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연습을 하러 온 미군들의 부교 궤도차량에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이 목숨을 잃은 지 16년이 지났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2002년 6월 13일도 올해처럼 지방선거가 치러졌으며 월드컵도 열렸습니다.
시민들의 힘으로 추모비을 만들고, 추모비를 세울 평화공원 부지까지 사고현장에 마련한 가운데, 평화공원 조성사업은 이제 2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추모관 등 설계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토지측량 결과 우리가 마련한 설계안대로 평화공원을 조성하려면 미 2사단이 세운 추모비를 이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미군추모비를 2사단 내로 이전해줄 것을 미 대사관과 미군 측에 여러차례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미 측은 4월 18일 보내온 공문에서 “이전 및 철거(removal)는 한국정부와 소유권자들(property owner)이 결정하라”는 요지의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는 것으로서,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해 올해 16주기 추모제에 맞추어 공원 조성을 완료하려는 계획은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올해도 예년처럼 충정로 기장총회선교교육원 앞뜰에 임시로 세워진 추모비를 이동하여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또 15주기 추모그림을 제작한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두 여중생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 아니라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자는 다짐을 모아내고 평화공원 조성 기금도 마련하기 위해 "#SoSorry2002" 릴레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5주기 추모웹툰 ㅡ 왼쪽부터 이진석, 최정민, 조아진, 박비나 작가의 작품>
한편, 판문점선언에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선포되고 남북간 적대행위 전면 중단, 전쟁 위험의 실질적 해소,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이 합의되었습니다. 또한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판문점선언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이에 참가자들은 휴전선 접경지역에서의 전쟁연습이 축소, 폐지되어 더 이상 대북군사훈련으로 인한 주민들의 희생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진상규명은 물론 불평등한 한미소파 개정 등 한미관계를 평등한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에 한미 양국 정부가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촉구했습니다.
오전 10시 45분부터 마을입구에서 추모행진을 시작한 참가자 들은 두 소녀의 영정, 만장과 흰 국화를 들었습니다.
중간에 흰 천을 가르는 상징의식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추모 춤은 양혜경 선생이 해주었습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영정을 내려놓고 헌화를 하며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했습니다.
사고현장 헌화를 마친 참가자들은 시민모금으로 마련한 평화공원 부지 위에서 추모제 본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우성 인천평통사 청년부장의 사회로 추모의례를 하고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안김정애 대표의 인사말씀을 들었습니다. 안대표는 전날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주한미군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홍주 평통사 공동대표는 어제의 북미 정상회담은 실로 꿈같은 일인데 이런 역사적 합의에 따라 북미관계 정상화에 맞게 한미관계도 평등한 관계로 재정립되어야하고, 따라서 두 소녀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도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임공동대표인 4.16재단 이사장 김정헌 화백은 편지글 형식으로 추모사를 해주었습니다.
건축가 이윤하 선생이 자신이 설계한 구상을 소개했습니다. 이윤하 선생은 "하늘로 가는 집"이라는 주제를 담은 추모관과 평화공원이 속히 조성될 수 있도록 한미당국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가수 방기순 선생이 "자신들의 아이도 15살이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추모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남재영 목사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과 불평등한 한미소파의 문제에서 비롯된 여중생 참사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성주에 기습배치된 사드 문제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하였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새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만큼 평화의 미래에는 이 같은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주한미군 철수가 되도록 마음을 모으자고 하였습니다.
김천 율곡중학교 김민성 학생은 두 여중생에게 추모편지를 띄웠습니다.
16년 전 나의 친구 효순 미선이에게
그날 너희가 걸어가던 좁은 길로 미군의 장갑차가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날 미군의 장갑차가 너희들이 길 위에 있다는
맞은 편의 수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미군의 장갑차가 멈추고
너희들은 친구를 만나서 생일파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날 그 자리에서 너희들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 때 너희들이 만나려고 약속했던 친구들에게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 거잖아.
지금쯤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회사를 다니고 오늘은 휴일이니까 그 때
그 친구들과 의정부에서 만나 또다시 생일 파티를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그 날 그 자리에서 너희들이 죽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의 엄마아빠는 슬퍼하는 대신
너희들이 예쁘게 자라는 모습도 보고
너희들도 나처럼 엄마아빠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을텐데.
16년 전 나의 두 친구 효순미선아.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는데, 그것을 보았니?
미군의 범죄를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며 호소했는데, 그것을 들었니?
그런데도 미군들은 너희가 거기에 있다는 맞은편 지휘차량의 수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통신에 장애가 있었다고 무죄판결을 받았어.
