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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본 여 행 기 (2)
07.10.9.(화) ~ 10.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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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참 가 인
김 용선 부부. 조 영순 부부.
이 상준 부부. 윤 영수 부부. 8인
10.09.(화)
우정 잠을 설친 뒤 아침을 마치고 8시에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과 합류 잠실에서 공항 직행 버스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10시경 도착하여 조금 지나 상준부부와 상면하여 이른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 코너를 돌아보다 12.20분 발 JAL 962편 (kansai행) 으로 7박 8일 여정에 올랐다 기내에서 보는 창밖의 하늘은 그지없이 맑고 아름답다. 특히나 새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모습은 일품이다. 혹시 태풍의 결과는 아닐런지 ....... 집 사람도 내려다보이는 하늘의 구름과 경관이 아름답다 감탄 한다. 14시경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는데 일행이 8인 이여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꼴찌로 공항을 빠져나와 J.R pass 수속을 하고 열차에 올라 신 오사까에서 다시 HIKARi 열차로 HIMEJI 역에 도착 Hotel sun Route - Himeji에서 일본 여행의 첫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도 할 겸 역 근처 시가지를 돌아보다 저녁을 마치고 돌아와 팩 소주를 나누며 담소하다 잠이 들다.
10.10.(수)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약간의 피곤함 속에서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 하루 일정을 생각하다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한 뒤 숙소를 나와 히메지 성을 향했다. 도보로 약 20여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을 돌아보고 나와 니시오야시키 정원(好古園)을 구경한 뒤 기차를 타고 고베(新戶)역 - 산노미야(三 /宮) - 나다 역에서 하차 걸어서 1995.1.17일 고베 지진 (한신.아와 대지진)기념관을 구경(방재 미래관만 보고 사람과 미래 관은 시간이 촉박해 생략)하고 다시 나다 역에서 스미요시(住吉)역을지나 오사까 (大阪) 공원 역에서 하차 오사까성 천수각을 구경한 뒤 오사까 공원 역 - 모리노야마 역 - 사설철도 - 신다이바시 역에서 하차 저녁을 한 뒤 다시 교토 역으로 이동하여 그 웅장한 (?) 역사를 빠져나와 인근의 교토 대 인 니 타워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기실 오늘은 싱거운 일이 있었는데 저녁을 전통 음식으로 먹으려 신다이바시에서 유명하다는 우동 집을 찾아 헤 매 다닌 일이다 결국 찾긴 찾아서 우동을 먹었다. (마쓰비야 본점)그리고 다시 스시를 잘한다는 집을 찾기 위해 혼마찌 역에서 내려 요시노 식당을 어렵게 찾다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하여 되돌아 선일이다.
@@ 기억에 남을 일은 스미요시(住吉) 역을 지나며 부모님과 형님들이 사셨던 곳을 생각하며 아버님을 회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던 일이다. (아버님이 근무하셨던 수상 경찰서는 지금도 있다는데.....)
---히메지 성 역시 입구에 해자(垓字)가있고 입구 역시 휘 돌아 들어가야 한다 코코엔 정원은 잘 꾸며진 게 예나 지금이나 잘 사는 사람은 집 꾸미는 게 우선인가보다. 고베지진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오며 신의 저주와 축복의 차이가 뭘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념관 1층은 가이던스 룸1. 2. 2층은 향후 방재의 본연의 자세실 3층은 대지진 재해의 실물자료 상세한 데이터 실 4층은 대지진 영상실) 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화장실이 보일 땐 무조건 들리고 먹을거리는 미리미리 챙기자는 내 생각에 아침에 성 구경하고 역으로 나오며 로테리아에서 햄버거를 사고 과자를 좀 샀다 .그게 어정쩡한 점심으로 요기가 됐음은 다행이고 오사까 성에서는 지난 번 못 먹은 다꼬야끼와 아이스크림도 먹었지만 식사하러 돌아다니다 숙소에 들어오니 왠지 피곤이 밀려 온다. 아마 집사람도 같은 마음이리라 .
# 히메지 성 (姬路城)
최초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한다.(1992년 유네스코)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완성도 성곽 건축이며 목조성곽 건축 이라한다. (국보) 성곽 축성한 사람은 아카마츠 노리무라로 1333년 세워졌으며 1580년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모리 정벌에 나선 하사바 히데요시(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다른 이름)가 전투를 위해 구로다요시 타카와 이소베 나오미츠에게 공사를 시켜 1581년 3층의 천수각을 세웠고 1601년 대대적인 개축공사로 오늘날의 대 성곽으로 변신하였다한다 .그 후 니시노마루를 정비하여 1681년 현제의 히메지 성의 면모를 갖추었다하며 현재는 지하 1층 지상 6층의 천수각이 있다고 기록돼있다.
# 히메지성 니시오야 시키정원 (好古院)
세계 문화유산이며 국보인 히메지 성을 배경으로 히메지 시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되어 1992년 개원한 물가를 둘러싼 양식으로 지어진 (池泉古遊式)일본 정원이라 한다. 1985년 실시된 발굴조사로 확인된 이시오야시키를 비롯한 무사 저택 통로등의 유적을 되살려 지은 이 정원들은 9가지 풍치의 정원 군으로 구성 되 있고 면적은 약 1만평에 달한다한다.
# 고베 지진 (한신.이와지 대지진)(神戶)
1995.1.17.일 진도 7.2의 강진이 일어났으며 약 6,400여명이 숨졌으며 수많은 재산 피해가난 끔찍한 사고다 .
