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불
사돈댁에서 상이불을 보내왔다. 상견례 때 예단을 생략하자고 했는데 기어이 보냈다. 결혼 비용을 아껴 집 마련에 보탰으면 했지만 막상 상이불을 받으니 반가웠다. 드디어 우리 아들이 장가를 가는구나, 실감나고 뿌듯했다. 사양해도 굳이 예단을 보낸 사돈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고이 키워 시집 보낸 친정어머니 심정이 뒤늦게 와 닿았다.
나는 결혼 준비하며 어머니와 많이 다투었다. 시집가서 잘 살면 되지 예단 같은 건 필요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오빠도 체면치레로 장만한 혼수품들은 이사 다니는데 짐만 되더라며 거들었지만 어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상이불은 며느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달라는 의미가 담겼다며 가게에 진열된 고운 이불들을 마다하고 손수 마련했다. 눈부시도록 화려한 비단을 끊어다 푹신한 목화솜을 놓고 한 땀 한 땀 이불을 만들었다.
시어머니는 예단 이불을 신주단지처럼 아꼈다. 너무 아낀 나머지 도통 덮지 않았다. 공들여 마련한 이불은 시골집 장롱 절반을 차지한 채 세월만 보냈다. 친정어머니는 내게 이부자리를 미리 깔아 놓으라 귀띔했지만 펼치지 말라는 시어머니의 엄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불은 손자가 태어나서야 장롱 밖으로 나왔다. 평생 꺼낼 것 같지 않더니 손자를 업고 간 우리에게 내주었다. 그날 밤 아이가 이불에다 지도를 그렸다. 그렇게 아꼈는데 어쩌나 걱정했지만 시어머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다.
“어이구 우리 정장군, 벌써 네 구역을 정했나? 할머니 이불에 지도도 그리고, 잘 했다. 무럭무럭 자라서 훌륭한 사람 되어라.”
얼룩진 이불 홑청 빨래가 쉽지 않았다. 폭이 넓고 길어 치대기도 헹구기도 힘들었다. 꽉 짜서 탁탁 털어야 했지만 팔목이 아프고 보는 사람도 없기에 대충 건져 빨랫줄에 널었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낙숫물에 바윗돌이 뚫린다더니 떨어진 물방울에 결국 마당이 파였다. 시어머니가 대뜸 화를 냈다. 화살은 시아버지에게로 날아갔다. 마당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 해도 뭉그적거려 사달이 났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시아버지 탓이 아닌데 하는 순간 나에게도 화살이 꽂혔다. 며느리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 빨래가 잘못 말린 오징어 꼴이라며 혀를 찼다. 꾀부리다 들킨 것 같아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혼수를 마다했던 내가 세탁기를 사달라고 친정어머니께 졸랐다. 빨래 사건을 이야기하자 순순히 허락했다. 다른 집 며느리는 농사일도 잘 거든다는데 너는 빨래 를 짜지 않아 마당을 망쳐놓았냐며 세탁기를 보내 주었다.
세탁기로 끝내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사돈댁 마당 공사까지 감행했다. 커다란 레미콘 차가 보리밭을 가로질러 마당에 들어왔다. 시댁에서 오래 벼루기만 했던 일이 곧장 이루어졌다. 밭에 작물이 있을 때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겨울에는 땅이 얼어 공사 하지 못했는데 어머니의 결단이 힘을 발휘했다. 마당 포장하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시멘트 반죽을 주르륵 쏟아붓고 나무판으로 탁탁 누르자 물기 자르르한 마당이 되었다. 몇 번 물을 뿌려 말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우둘투둘하던 흙 마당이 매끈해졌다.
지켜보던 앞집 아재가 잘했다고 나를 칭찬했다. 올 타작부터는 걱정 끝이라며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잘하기는 개똥을 잘 한다, 빨래 하나 제대로 못해 이 야단이지. 사돈댁 신세를 졌으니, 동네 부끄러워서 어쩌나….”
시어머니의 대꾸였다. 그냥 잘했다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하니 좀 섭섭했다.
며칠 전 시골집을 다녀왔다. 이불에 지도를 그리던 아이가 장가를 가게 된 지금 본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대문을 여니 마당 갈라진 틈새로 비집고 나온 쑥이 보였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마당까지 왔을까? 푸르게 자란 쑥이 빈집에 생기를 채워주는 듯 반가웠다. 생전에 시아버지가 제비꽃을 한 짐 캐온 적이 있었다. 내가 제비꽃이 예쁘다 했더니 일삼아 캐왔는데 어쩐지 쑥도 그분이 보낸 선물처럼 느껴졌다.
말끔하게 포장한 마당을 좋다고 어루만지던 시어머니도 생각났다. 그분은 며느리의 서툰 살림 솜씨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어쩌다 밥에서 돌이 나오면 깨끗한 마당에서 타작했는데 왜 돌을 씹게 하느냐고 타박하곤 했다. 참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훗날 살림살이에 약이 된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쓴소리는 친정어머니 귀에도 들어갔다. 장날 안사돈끼리 만나 안부를 주고받다 서로 기분이 상하게 하기도 했다.
내가 며느리 볼 나이가 되니 어른들의 마음이 짚어진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내가 잘 살기를 바라며 나름대로 가르치고 도와주셨다. 어쩌다 집들이를 하거나 잔치를 치르게 되면 두 분 어머니가 더 바빴다. 친정어머니는 부엌 뒷문으로 드나들며 이리저리 음식 간을 봐주고 시어머니는 상차림에 모자라는 게 없나 챙겼다.
며느리가 보내온 이불을 폈다. 묵직하던 예전 것과 달리 부드럽고 나풀나풀 가볍다. 무릎에 얹으니 구름을 안은 기분이었다. 열심히 덮어야지. 요즘 젊은이들은 현명해 그럴 일이 없겠지만 혹시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더라도 며느리를 포근히 감싸 주리라, 상이불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