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하는 4월의 첫 주말, 산불 피해 복구에 일손을 보태러 의성에 방문했다.
의성으로 향하는 길까지만 해도 왠지 모르게 봄소풍을 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뉴스로만 접했던 피해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니 슬픔과 허망함이 차올랐다. 불에 탄 산과 나무, 집과 밭들.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전쟁터의 풍경을 보는 듯 했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전소된 밭들의 구조물을 철거하는 일이었다.
밭을 일구러 온 것이라면 기뻤으련만, 밭을 거두는 일이라니. 착잡함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슬픔을 뒤로 하고 모두들 웃는 얼굴로 장갑과
우의를 착용하고 밭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부직포를 걷어내고, 파이프를 해체하고, 잔해들을 쓸어담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하
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땀과 빗물이 뒤섞여 온몸이 흠뻑 젖었다. 옷과 장갑은 진흙으로 덧칠되었다.
시간이 지나 새참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가져온 먹거리들이 넘쳐흘렀다. 그 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건 막걸리와 초코파이였다.
나는 이제까지 그것들이 그렇게나 달고 맛난 먹거리인 줄 몰랐다.
어쩌면 누군가 절체절명의 순간 입에 넣은 체리의 맛이 이런 것이었을까?
물론 내 자신이 직접적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위해 무엇이라도 힘을 보태어 기여하는 경험
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체리의 맛’이었다. 막걸리와 초코파이만으로도 충만함에 이르는 지경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박티와 디와니는
맛있는 식사로 참여자들을 환대해주었다. 도움을 보태러 간 것이었는데 도리어 도움을 받고 온 셈이다.
평소에 나는 ‘관조’에 대하여 일어나는 현상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이해는 밀려오는 감정에 압도되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있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관조는 단순한 바라보기가
아니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일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
은 필연적으로 생명의 힘과도 맞닿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나의 아버지께서 갖고 있는 ‘내 집’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착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재산적인 의미의 ‘부동산’이 아니라, 가족들이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삶터’였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살았으니 나는 삶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