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경 : 눅 21:34-36절
제 목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일 시 : 2012. 6. 3.
눅21:34-36/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행2: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고 했으며, 고후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으며, 벧후3: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눅24:49/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했으며, 행1: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신약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은 옛날약속이라는 뜻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른 말로 예언이라고 말씀합니다. 마11: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라고 했습니다. 율법도 예언입니다. 벧후1:20-21/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계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으며, 계22: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22:10/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언을 감추어 놓지 않고 다 열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22: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고 했으며, 계22: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예언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약속이며 예언입니다. 약속과 예언의 특징은 반듯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공연히 한 말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들은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다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한 가지는 예수님의 재림(다시 오심)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세계 종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의 끝과 종말이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역사는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버림받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순종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날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극심한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혀를 깨물고 탄식해야 할 정도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환난을 피하고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피하고 라는 말씀은 극심한 고통과 재앙과 환난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만약 그것을 피하지 못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과 저주와 고통과 환난을 영원히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게 되면 영원한 안식과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너무나 두려운 일들 때문에 오늘의 본문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종말이 되면 누가 대신 깨워 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가 그 일을 해 주는 것이 아니며, 다른 교회 성도들이 그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 빼앗겼기 때문에 자신도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신해서 깨워 줄 사람이 없습니다. 노회나 시찰회 모임에 가도 깨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교에 가도 깨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도 모임에 가도 깨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미나에 가도 깨워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다같이 따라 합시다. 스스로 조심하라.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스스로 조심합시다.
그러면 조심하라 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조심하라는 프로세코(prosevcw)라고 하는데 마음을 ~에 두다, 주의하다, 조심하다, 전념하다, 유의하다, 관심을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거기에 주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는 오시는 재림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강림에 집중하고 주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세상에 오실 때에도 거기에 주의하고 몰두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조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간접적인 이유와 직접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다같이 3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간접적인 이유는 마음이 둔하여지기 때문이고, 직접적인 이유는 그 날이 마치 덫과 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재앙과 환난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재앙들을 피하지 못하고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환난 가운데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천국 가는 것인데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극심한 환난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35절에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강림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들은 그 날을 피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1. 간접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의 둔하여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둔하여진다는 것입니다. 둔하여진다는 바레오(barevw)라고 하는데 내리누르다, 짐을 지다, 책임을 맡다, 무겁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둔하여진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하여 내리 누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까요? 책임을 맡게 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책임을 맡도록 해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마음을 무겁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진짜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인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둔하게 한다고 했습니까? 세 가지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1) 첫 번째는 방탕함입니다. 방탕함이란 크라이팔레(kraipavlh)라고 하는데 두통, 유출, 과식, 과도, 범람이라는 뜻입니다. 음식을 너무나 많이 먹어서 토해내는 것을 연상케 하는 단어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다 그런 경험을 한 번씩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식탐 때문에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이 그것을 견디지를 못해서 토해 내었던 기억들 말입니다. 음식을 토해 낼 때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고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토해냅니다. 그렇게 한참 토해 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집니다. 방탕함이란 바로 음식을 지나치게 먹음으로 토해내기 직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먹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어디 음식을 맞 있게 한다는 소문이 듣거나, 어느 뷔페식당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으면 거기에 찾아가서 음식을 사 먹습니다. 가끔씩 외식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식탐은 죄입니다. 그리고 음식을 과도하게 먹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것도 방탕함에 해당합니다. 스포츠에 과도하게 빠진 사람, 술에 빠진 사람, 영화나 드라마에 빠진 사람, 낚시나 등산이나 여행에 빠진 사람, 농사를 짓거나 취미생활에 빠진 사람, 공부에 빠진 사람,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빠지게 하는 것이 방탕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 같은 반 학생 가운데 한 명은 공부에 빠진 사람입니다. 자기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직업이 다섯 개나 되는데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 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또 다른 과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5년 전에 권찰에 임명을 받았는데 아직도 권찰인데 그것도 자신이 집사가 되어 주님의 일에 열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여전히 권찰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겨우 주일날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공부에 미쳐 있습니다. 이것이 방탕함입니다.
