 있게 해주었다.
음향 테이프의 미처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장점은 에코 머신(echo machines)과 상대적으로 손쉽게 조합되어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에코 머신은 복잡하면서도 통제가능한 고음질의 에코(echo, 반사음)와 리버브(reverberation, 음의 지속도, 공간감) 효과를 만들어주는데, 그 대부분은 기계적 수단만으로 얻기 힘든 것이다.
테이프 녹음기의 확산은 결국 '일렉트로-어쿠스틱 테이프 뮤직'(electroacoustic tape music)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음악의 최초의 사례는 이집트 카이로의 대학생이었던 할림 엘-다브(Halim El-Dabh: 1921~ )가 1944년에 작곡한 것이었다.(주27) 그는 거추장스런 와이어 녹음기를 이용하여 '자르'(Zār 혹은 Zaar, زار) 종교의 의례에서 사용된 음향들을 녹음했다. 그리고 '미들 이스트 라디오'(Middle East Radio)의 스튜디오에서 이 음원에 리버브, 에코, 전압조절, 재녹음 등을 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1944년 카이로의 한 아트 갤러리의 행사에서 <자르의 표현>(The Expression of Zaar)이란 제목으로 공개됐다.
(동영상) 최초의 '일렉트로-어쿠스틱 테이프 뮤직'으로 일컬어지는 할림 엘-다브의 <자르의 표현>.
할림 엘-다브의 초창기 테이프 기반 작곡 실험들은 이집트 바깥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의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Columbia-Princeton Electronic Music Center: CPEMC)에서 주목할만한 일렉트로닉 뮤직 활동들을 보여주었다.(주28)
(주22) Krause, Manfred (2002), "AES Convention 112 (April)", The Legendary 'Magnetophon' of AEG, Audio Engineering Society E-Library., paper number 5605. 초록(Abstract).
프랑스 파리의 작곡가들이 테이프 녹음기를 사용하여 '뮈지크 콩크렛'(Musique concrète, 구체음악, 具體音樂)이라 불리는 새로운 작곡 기법을 발전시킨 것도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이 기술은 자연이나 산업 현장에서 녹음된 음원 파편들을 함께 조합해서 편집하는 일도 포함했다.(주29) 최초의 뮈지크 콩크렛 작품들은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27~ )와 공조해서 조합해낸 것이었다.
1948년 10월 5일, 프랑스 '국영 RDF 라디오'(Radiodiffusion Française: 오늘날의 '라디오 프랑스')가 피에르 셰페르의 작품 <철로 연습곡>(Etude aux chemins de fer)을 방송했다. 이 작품은 <다섯 개의 이상한 소리들>(Cinq études de bruits)의 제1악장으로서, 스튜디오 제작의 시초이자(주30) 최초의 뮈지크 콩크렛 작품, 혹은 '어코스매틱 예술'(acousmatic art) 작품으로 기록됐다.
(동영상) 피에르 셰페르가 1948년에 발표한 <철로 연습곡>.
(동영상) 피에르 셰페르의 <철로 연습곡>을 신세대 음악인들인 타악기 주자 한네스 린겐스(Hannes Lingens)와 색소폰 주자 피에르 보렐(Pierre Borel)이 2011년에 새롭게 해석하여 연주했다. 이들은 기술적 편집에 주안을 두었던 원곡의 음향을 자연스런 악기 소리를 이용해 재현하는 역-발상을 채택하여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이 동영상의 연주 장면은 2012년 9월 2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위치한 '실험 소리 갤러리'(experimental sound gallery)에서 행한 라이브 공연이다.
셰페르는 이 작품을 위해 금속 가공용 선반 1대, 턴테이블 4대, 4채널 믹서 1대, 필터, 에코 챔버, 이동식 녹음 기구를 사용했다.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피에르 앙리가 셰페르와 협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일렉트로닉 뮤직의 방향에 심오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셰페르의 또 조력자였던 에드가르드 바레즈(Edgard Varèse: 1883~1965)는 <사막들>(Déserts)이란 제목의 연작들을 만들기 시작했다(1950~1954년 사이). 이 작품은 챔버 오케스트라와 테이프의 협연을 위한 곡이었다. 이 곡의 테이프 재생 부분은 피에르 셰페르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됐고, 나중에 미국 '컬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동영상) 에드가르드 바레즈의 <사막들>. 지휘: Volodymyr Runchak.
1950년, 셰페르는 프랑스 ‘에꼴 노르말’(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뮈지크 콩크렛 최초의 대중적인 콘서트를 개최했다. 셰페르는 PA 시스템과 여러 대의 턴테이블들, 그리고 믹서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턴테이블들을 라이브로 짜맞추는 일이 이전에는 행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연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주31)
같은 해 그 공연보다 이후에, 피에르 앙리가 셰페르와 공조하여 <고독한 남자를 위한 교향곡>(Symphonie pour un homme seul)을 작업했다. 이 곡은 뮈지크 콩크렛 장르 최초의 대작이었다.
(동영상)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가 현대무용으로 안무한 피에르 앙리 및 피에르 셰페르 공동 작곡의 <고독한 남자를 위한 교향곡>
1951년 파리에서는 최초의 일렉트로닉 뮤직 전문 제작 스튜디오인 RTF가 문을 열었다. 이러한 일은 곧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이 해에 셰페르와 앙리는 뮈지크 콩크렛 양식의 오페라 <오르페우스>(Orpheus)를 작곡했다.
(주29) "뮈지크 콩크렛은 1948년 파리에서 일상적인 소음들을 편집한 꼴라쥬 형식으로 창조됐다." --- Lebrecht, Norman (1996), The Companion to 20th-Century Music, Da Capo Press., p.107.
