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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궁합,혼수,고부갈등의 베트남 결혼풍속
베트남의 전통혼인관념은 사회계층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지배계급의 혼인은 가문, 가계 등을 중시하며 그들의 특권을 유지 보존하는데 큰 의의를 둔다. 이들은 혼인을 부(富)의 축적과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크므로 친족집단의 감시와 감독이 따르며 매우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반면, 일반 서민가정에서는 혼인을 경제적 타산보다도 당사자들의 애정과 신의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혼인에 있어서도 관념과 의식, 모든 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유교의 육례(六禮)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혼례의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와 유사한 혼인관념과 의식을 갖고 있다.
1. 몬당호도이(mon dang ho doi - 門堂戶對: 비슷한 집안끼리의 혼인)
‘몬당호도이’는 오래 전부터 베트남의 모든 계층이 혼사(婚事)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시 했던 혼인관념이다. 집안의 경제, 사회, 교육수준 등을 가장 최우선적인 배우자 선별조건으로 삼았던 이 관념은 “곰팡이 핀 젓가락이 감히 귀한 음식이 담긴 붉은 쟁반을 찾는다.” 라는 말처럼 자기분수에 맞는 짝과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다.
전통 베트남 사회에서는 부유하고 고귀한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은 그에 걸 맞는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명문가의 아들과 맺어져야 하고 사회적 명망과 학식이 높은 가문의 아들은 제 아무리 여자의 외모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평판이 나쁘거나 못 배운 집안의 딸은 피해야 한다는 등의 불문율과 같은 배우자 선별관념이 통용되었다. 특히, 농촌에서의 이러한 관념은 더욱 강하였다. 혼인에 있어서 남가(男家)가 여가(女家)보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조건이 우월한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며 반대로 여가가 남가보다 우월한 경우의 혼사는 성사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상태, 범법(犯法)행위관련 여부 등도 따져보고 양가(兩家) 부모들의 나이도 비슷한 것을 이상적인 조건으로 꼽았다.
‘몬당호도이’의 관념에 따른 혼인은 특히, 양가(兩家)의 가세를 확장 시키고 가풍을 공고히 하는 등 상호간 실질적인 이득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순기능 때문에 ‘몬당호도이’는 오늘날에도 배우자 선별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관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배우자의 가문과 출신성분보다 당사자의 경제적 능력, 학력, 직업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어 그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2. 부모의 혼사 결정권
과거, 전통혼인관념 아래에서 자식의 혼사에 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었으며 부모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자식의 도리로 여겨졌다. 이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로 “부모가 자리를 가리키면 자식은 그 자리에 앉는다.” 가 있다.
전통사회에서 결혼은 남녀간 개인의 일이 아닌 가족과 혈족의 일로 여겨졌으므로 당사자들의 의사는 거의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부모의 결혼강요에 의한 혼인을 풍자한 다음과 같은 민요가사는 당시 젊은 남녀의 고뇌를 반영하고 있다. “기름은 짜낼 수 있고 비계도 짜낼 수 있지만 누구는 사랑마저 짜내라 하네.”
부모의 의사를 어기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경우에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불효자식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혼인은 신랑신부의 아버지, 어머니가 성사시킨다.” 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일부에서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딸의 혼사를 결정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결혼사례는 다음과 같은 민요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는 부유한 남자 집에서 가져온 찰밥이 든 바구니와 살찐 돼지를 탐내고 돈에도 욕심을 부리시네. 그러지 마시라고 말려도 듣지않고 탐욕스럽게 쳐다보며 예물로 보낸 찰밥을 들고 들어오시네. 길이가 다른 젓가락처럼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혼인을 강요하시네.
이와 같은 부모의 자식 혼사 결정권은 1900년대 초까지 보편적이었으며 혼인은 부모간 자식을 서로 사고파는 거래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일부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이러한 관념이 유지되어 내려오고 있다.
