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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 수와르나부미 - 황금의 땅
(빨) 수완나부미, (태) 수완나품, (크) 소완나뿜, Suvarnabhumi
산스끄리뜨어로 "수와르나부미"(Suvarnabhumi), 혹은 빨리어로 "수완나부미"(Suvannabhumi)로 불리는 이 지명은 "황금의 땅"을 의미한다. 이 말은 원래 고대 인도인들이 버마 남부, 태국 남부, 말레이반도, 수마트라 섬을 포함하는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을 일컫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다 특정해서 사용한다면 현재 버어마 남부지방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주1) 고대 인도인들이 사용한 또 다른 지명으로는 "황금의 반도" 혹은 "황금의 섬"을 지칭하는 "수와르나 드위빠"(Suvarnadvipa)란 말도 있다.
"수와르나부미"는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광범위하고도 다소 모호한 용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게 되었는데, 경우에 따라 어떤 섬이나 반도, 그리고 도시에 대한 추가적 형용구로 사용되었다.(주2) 이에 대응하여 "인도 아대륙"을 가리키는 고대의 지명은 "잠부 드위빠"(Jambudvipa)였다.
(주1) Kanai Lai Hazra, History of Theravada Buddhism in South-East Asia,Munshiram Manoharlal, 1982, p.58.
(주2) Dr. R. C. Majumdar, Ancient India' Colonies in the Far East Vol 2', Asoke Kumar Majumdar, 1937, p.46. |
1. 명칭과 어원
산스끄리뜨어 "수와르나부미"(Suvarnabhumi)는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빛나는", "황금의"를 뜻하는 "수와르나"(Su-varna)와 "대지", "토양", "영역", "국가", "땅"을 의미하는 "부미"(bhumi)가 결합한 복합어이다. 따라서 "황금의 대지"라고 번역될 수 있다.
한편 "수와르나 드위빠"(Suvarnadvipa)에서 "드위빠"(dvipa)는 "양쪽으로 물이 있는 땅", 즉 "반도"나 "섬"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수와르나 드위빠"는 "황금의 반도" 혹은 "황금의 섬"으로 번역될 수 있다.
2. 기 원
"수와르나부미"란 말은 고대 인도와 스리랑카, 라틴어 및 그리스어 문헌, 아라비아와 중국의 저술들에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다.(주3) 기원전 3세기경에 쓰여진 <라마야나>(Ramayana)를 보면 "수와르나 드위빠"와 "수와르나부미"란 말이 모두 등장하는데, 거의 확실하게 동남아시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주4) 역시 기원전 3세기 무렵 까우띨랴(Kautilya)가 저술한 <아르타 샤스뜨라>(Arthasashtra, 實利論)에도, 인도의 와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에서부터 "수와르나부미"까지 항해를 떠나는 브라흐민 상까(Brahmin Sanka)의 일화가 등장한다.(주5) 또 다른 고대의 문헌인 <까타 꼬샤>(Kathakosa)에서는, 큰 장사를 하기 위해 500척의 선박을 이끌고 "수와르나부미"로 떠나는 나가둣따(Nagadutta)의 이야기가 나온다.(주6)
로마의 지리학자 중 동남아시아를 언금한 최초의 인물은 폼포니우스 멜라(Pomponius Mela)였다. 그는 자신의 <연대기>(De Chorographia)에서 "황금[Chryse]의 섬"을 언급하였다(서기 4년).(주7)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클라디우스 프톨레미(Claudius Ptolemy)는 기원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활동했는데, 학자들은 당시 그가 언급한 "황금의 반도/섬"(Chryse Chersonesos)이 말레이반도(주8)와 수마트라 섬(주9)이란 것을 밝혀냈다.
