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노력이 필요하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니 한때는 분명 아름다웠을 테지만 20년 동안이아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해서 웃자란 잡초로 가득찬 정원이 있었다.
전 주인은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정원에 시간을 쏟지 않으면 자연에 금방 점령당하고 맙니다."
정만 나는 이사하고부터 지금까지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잡초 뽑기, 흙 뒤집기, 씨 뿌리기, 나무 심기, 비료 주기, 다시 잡초 뽑기,...
이제 좀 쉬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원은 자연에 금방 점령당해서 온갖 잡초가 얼굴을 내민다.
우리집 정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에수님의 말씀이 있다.
바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다.
그는 여러 조건의 땅에 씨를 뿌린다.
어떤 땅은 돌이 많고, 어떤 땅은 흙이 깊지 않으며, 어떤 땅은 가시덤불이고, 어떤 땅은 좋은 땅이다.
좋은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우리가 좋은 땅이 되어 살아있는 믿음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 바라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집 정원을 예로 든 것처럼 믿음의 성장을 가로막는 잡초와 돌을 제거하고, 기름진 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기름진 땅르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것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 것은 우리 마음과 시간을 쉽게 뺏으며 다른 일을 위한 공간까지도 점령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 날, 마흔 명쯤 되는 십 재 아이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 명도 예외 없이 아이들은 문자를 보내는지, 글을 올리는지, 이것저것 검색을 하는지, 아무튼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걷고 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내가 급히 옆으로 비켜서야 했던 상황은 분명히 문제였다.
그만큼 아이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해따는 뜻이기 때문이다.
십 대 아이들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자매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웹, 소셜미디어, 블로그, 문자, 쇼핑, 게임, 여기에 더해 전통적인 텔레비전 시청 등에 너무 빠져있다.
그러나 보니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은 무시하고 넘겨버리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는 신앙도 포함된다.
스마트 폰에 정신이 팔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보지 못하던 십 대 아이들처럼, 우리도 전저매체에 정신을 빼앗겨 바로 옆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릴 수 있다.
물론 우리를 산란하게 하는 것이 전자매체만은 아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지나치게 바빠질 수 있는 문화에 살고 있다.
우리 삶은 활동으로 가득 차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바쁘다고 말한다.
물론 이 가운데 일부는 꼭 필요하고 피할 수 없는 활동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예를 들면 직면하고 싫은 어떤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와 경쟁하하기 위해서,
성과를 통해 삶의 목적이나 의미 또는 자기만족을 찾기 위해서 삶이 바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일중독에 시달린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좋지 않은 중독이다.
과다하게 활동한 결과,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에너지를 소진하고 만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적인 운동? 소셜미디어 활동? 취미생활? 친구들과의 만남? 업무시간외 근무? 자원봉사? 특별한 과제?
시간을 좀 다르게 사용해 보면 어떨가?
그러면 주님을 알아가는 데어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경험으로 누군가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족, 배우자, 친구, 동료를 생각해보면 바로 알수 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을 예수님이 그저 먼 지인일 뿐이었다.
예수님을 알긴 했지만(그것도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들은 정말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러니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이 참으로 어떤 분이며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여정을 함께 하면서 식사도 하고 가르침을 받은 이들뿐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 시간은 한정적인 자원이다.
한번 가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주는 것은 희생이다. 그런데 희생은 사랑의 본질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시간을 선물로 받기를 바라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 시간을 드리는 방법을 말하면서 144와 168, 두 숫자를 기억하라고 청년들에게 권하는 주교가 있다.
144는 24시간을 10분 단위로 환산한 수이고, 168은 일주일을 1시간 단위로 환산한 수다.
주교는 젊은이들에게 매일 10분은 기도나 말씀 공부를 하고, 매주 1시간은 주일 미사를 드리도록 권하기 위해 이 두 숫자를 언급한 것이다.
사실 겨우 하루 중 144분의 1과 일주일 중 168분의 1을 드리는 것이지만, 이 방법은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굳건한 기초가 될 수 있다.
땅에 거름을 주고 잡초돠 바랭이를 뽑아줘 예쁜 정원으로 가꾸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다. 시간은 소중하며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우리 믿음의 싹이 잘 자라서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도록, 그 소중한 시간을 당신과 더 많이 보내자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