3. 중매
예로부터 베트남에서는 남녀가 혼인 할 나이가 되면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대상을 수소문 했다. 중매인은 남녀 구분이 없었으며 주로, 혼사가 오고 가는 대상인 남녀의 집안, 사람됨, 가족관계, 가업, 친척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양가의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중매인은 남자의 경우, 옹 모이(ong moi), 옹 마이(ong mai)라 부르며 여자인 경우, 바 모이(ba moi), 바 마이(ba mai)라 불리었다. 이들 중에는 중매를 직업적으로 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매인은 나이가 지긋하고 신뢰가 있고 사교적이며 무엇보다 부부관계가 원만하고 아들과 딸 자식이 있는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중매인은 남녀 양가를 오가며 혼사를 성사시키는 중요한 산파 역할을 맡기도 하였으나 양가 중, 어느 한 집안의 반대로 공들였던 혼사가 깨지는 경우, 혼사를 반대한 집안에 대한 험담을 떠들고 다니며 해코지 하는 사례도 있었다. 혼담이 오가는 중, 남가(男家) 혹은 여가(女家)에서 중매인과 담합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주로 신랑의 신체적 장애나 외모상 결함을 숨기고 신랑의 형제 중 한명이 신랑행세를 하거나 신부의 나이를 속이고 나이어린 신부의 여동생이 신부행세를 하여 혼사를 결정지은 뒤, 혼례 당일 날, 발각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사기성과 거짓이 없는 인격과 성실함을 갖춘 중매인의 선택은 베트남인들의 혼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4. 궁합
혼인의 성사여부를 결정 짓는 조건과 풍습들은 오랜 역사적 과정에 정치적, 도덕적, 신앙적 요소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조건과 풍습들에 맞춰 혼인 대상자와의 혼인성사 여부를 알아본 다음 부모가 마음에 들고 두 집의 생활조건도 비슷하면 혼사를 적극 추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궁합은 혼인의 성사여부를 결정 짓는 풍습의 하나였다. 예로부터 베트남에는 “혼담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집안을 저울질 해 보고 궁합을 보고 비로소 중매인을 구한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혼인에 있어 궁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으며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궁합은 신랑, 신부의 나이를 보다, 비교하다. 계산하다라는 의미로 ‘꼬이 뚜오이(coi tuoi)’, ‘쏘 뚜오이(so tuoi)’, ‘띤 뚜오이(tinh tuoi)’ 라 불린다. 궁합에는 겉궁합과 속궁합이 있는데 속궁합은 신랑과 신부의 나이를 가지고 헤 깐지(he can chi, 干支系) 즉, 십이지(十二支)를 상징하는 동물에 따라 서로 맞추어 보고 어울리는 띠와 어울리지 않는 띠를 구분하는 것으로 아래와 같다.
어울리는 띠: 호랑이, 말, 개 / 뱀, 닭, 소 / 원숭이, 쥐, 용 / 돼지, 고양이, 염소
어울리지 않는 띠: 쥐, 말, 고양이, 닭 / 호랑이, 원숭이, 뱀, 돼지 / 용, 쥐, 물소, 양
베트남의 십이지에는 고양이띠, 물소띠, 염소띠가 한국의 십이지에 있는 토끼띠, 소띠, 양띠를 대신하는 차이점이 있는데 상기 표와 같이 호랑이띠의 신랑 혹은 신부는 말띠 혹은 개띠의 배우자와 서로 궁합이 맞는 좋은 짝이 되고 쥐띠, 말띠, 토끼띠, 닭띠는 서로 상극되는 궁합이 나쁜 짝으로 보는 것이다.
겉궁합을 알아보는 방법은 아래와 같이 신랑과 신부의 생년월일을 낌(kim - 金), 목(moc - 木), 튀(thuy - 水), 화(hoa - 火), 토(tho - 土)의 응우 한(ngu hanh - 五行)에 따라 맞춰보고 상호 조화 - 뜨엉 씬(tuong sinh - 相生)과 부조화 - 뜨엉 칵(tuong khac - 相克)을 점쳐보는 것이다.