그러면 너희들을 죽인 것은 무엇일까?
나는 너무 어의가 없었어.
무시무시한 장갑차가 그 길을 선택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서로의 신호를 무시한 것도 잘못이고 사람 죽여놓고 통신장애 때문이라는 것도 잘못이야.
끝까지 무죄라고 우기고 결국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버렸다니 미군들은 비겁해. 나는 너무 화가 나. 어떻게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의 두 여학생을 죽이고도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 도대체 미군은 왜 이렇게 힘이 센 걸까? 이해가 안 돼. 억울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의는 어디로 갔을까?
16년 전의 나의 두 친구 효순미선아.
내가 사는 김천과 가까운 소성리에도 미군이 들어와 있어. 엄마의 말로는 150명쯤 된대. 그 미군들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드기지를 만들고 있어서 엄마는 매일 저녁이면 촛불을 들고 사드반대 싸움을 하고 있어. 사드는 미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무기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 미군기지가 무기만큼 위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하지만 아직은 그다지 실감이 나지는 않아. 엄마와 사드반대집회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내가 사는 김천이 위험해질까봐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그래서 나도 미군이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같이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또다른 효순미선이가 생길 수도 있잖아.
사드반대를 하면서 엄마는 너희들 이야기를 자주 했어. 얼마전 엄마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도 강연에서 엄마가 일본사람들에게 너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었어. 엄마도 울고 그곳에 있던 일본 사람들도 울었어.왜냐하면 일본의 오키나와도 미군기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우고 있어.미군에 의한 범죄로 오키나와도 힘들어하고 있었어. 1945년에 오키나와는 일본과 미국의 전쟁터가 돼서 20만명이 죽었던 역사도 있어. 그런데도 아직도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어.
16년 전의 나의 두 친구 효순미선아.
오늘 아침 김천 KTX 역에서 기차를 타고 너희들을 만나려고 이곳까지 왔어. 만약 너희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내가 오늘 너희들을 만나러 오지 않고 아마 내 친구들과 놀고 있겠지. 내가 너희들을 몰라도 되고 너희들을 안 만나도 좋으니까 차라리 살아 있는 게 백 배 천 배 더 좋겠지.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잖아.
이제부터 나도 너희들을 기억할게. 세월호를 탔던 언니오빠들처럼 너희들을 기억할게. 나는 살아있는 효순미선이가 되어서 6월 13일이 되면 너희들을 만나러 올게.
다시 만나러 오는 그 날까지 잘 있어.
2018년 6월 13일 김민성
#SoSorry2002(소쏘리) 릴레이 운동에 대해서는 시민추모비 작가 김운성 선생이 설명했습니다. 작가들이 작품을 온라인상에 내놓아 판매를 하면서 홍보도 하는 운동입니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김작가는 16주기 추모제를 맞아 저금통도 4천개를 제작했으니 모금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웹툰 전체 보기 : http://cafe.daum.net/sinsim2002
참가자들은 촛불의 시작이 된 두 소녀를 기억하며 촛불 모양의 종이를 시민추모비에 거는 상징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상징의식을 마친 후에는 양혜경 선생이 행진할 때 갈랐던 흰 천을 소지하는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오늘 추모행사에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150여 명이 참가하여 평화공원 조성과 진상규명 등 남은 과제 해결 의지를 높였습니다. 천주교 성가소비회 수녀님들, 멀리 거제에서 온 이상철님을 비롯한 평화공원 조성위원들,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평통사 회원들, 민주노총 엄미경 통일위원장 등 민주노총 간부와 노동자들, 평화재향군인회, 향린교회, 경기북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한 인근 지역 사회단체 회원들이 참가했습니다. 박진석 민변미군문제위원회 위원장도 참가했고 강제숙 선생은 일본에서 평화운동하시는 스님들을 모시고 참가했습니다. AWC 한국위원회 허영구 대표를 비롯한 회원들도 참여했습니다. 특히 이 날 은평구 마을공동체에서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같이 참가하여 뜻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SBS, 한겨레, 뉴시스 등이 취재했습니다.
효순미선 평화공원 추모관 조감도
한겨레 기사 보기 : http://hani.co.kr/arti/society/area/848883.html
뉴시스 기사 보기 : http://v.media.daum.net/v/20180613133245195
연합뉴스 보기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13/0200000000AKR20180613048300060.HTML?sns=copy
경향신문 보기 : http://v.media.daum.net/v/20180613164803706
SBS 보기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800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