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한 분이 위의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제목의 글 중 갓쓴 노인이 {맹자}를 읽고 있는 사진 안에 있는 글씨에 대한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한자와 한문의 멋을 사랑함이 역력해 보이는 친구의 의문에 대한 답을, 관련된 질문의 범위를 넘어 주변 배경 지식을 포함하여 좀 길게 풀어보겠습니다.
이 글에 들어간 사진은 제가 AI를 시켜 만들게 한 겁니다. 사진 안의 내용을 다 주문해서 한문 구절도 다 제공하고 집어 넣으라 한 것입니다. 제가 강의하는 주제에 대한 내용에 대해 가끔 AI에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하는데, 너무 틀리는 답이 많이 나와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AI에 의존을 많이 하는데, 제 전문분야로 시험해 보니 “틀린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추론해 그럴 듯하게[似而非]” 답해서, 묻는 사람에게 거짓을 진실로 믿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더군요. 제 전문분야는 틀린 내용을 금방 잡아내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는 잘 알기가 어려우니 폐해가 아주 커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사진은 명령에 따라 그런대로 잘 만들어내긴 하더군요. 한문 구절을 주고 초서나 행서로 넣으라 했더니 그건 못하더군요. 초서나 행서를 읽지도 못하니 만들지도 못하겠죠.
그 사진 안에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서경}에는 “불가환不可逭”인데 왜 “불가활不可活”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 구절은 {서경}보다도 {맹자}에 나오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구절입니다. {맹자/공손추상公孫丑上} 편의 0304장에 이렇게 나옵니다.
“화와 복은 자신이 자초하지 않는 것이 없다.(화복무불자기구지자禍福無不自己求之者)”라는 구절 바로 뒤에, “태갑왈太甲曰,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이 이어집니다. “《상서尙書·태갑太甲》 편에서 ‘하늘이 내린 재앙은 그래도 벗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고 하였다.”는 뜻이죠. 주자의 {맹자집주}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죠. “書作逭. 逭, 猶緩也.(《상서》에서는 환逭이라 되어 있고, 환은 완화緩和함·느슨하게 함이다.)”
환逭은 ‘달아나다, 도피하다. 벗어나다.’의 뜻으로 쓰이는데, 주자는 ‘늦추다’의 뜻으로 해석한다고 했죠. 어쨌든 의미는 비슷하죠. 얼孽은 얼孼의 속자俗字로 재앙이나 서자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죠. 원래 이 글자는 나무의 곁가지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정실 부인의 맏아들의 의미인 적자嫡子와 대비되는 서자庶子와 비슷한 의미의 서얼庶孽이라는 용어에도 사용되게 됩니다.
이 구절은 {맹자/이루상離婁上} 편 0708장에 다시 한번 더 등장합니다. 앞 뒤로 아주 멋진 말, 누구나 음미해 볼만한 말들을 끌고 다니죠. 0708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有孺子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어떤 어린아이가 이렇게 노래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
<유자가孺子歌>는 <창랑가滄浪歌>라고도 합니다.
이 <유자가孺子歌>는 또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도 나와서 더 유명해지죠. 다만 <어부사漁父辭>에는 굴원과 대화를 나누던 어부가 노를 저어 가면서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어부사>에서는 이 노래를 창랑의 물이 맑든 탁하든 주체인 내가 그 대상인 ‘물[창랑지수滄浪之水, 즉 인간 세상의 비유]’에 대한 태도를 결정 또는 ‘선택[갓끈을 씻을까 발을 씻을까]’한다는 점에 중점이 놓여 있습니다. 어부는 물이 맑으면 맑은대로 그에 맞추고 흐리면 흐린대로 그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도가적인 태도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맹자와 공자가 이 시를 해석하는 것은 어부사와는 달리, 물[수水]의 입장에서 물이 주체가 되어 사람들이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거나 그것은 물이 자초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맹자}에는 이렇게 이어지죠.
“孔子曰: ‘小子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들어 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 것이다. 물 스스로 그러한 사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 전체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나옵니다.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毁, 而後人毁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모욕한 뒤에 남들이 그를 모욕하는 것이고, 가문은 반드시 자신들이 먼저 파괴한 뒤에 남들이 그 가문을 파괴하는 것이다. 국가는 반드시 내부적으로 먼저 무너뜨린 뒤에 남들이 그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어서 0304장에서 이미 나왔던 구절이 나옵니다.
“太甲曰: ‘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 此之謂也.”
《상서尙書·상서商書·태갑太甲》 편에서 ‘하늘이 내린 재앙은 그래도 벗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태갑(太甲)은 《상서尙書》의 편명입니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 《상서》에 모두 전해지지 않으며, 오늘날의 《상서》에 있는 <태갑> 상·중·하 세 편은 매색梅賾의 위고문僞古文입니다. 위의 《상서尙書·상서商書·태갑太甲》에서 {상서尙書}의 의미, 상서商書는 또 무엇인지, 위고문僞古文은 무엇인지,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은 무엇인지 등을 얘기하고 싶지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여기서 중단합니다. {상서}라는 책의 성격과 분류, 이 책이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는지 등의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