* 상호 조화 - 뜨엉 씬(tuong sinh - 相生)
낌(kim - 金) 과 튀(thuy - 水)
목(moc - 木) 과 화(hoa - 火)
튀(thuy - 水) 와 목(moc - 木)
화(hoa - 火) 와 토(tho - 土)
토(tho - 土) 와 낌(kim - 金)
* 부조화 - 뜨엉 칵(tuong khac - 相克)
낌(kim - 金) 과 목(moc - 木)
목(moc - 木) 과 토(tho - 土)
튀(thuy - 水) 와 화(hoa - 火)
화(hoa - 火) 와 낌(kim - 金)
토(tho - 土) 와 튀(thuy - 水),
상기와 같이 물을 의미하는 오행의 튀(thuy - 水)로 구분되는 신랑이나 신부는 불을 의미하는 화(hoa - 火)로 구분되는 상대와 상극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화를 이루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인데 신랑의 한(hanh - 行)이 신부의 한(hanh - 行)을 낳는 씬 쑤엇(sinh xuat - 生出)과 신부의 한(hanh - 行)이 신랑의 한(hanh - 行)을 낳는 씬 녑(sinh nhap - 生入)이 있다. 부조화를 이루는 상극의 경우 역시,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신랑의 한(hanh - 行)이 신부의 한(hanh - 行)과 극을 이루는 칵 쑤엇(khac xuat - 克出)과 신부의 한(hanh - 行)이 신랑의 한(hanh - 行)과 극을 이루는 칵 녑(khac nhap - 克入)이 있다. 오행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씬 녑(sinh nhap - 生入)이며 씬 쑤엇(sinh xuat - 生出)도 조화로운 편이나 완벽하지는 못하다. 반대로, 가장 금기 시 되는 경우는 칵 녑(khac nhap - 克入)으로 이러한 경우, 혼사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궁합의 결과는 혼인의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많은 베트남인들이 궁합의 좋고 나쁨에 따라 가정이 화목하고 사업이 번창하고 부유해지기도 하며 반대로, 질병이나 불화로 고통 받게 되며 재물 운도 따르지 않고 심하게는 부부가 생사이별을 하게 된다는 관념을 강하게 믿어 왔다. 때문에 남녀간의 애정이 아무리 깊고 성격, 학력, 건강 등의 모든 조건이 조화를 이룬다 할 지라도 궁합이 좋지 않으면 혼사가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5. 남아선호
과거, 혼인한 베트남 여성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자식의 생산이었다. 농경생활이 주를 이루었던 당시는 노동력 확보를 위한 여성의 다산(多産)이 중요시 되기도 하였으나 무엇보다 조상에 대한 차례와 제사를 주관하고 집안의 대(代)를 잇는 남아의 생산이 모든 집안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혼인을 하고 일정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태기가 없으면 여성 본인은 물론, 집안 사람 모두가 큰 문제로 여겼다.
특히,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졌으며 이럴 경우, 첩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같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신상(神像)에게 비는 등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기원행위로 나타났다. 베트남인들은 이러한 자식생산을 기원하는 행위를 ‘꺼우 뜨(cau tu, 求嗣)’라 불렀다. 특히, 매년 봄이면 ‘꺼우 뜨’를 하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주로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신상(神像)을 찾아 치성(致誠)을 올렸다.
치성을 올리기 전, 여성들은 목욕재계하고 육식을 하지 않았다. 임신을 하더라도 아들을 생산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랐다. 이러한 아들생산에 대한 열망과 기대는 다음과 같이 전래되어 내려오는 임부(妊婦)의 태아감별 법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 걸어가고 있는 임부를 뒤에서 불렀을 때, 왼쪽으로 돌아보면 아들이고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딸이다.
- 임부의 배가 납작하면 아들이고 둥글면 딸이다.
- 뱃속 태아의 움직임이 적으면 아들이고 움직임이 많으면 딸이다.