(주30) "선구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일렉트로닉 작품이란 그것이 실시간 공연을 통해 "실현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 Holmes, Thom (2008), Electronic and Experimental Music: Technology, Music, and Culture (3rd ed.), 앞의 책, p.122.
독일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 역시 1952년 피에르 셰페르의 스튜디오에서 잠시 동안 일했다. 이후 그는 여러 해 동안 쾰른(Cologne)에 위치한 WDR(서부 독일 방송, Westdeutscher Rundfunk)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사진)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이 1991년 쾰른에 위치한 WDR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
1953년 쾰른에는, 향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질 일렉트로닉 뮤직 스튜디오가 NWDR(북서 독일 방송, Nordwestdeutscher Rundfunk: 1956년에 WDR로 개편) 라디오 스튜디오 내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스튜디오는 1950년 초부터 이미 기획 단계에 있었고, 1951년에는 초창기 작곡가들이 이미 작곡을 하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주32) [물리학자, 실험 음향학자, 정보이론가였던] 베르너 메이어-에플러(Werner Meyer-Eppler: 1913~1960), 로베르트 바이엘(Robert Beyer), 최초로 이 스튜디오의 국장을 맡았던 [음악평론가이자 프로듀서인]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Herbert Eimert: 1897~1972)의 창의적 산물인 이 스튜디오에는 얼마 안 있어 작곡가들인 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고트프리히 미카엘 쾨니히(Gottfried Michael Koenig: 1926~ )도 합류했다.
메이어-에플러는 1949년에 출판한 논문 <전자적 소리 창조: 전자음악과 합성언어>(Elektronische Klangerzeugung: Elektronische Musik und Synthetische Sprache)에서, 전자적으로 생성시킨 신호들만 이용하여 음악을 합성한다는 아이디어를 확신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일의 '일렉트로니셰 무식'(elektronische Musik: 직역-'전자음악')은 프랑스의 '뮈지크 콩크렛'(musique concrète)과 급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뮈지크 콩크렛은 어쿠스틱 소리들을 녹음한 음향을 사용하고 있었다.(주33)
"슈톡하우젠과 [아르헨티나 출신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Mauricio Kagel: 1931~2008)이 상주하게 되자, 이 스튜디오는 일년 내내 카리스마 넘치는 아방가르드(avante-gardism, 전위주의)의 산실이 되었고",(주34)전자적으로 생성된 음향과 상대적으로 전통적 성격을 지니는 오케스트라들이 함께 하는 음악들도 슈톡하우젠의 <혼성>(Mixtur: 1964년작)과 <찬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제3지대>(Hymnen, dritte Region mit Orchester: 1967년작) 등 두 차례나 발표됐다.(주35)
(동영상)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혼성>(1964년작).
(동영상)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찬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제3지대>(1967년작)와 관련된 다큐멘타리. 슈톡하우젠의 지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20세기 전자음악 발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명이다.
슈톡하우젠은 발언을 통해, 자신의 청중들이 그의 전자음악을 들으면 "외계 우주"를 경험하거나 비행하는 느낌, 혹은 "환상적인 꿈속의 세계"에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해주곤 한다고 밝혔다.(주36) 슈톡하우젠은 근년에 이르러 독일 북서부인 퀴르텐(Kürten)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일렉트로닉 음악들을 만들었는데, 그의 마지막 작품은 <우주의 맥박>(Cosmic Pulses: 2007년작)이었다.
(동영상)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마지막 작품 <우주의 맥박>(2007년작).
(주32) Eimert, Herbert (1972), "How Electronic Music Began", Musical Times113 (1550 (April)): pp.347–349 중 p.349. (이 논문은 최초에 독일어로 쓰여져 Melos 39 (Jan.-Feb. 1972): pp.42–44 사이에 발표됐었다.)
(주33) Eimert, Herbert (1958), "What Is Electronic Music?", Die Reihe1 (English edition), p.10; 그리고 Ungeheuer, Elena (1992), Wie die elektronische Musik "erfunden" wurde...: Quellenstudie zu Werner Meyer-Epplers musikalischem Entwurf zwischen 1949 und 1953, Kölner Schriften zur neuen Musik 2. (Mainz and New York: Schott), p.117.
(주34) "1953년 쾰른에 있는 NWDR 방송국에서 '전자음악'(=일렉트로니셰 무식)이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그들의 순수한 실험들을 '뮈지크 콩크렛'과 구분짓기 위한 것이었다." --- Lebrecht, Norman (1996), The Companion to 20th-Century Music, Da Capo Press, p.107.
(주35) Stockhausen, Karlheinz (1978), Texte zur Musik, 1970–1977, 4,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öder. DuMont Dokumente (Cologne: DuMont Buchverlag), pp.73-76 및 pp.78-79.
(주36) 1967년 <찬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제3지대>의 초연을 마친 직후, 슈톡하우젠은 전자음악적 경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많은 청중들은 특히 전자음악 부분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이상한 새로운 음악을 천체 우주에 투사시키곤 했다. 심지어 그러한 세계가 인간의 경험에는 친숙하지 않은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주를 환상적인 꿈의 세계와 동일시한 것이다. 그 중 몇몇은 나의 전자음악 소리가 '다른 별에 있는듯한' 느낌이라든가, '외계에 나가 있는듯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음악을 들을 때, 무한한 속도로 날으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그러한 이들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도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하나의 대상 묘사의 감각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의사소통될 수 없는 극단적인 단어들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주관적인 환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외계 우주로도 투사 가능한 것이다." --- Thomas B. Holmes (2002), Electronic and Experimental Music: Pioneers in Technology and Composition (2nd ed.) (London: Routledge Music/Songbooks),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