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密陽朴氏) 시조 박언침(朴彦忱)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이를 연유로 해서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派祖)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都評議事公派: 8세손 박언상),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 8세손 박언인),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8세손 박양언), 판도공파(版圖公派: 8세손 박천익), 좌윤공파(左尹公派: 8세손 박을재), 진사공파(進士公派: 10세손 박원), 밀성군파(密城郡派: 13세손 박척), 동정공파(同正公派: 13세손 박원광), 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 15세손 박중미), 정국공파(靖國公派: 15세손 박위), 규정공파(糾正公派: 16세손 박현) 등 크게 12파로 나뉘어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分派)되었다. 또 《박씨선원세보(朴氏璿原世譜)》에 의하면 10여개의 본관으로 분적(分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박씨는 순수한 한반도 토착 성씨이다. 박씨는 밝다는 뜻의 순우리말 '밝'을 한자로 음차하여 '朴'으로 표기한 것이다. 한국의 박씨는 시조 박혁거세 이고, 이 중 밀양 박씨는 박씨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종이다. 밀양 박씨는 한국의 성본 중 김해 김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밀벌 또는 미리벌)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 慶州)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는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하여 독립하였다. 1995년 밀양군이 밀양시에 통합되었다.
영주 입향조는 박지(朴 墀)1474년(성종5)~미상, 이고 자는 중대(重大)이며 호는 신재(愼齋)이다.충순위 선략장군을 지냈고 경상도 병마절도사로 재임중 사망하였다.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