- 꿈에 코끼리, 곰, 호랑이 등의 크고 강한 동물이 보이면 아들이고 뱀, 지네 등의 가늘고 마른 동물이 보이면 딸이다.
- 임부의 머리카락으로 결혼반지를 묶고 그 머리카락 끝을 잡고 반지를 임부의 배꼽 위에서 들었을 때, 앞뒤좌우로 흔들리면 아들이고 빙글빙글 돌면 딸이다.
이러한 베트남인들의 남아선호관념을 통해 베트남 전통사회에 부(父)에서 자(子)로 계승되는 유교의 가계계승 이데올로기가 깊이 뿌리내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 공동체 정신, 째오(Cheo)
베트남인들은 혼인을 남녀 개인과 두 집안의 결합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을간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계기로 여겼다. 그래서 혼담이 오갈 때나 혼례식에 마을 원로들과 이웃들을 초대해 혼인에 대한 사회적 허가와 인정을 받도록 하였다. 북부지역과 일부 지방에서는 젊은 남녀의 결혼대상을 같은 마을사람으로 제한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는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결속하려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혼인에 있어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다음과 같은 속담에 잘 나타나 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들녘의 물소는 그 들녘의 풀을 먹고 살아야 한다.”, “같은 마을의 남자를 남편으로 맞는 것은 금이 집안으로 굴러 들어 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속담은 어려울 때면 항상 양가(兩家) 집안이 즉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같은 마을 남녀간의 혼인이 대단히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관념에 따라 같은 마을 남녀간의 혼인을 장려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째오(Cheo)이다. 째오란 혼인을 하기 전에 신랑 집에서 금전이나 예물을 신부 집의 마을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째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첫째는 마을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같은 마을 남녀의 혼인 권장이고 둘째는 혼인의 사회적 공인이다. 째오는 혼인하는 남녀가 거주하는 마을의 동일여부에 따라서 ‘째오 노이(cheo noi)와 ‘째오 응오아이(cheo ngoai)로 구분된다. ‘째오 노이’란 같은 마을의 남녀가 혼인하는 경우, 마을에 바치는 째오를 일컫는 것이고 ‘째오 응오아이’는 서로 다른 마을의 남녀가 혼인을 할 때, 신랑이 신부마을에 바치는 째오를 말한다. ‘째오 응오아이’의 경우, ‘째오 노이’보다 훨씬 더 과중한 예물이 요구되었다. 이는 마을의 구성원을 잃는데 대한 대가이자 마을 처녀들이 타 마을로 시집가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다음과 같이 전래되고 있는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가까운 곳에 딸을 시집 보내면 국 한 사발도 쉽게 가져 다 줄 수 있다.”, “먼 곳으로 시집 보내는 것은 조상을 잃게 하고 딸자식도 잃게 한다.”
째오로 바치는 예물의 종류는 마을의 요구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한 벽돌을 보내기도 하고 구리쟁반, 도자기 등과 같은 현물(現物) 혹은 일정금액의 돈을 바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예물의 요구는 종류와 상관없이 금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간혹, 지나치게 많은 째오를 요구하는 마을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경제적인 면에 치중하기보다 공동체에 대한 상징적인 예(禮)를 갖추는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째오는 혼인에 대한 사회적 승인의 의미도 가졌는데 오늘날과 같이 혼인신고를 통한 법적인 승인과 보호를 받는 제도화된 법률이 없던 과거에 째오는 이러한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째오는 혼인에 대한 사회적 승인과 그에 따른 부부간의 권리와 의무 등의 부여와 보호를 받는 사회제도로 인식되었다. 마을에서는 신랑이 째오를 치루고 나면 ‘떠 째오(to cheo)’라 하는 이에 대한 증명서를 발급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혼인신고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혼인에 있어서 째오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민요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돼지를 키우려면 먹이로 쓸 연못의 개구리 밥을 떠내야 하고 혼인을 하려면 마을에 째오를 바쳐야 한다.”, “설령, 혼사를 치루는 데 돼지 10마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째오 하지 않으면 허사(虛事)이다.”, “혼인 하면서 째오 하지 않는 것은 기둥에 못질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신랑 집에서 보낸 혼인예물을 신부 집에서 받았다 해도 째오 하지 않으면 혼사가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베트남의 북부지역과 일부지방에서는 째오가 마을 공동체와 지연(地緣)을 확인하고 공동체간 상호유대를 맺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7. 혼수
신랑측과 신부측의 혼사합의가 있게 되면 신부측에서는 혼례식 때 요구되는 예물의 품목과 수량을 결정하여 신랑측에 알리게 되는데 이를 ‘탓 끄어이(thach cuoi)’라고 한다. 신부측에서 요구하는 예물은 일반적으로 술, 차, 빵, 과일, 쌀, 돼지고기, 장신구, 신부의복, 돈, 이불, ‘쩌우까우(trau cau)’ 등이다.
