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할 수 없는 거인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홍수다. 결국 거인이 인간을 도와주려고 눈 오줌이 홍수를 몰고 온다. 세상의 종말을 가져온다. 한 세계가 끝나는 것이다. 거인은 인간에게 세상을 창조해주었지만, 또한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신이기도 하다. 당연히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것이 신화적 사고다. 거인신이 시작했으므로 거인신이 끝낸다.
그러므로 거인신은 멀리해야 할 신이다. 가까이할 수 없다. 그래서 죽어서 산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우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단지 인간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그 흔적을 남길 뿐….
우리 신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늘을 들고 있는 ‘장군’으로, 혹은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위험한 거인신은 유폐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땅속 깊은 곳 타르타로스에 가둔다. 중원의 우주거인 반고는 해체된다. 반고의 몸으로 세상을 창조하니, 그 기운은 바람과 구름이, 소리는 우레가,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팔다리와 몸통은 사방 끝과 오악이, 피는 강이, 힘줄은 지형이, 살은 논밭이, 머리털은 별이, 솜털은 초목이, 이와 뼈는 쇠와 돌이, 정액은 보석이, 땀은 비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의 거인신 위미르의 몸도 해체되어 미드가르드라는 땅이 되고, 피는 바다와 호수, 뼈는 산맥, 이와 부서진 뼈는 바위와 자갈, 뇌수는 구름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인간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