(사진) 15세기 유럽에서 발행된 프톨레미의 저술에 대한 주석서에 삽입된 지도. 여기서는 "갠지스 안쪽 인도"(India Intra Gangem)와 "갠지스 바깥 인도"(India Extra Gangem)라는 구분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대(大)-인디아"(Greater India)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것을 "고유 인도"(India proper)와 "확대 인도"(Further India)를 합친 범위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소장처: The British Library Harley MS 7182) ☞ 확대사진 바로가기
아랍권의 저술가들은 "수와르나 드위빠"(황금의 섬)란 말을 거의 수마트라 섬을 지칭하는 데만 사용했고, "수와르나 부미"는 말레이군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주10) 네팔에서 발견된 고대 사본에는 <수완나뿌라의 스리위자야 [왕국]에 있는 관세음보살 [상]>(Suvarnnapure Sri-Vijaya-pure Lokanatha)이란 제목을 붙인 그림이 들어 있다. 여기서 스리위자야(Sri Vijaya, 스리비자야)는 바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했던 강력한 왕조를 가리키는 것이다.(주11) 16세기말에도 인도의 불교승려 붓다굽따(Budhagupta)가, 인도의 동쪽 바다에 위치한 "수와르나 드위빠"라 불리는 2곳의 섬을 방문했다고 기록했다.(주12)
1478년 몬족(Mon) 왕국인 아만냐데사(Ramannadesa)의 담마제디(Dhammazedi) 왕이 몬어(Mon) 및 빨리어로 쓰여진 비석들을 세웠다. 이 비문에서 이 왕은 자신의 왕국이 "수완나부미"라고도 불린다고 기록하였다.(주13)(주14) 학자들은 이 비문을 "깔랴니 시마"(Kalyani Sima) 혹은 "깔랴니 비문"(Kalyani Inscription)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문은 주로 국왕이 자신의 왕국 내에서 행한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의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고있다.
한편 티벳의 기록을 살펴보면, 7세기 승려 다르마빨라(Dharmapala, 護法)과 11세기의 고승 아띠샤(Atisa Dipankara srijnana: 982-1054)가 "수와르나부미"를 방문했다고 한다.
(주3) Dr. R. C. Majumdar, Ancient India' Colonies in the Far East Vol 2', Asoke Kumar Majumdar, 1937, p.39.
(주4) Paul Wheatley, The Golden Khersonese',University Of Malaya Press, 1961, p.179.
(주5) Dr. Balaram Tripathy, Early Historic Cultures of Orissa, Orissa Review, India, April 2007, p.12.
(주6) Damodar.P. Singhal, India and World Civilization,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1968, pp.80-98.
(주7) Govid Chandra Pande, India’s Interaction with Southeast Asia,Project of History of Indian Science, Philosopgy, and Culture, 2006, p.89.
(주8) W. J. Van Der Meulen, Suvarnadvipa and the Chryse Chersonesos, Indonesia, Vol. 18, 1974, p.1.
(주9) W. J. Van Der Meulen, 앞의 책, p.4.
(주10) Dr. R. C. Majumdar, Ancient India' Colonies in the Far East Vol 2', Asoke Kumar Majumdar, 1937, pp.47-48.
(주11) Dr. R. C. Majumdar, 앞의 책, p.45.
(주12) Dr. R. C. Majumdar, 앞의 책, p.48.
(주13) Dr. R. C. Majumdar, 앞의 책, p.46.
(주14) Aye Chan, The Nature of Land and Labour Endowments to Sasana in Medieval! Burmese History, Southeast Asians Studies, Vol. 26, No. 1, June 1988, p.93. |
3. 수와르나부미와 불교
상좌부불교의 경전들인 <밀린다빵하>(Milindapanha, 밀린다왕문경), <마하니데사>(Mahaniddesa), <자따까>(Jatakas, 본생담) 같은 문헌들을 보면, "수완나부미"(Suvannabhumi)란 지명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스리랑까의 사서인 <대사>(大史, Mahavamsa: 4세기경)는 "제3차 경전결집"이 끝난 후, 인도의 아쇼까(Asohka) 대왕이 2명의 승려 소나(Sona)와 웃따라(Uttara)를 "수와르나부미"에 전법단으로 파견했다고 한다.(주15)
버어마 지역 금석문들을 보면, 이미 5세기경에는 버어마 남부에 상좌부불교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중국의 사서들은 서기 240년경의 불교왕국인 "린양"(Lin-Yang)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지명이 베익타노(Beikthano)의 쀼족(Pyu) 왕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인했는데,(주16) 이곳은 양곤(Yangon)에서 300 km 정도 북쪽에 위치해 있다. 중국 사서들은 또한 만(灣)에 위치한 "친린"(Chin-Lin: 황금 벽)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타톤(Thaton)에 있던 몬족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주17)
(주15) Translated by Wilhelm Geiger, Mahavamsa : The great chronicle of Ceylon', Pali Text Society, 1912, p.82, 86.
(주16) Bob Hudson, The Origins of Bagan, Thesis for University of Sydney,2004, p.36.
(주17) Elizabeth Moore, Interpreting Pyu material culture: Royal chronologies and finger-marked bricks, Myanmar Historical Research Journal, No(13) June 2004, pp.1-57, pp.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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