탓 끄어이는 그 종류와 규모면에서 신랑측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가난한 집의 경우, 삶은 닭, 찰밥, 술, 쩌우까우, 약간의 돈을 예물로 준비했으나 신랑측의 경제적 여건이 좋을수록 신부측에서 요구하는 예물은 많아졌다. 특히, 쩌우까우와 술은 빈부차이와 상관없이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예물이었다.
쩌우까우를 혼인예물로 쓰는 것은 중국의 혼속에서는 볼 수 없는 베트남의 고유 풍속이다. 쩌우는 종려목 야자나무과 빈랑나무(Betel palm)의 열매인 빈랑자(Betel nut)와 후추목 후추과 덩굴식물(Betel pepper)의 잎인 쩌우의 통칭이다. 쩌우에 ‘보이(voi)’라 불리는 석회를 약간 바르고 까우를 싸서 씹으면 까우에서 나오는 빨간 색소 때문에 입안과 침이 붉게 된다. 까우는 타원형의 열매로 과육은 황색, 오렌지색을 띄며 탄닌과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어 촌충구제, 설사, 피부병, 두통 등에 효능이 있다. 쩌우는 향기가 있고 입안의 점막에 대한 수렴성이 있어 입안의 냄새를 제거하고 성대를 좋게 하며 거담제로 쓰이기도 한다. 베트남에는 어느 젊은 부부가 죽어서 쩌우와 까우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쩌우까우는 영원한 부부애의 상징으로 혼인예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신부측의 예물 요구가 지나치게 과중할 경우, 신랑측은 예물요구를 감해줄 것을 신부측에 요청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에는 혼사가 연기되거나 무산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게 신랑측에서는 그 동안 신부측에 쏟아왔던 정신적 금전적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빚을 내어서라도 혼사를 매듭지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양측간 합의로 탓 끄어이 문제가 해결된다 할지라도 감정적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혼인 이후, 신부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게 되거나 고부갈등이 초래되기도 하였다.
신부측에서 미리 신랑측의 삭감요청을 예상하고 과도한 예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딸을 시집 보내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 물소를 파는 일과 다르다.”, “부유한 집안에 시집 보내 놓고도 딸 걱정한다.”, “딸을 판다.” 라는 물질에 치우친 혼인을 비꼬는 말이 생겨났다. 탓 끄어이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비로소 혼례식 날짜를 잡고 본격적인 혼사준비가 시작된다.
8. 고부관계
베트남의 전통적 가족 구조인 부계가족은 가부장을 구심점으로 견고한 조직을 갖고 부자(父子)로 이어지는 강한 지속성을 가지며 서열의식이 투철하다. 하지만 이러한 부계가족의 취약점은 바로 여자의 지위에 있으며 특히, 시가(媤家)와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인 며느리에게는 권리보다 많은 의무가 지워지고 예속적인 위치에 처하기 때문에 시가에 순종해야 했다. 특히, 집안의 가사일, 대소사, 자녀양육 등의 모든 권리를 시어머니가 쥐었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순종해야 했다. 따라서 고부관계가 원만치 못한 경우, 지나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학대로 인해 며느리가 도망가거나 친정 집으로 피신하는 경우도 있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있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대한 며느리들의 애환은 다음과 같이 민요로 불려지며 오늘날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시어머니의 악랄함에 진저리가 난다. 함께 살 수 없으니 친정 집으로 돌아 가련다.”