2) 두 번째는 술취함입니다. 술취함이란 메데(mevqh)라고 하는데 취하게 하다, 중독, 술취함 이라는 뜻입니다. 술취함이란 어떤 것에 중독이 되어서 그것을 그만 둘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술에 중독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술취함이라고 단어를 연상하면 우리 교회를 거처간 사람들 중에 기억 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루도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날이 없이 날마다 술에 취해 있는 사람입니다. 술에 취해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고,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다른 사람과 이유 없이 싸우고, 가족들을 괴롭히고, 생활력은 전혀 없고 그래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생활의 염려입니다. 생활이란 비오티코스(biwtikov")라고 하는데 이 세상의 삶을 지탱하는 일들 이라는 뜻입니다. 염려란 메림나(mevrimna)라고 하는데 걱정, 근심, 염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생활의 염려란 순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때문에 생기는 근심 걱정 염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 것인가?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등등 오직 이 세상 일 때문에 생기는 염려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방탐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당연히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는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것들이 현대인들에게 강한 책임감으로 작용해서 마음이 둔해지고 감각이 무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환난과 재림에 대해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환난이나 재림은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뜻밖에란 갑작스럽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라는 뜻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주님의 재림이 맞이하게 되고 환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임하다는 단어는 습격하다, 가까이 오다, 나타나다, 곁에 서다라는 뜻입니다. 갑작스럽게 환난이 닥쳐오고 재림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34절에 보시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2. 스스로 주의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3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것을 피하지 못하면 주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환난과 재앙을 피하지 못하면 주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인자 앞에 서도록 이라는 말은 천국에 들어가도록 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 앞에 서지 못한다는 말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장차 다가올 이 모든 일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피하다란 도망하다, 피하다, 달아나다라는 뜻입니다. 잠22: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으며, 잠27:12/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피합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믿음의 눈으로 다가오는 재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미리 대비하고 피합니다.
하루 하루 말씀에 순종하는 바른 살 때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현재 주님 오심을 준비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재앙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인자 앞에 선다는 것은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조심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1)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다란 데오마이(devomai)라고 하는데 (스스로 졸라매듯)구하다, 탄원하다, 간청하다, 청원하다, 구걸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기도하다라는 단어는 구하다라는 의미의 아이테오가 아닙니다. 아이테오는 자신에게 돌아올 권리와 분 깃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하는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데오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데오마이의 원래는 의미는 데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매다, 붙들어 매다, 묶다, 동여 매다 에서 유래했고 부족하다. 필요로 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으니까 나를 붙들어 메듯이 간정한다라는 뜻입니다. 해운대라는 영화를 보시면 부산 시내에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주인공 하지원이 전주대에 올라가서 그것을 붙들어서 살아 남았습니다. 쓰나미나 태풍이 오면 큰 나무에다 자신의 몸을 묶어야만 살아남을 수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청하고 구걸해야 합니다. 주시면 주시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깨어있으라는 아그립네오(ajgrupnevw)라고 하는데 자지 않고 있다, 즉 깨어 있다, 깨다라는 뜻입니다. 잠을 자지 않는 상태, 즉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잠을 자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것으로써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즉시 알아차리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정신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은 지금 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속하게 대처합니다. 그러나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덫과 같이 다가오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을 피하지 못하고 당하게 됩니다.
서울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아파트 주민 등 12명이 죽었고, 강원도에서 인하대학교 자원봉사대가 산사태가나서 무너지는 바람에 13명이 죽었습니다. 모두가 잠을 자다가 그렇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불이 나든지, 산 사태가 일어나든지, 지진이 일어나든지 깨어 있는 사람은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을 자는 사람은 그것을 대처하지 못해서 봉변을 당합니다.
2)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항상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나 깨나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눅12:37-40/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롬13:11-14/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으며, 살전5:6-8/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이 곧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5/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의인의 회중 즉 의인들이 모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살전5:2-4/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