오늘날 베트남의 대도시에서는 형제서열에 구애됨 없이 분가(分家)가 행해지고 있으나 부모와의 상호 밀접한 왕래와 유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가사문제에 있어서 시어머니의 영향력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은 가정불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9.남존여비
과거, 베트남 여성은 혼인을 함으로써, 위로는 시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아래로는 자식들을 돌보며 가사일을 도맡는 등, 매우 과중한 의무를 부여 받았다. 그리고 ‘뜨득(tu duc - 四德)’이라고 하는 덕목을 갖추도록 강요 받았다.
뜨득이란 꽁(cong - 工), 즁(dung - 容), 응온(ngon - 言), 한(hanh - 行) 의 네 가지 덕목을 말한다. 꽁(cong)이란 요리, 바느질, 농사 일 등을 할 수 있는 여자로서 갖추어야 하는 손재주를 의미하고 즁(dung)은 항상 우아하고 청결하고 정숙하게 가꿔야 하는 여성의 외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응온(ngon)은 여성의 말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말할 때는 천천히 상냥한 목소리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에 대한 구분이 있고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발음은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hanh)은 어른에게 공손하고 아랫사람에게 겸손하며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식에게 자애롭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기풍이 있으되 거만하지 않고 모질지 않는 여성의 몸가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뜨득은 신부 혹은 며느리를 평가하는 선별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거의 모든 베트남 여성들은 이러한 관념의 틀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밖에 여성의 일생까지 제한하는 ‘땀똥뜨득(tam tong tu duc - 三從之德)’ 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땀똥(tam tong - 三從)’ 이란 여자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따라야 하는 대상을 일컫는다. 즉, “집에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 후에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의 사후(死後)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남성에 의지해 살아야 했던 여성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관념이다. 이처럼 베트남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신분에 따른 삶을 살다가 그와 비슷한 형편의 남자를 만나 혼인을 하고 그 집안 사람이 되어 아들을 낳고 키워서 집안의 대를 잇고 장성하면 혼인을 시키고 아들의 부양을 받으며 노후를 보내야 했다.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을 구속하는 남존여비의 관념은 남편이 아내를 쫓아 낼 수 있는 일곱 가지 조건인 칠출(七出)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혼인한 여자가 자식을 못 낳는 것은 집안의 대를 끊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이는 자식생산을 이유로 첩을 들이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둘째, 행실이 음탕한 아내는 버림받게 되고, 셋째,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며느리는 불효자라는 비난과 함께 친정부모까지 욕보이게 했다. 넷째, 여자의 수다스러움은 나쁜 흉으로 보았고, 다섯째, 물건을 훔치는 행위는 물론, 여섯째, 여성의 질투 또한 금기 시 되었다. 일곱째로 질병이 있어 가사일을 돌보지 못하는 여성도 버림받는 대상이었다.
반면, 남성에게 혼인은 많은 권한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의 재산 소유의 권한에 따라, 아내의 재산과 생산활동에 의한 이익은 모두 남편에게 귀속되었다. 사회활동도 남성만이 할 수 있었다. 자식생산과 상관없이 첩을 두는 경우가 있었고 남자의 외도에도 관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의 권한을 여성이 제한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남존여비의 관념이 지배하는 베트남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은 인권을 무시 당한 채 부당한 남녀차별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베트남의 전통혼인은 우리의 전통혼인과 여러 공통요소를 갖고 있다. 이는 양국 모두 중국 유교문화권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어느 한 나라의 전통혼인관념은 그 나라 민족의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볼 때, 오늘날 한국과 베트남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공통된 전통혼인관념은 그만큼 양국 사회와 민족간, 유사성이 있음을 반영해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월간조선 해외 통신원인 김현재님의 글을 옮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