# 오사까성 (大阪城)
1496년 스님을 위한 숙소로 출발하여 오사까 혼간지 절로 대 사원으로 성장하였으나 오다 노부다가에 함락 - 1583년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이 성을 수중에 넣고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성곽을 완성했으나 히데요시가 사망 후 17년이 지나 불에 타버렸다. 1620년 개축공사를 시작하여 1629년 완성했다. 그리고 36년후 번개를 맞아 불에 탐 - 1931년 오사카 시민들의 힘으로 천수각을 재건 했다한다 2차 대전당시 폭격을 당했으나 천수각은 무사했고 1948년 천수각은 사적공원으로 재출발 하였고 건물은 1층 천수각 입구 2층 성에대한 정보 코너 3층은 역사자료 전시실(수시로 바뀜) 4층 도요도미 히데요시와 그 시대 5층 오사카 여름 전투도병풍의 세계 7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 8층 전망대 등으로 꾸며져 있다.
10.11.(목)
아침 식당 메뉴가 그럴듯하다. 집에서 같으면 빵 두어 쪽에 우유 한 잔 토마도 쥬스 한 잔 이면 그렁저렁 인데 여기선 그래선 굶어죽는다? 싶어 열심히 먹기로 작심을 했다. 양식과 일식 어느 걸 먹을까 ? 에라. 그래도 빵에 쏘시지다 싶어 많이 먹기로 했다 좌우지당간에 오랜만에 먹는 호텔식이다 그려 그려 - 먹자먹어 - 빵 야채 쏘시지 베이컨 등 가리지 않고 포식? 했다 빵을 7개나 먹고 아침에는 안 마시는 커피까지 한 잔 쭈~욱 조오타. ! 허니 배가 남산 같다 어떻튼 나오면 화장실,물, 건더기는 장소 구분말고 먹고 배출할 일 아닌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거만스레? 숙소를 나와 일일 승차권(500엔)을 구입 긴까구 행 버스를 타고 긴가꾸로에서 내려 금각사 구경하고 이어 니노성으로 향했다. 니노성을 돌아보고 은각사로 가서 구경한 뒤 마지막 관광지인 청수사를 보고 내려오다 식당에 들려 소바를 한 그릇씩 비우고 난후 교또 역으로 와서 역 주변과 역사에 위치한 Isetan kyoto setan을 아이 쇼핑한 뒤 역 근처 회전 초밥 집에서 저녁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잠을 푸욱 잘 수 있음 좋겠타.
----우선 지난 번에는 추울 때 와서인지 아님 방학 기간이여선지 관광객이 별로였는데 이번에는 가는 곳마다 대단하다 (특히 학생들)
오늘도 가는 곳마다 입장료 챙기는데는 여념이 없어 보인다. 지난 여행 때와 같이 철학로를 거쳐 금각사로 은각사로 청수사로 니조성 으로 뱅뱅 돌았다 철학로는 옛 어느 시절엔가 유명한 철학자가 그 길을 산책하였다 해서 명명된 길이라는데 한가한 때 걸어볼만하겠다 싶고 오늘 코스는 지난 번 상준과 거친 코스라 색다른 느낌은 없었다.
# 교토(京都)
현 교토부의 부청 소재지 794년 헤이안 시대 국정의 중심지 후에 막부 정치시작으로 정치적 기능 상실하고 에도시대에는 정치의 중심이 에도(도쿄)로 옮김에 따라 형식상 수도였다가 1868년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수도가 도쿄로 옮겨감에 현재는 문화의 중심이자 관광도시이다.
# 금각사 (金閣寺)
1층은 침전식(寢殿式) 건축물로서 호스이인(法水院) 2층은 무가식 전통 건축물로서 조온도(潮音洞)라 불리고 3층은 중국식의 선종 불당 건축물로구쓰코초(究竟頂)라 불리우며 3가지 건축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무로마치시대(室町)의 대표적 건축물이며 1987년 가을 다시 옻칠을 한 뒤 금박을 새로 입혔다 한다. 이 절은 사리전 금각(金閣)이 특히 유명하기 때문에 킨카쿠지(金閣寺)라 불리우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이다 절로서 임제종 쇼코쿠지파의 선종사원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함.
# 은각사(銀閣寺)
일본 무로마치시대의 지배자 아시카가 쇼군의 별장으로 건립되었으며 건물의 외벽을 은박으로 장식하려했기에 킨카쿠지라 부리지만 정식명칭은 지쇼지라 한다. = 아버지가 세운 금각사를 본받아 아들 요시모치가 세운 것으로 후에 법호인지쇼인(慈照院)임에 연유하여 지쇼우지(慈照寺)로 명명 되었다 함
# 니조성(二條城)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건립하였으며 자신이 교토에 체재 중에 기거하던 성이다. 내부의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특이한데 자객이 침입하여 장군을 해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소리 나게 만든 것 이라한다.
# 청수사(淸水寺)
청수사는 엔친 스님이 꿈에 계시를 받아서 778년경 청수사에 있는 폭포에 불상을 세움으로 시작되었다함. 봄의 벚꽃이 아름답다고 하며 1994년 세게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함.
10월12일(금)
숙소에서 아침을 걸지 게 퍼 넣으시고 교토 역에서 나라에 도착. - 동대사 행 버스를 타고 가서 동대 사를 구경했다. 지난번 여행 때 시간도 절박하고 입장료도 아까워 겉만 구경했는데 이번엔 젊잖게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 훌쳐보았다. 세계 최고 오래된 사원이라는데 특징은 지붕 양 끝에 사슴 뿔모양의 각이 세워졌는데 색깔이 금색이다. 청동 불상 또한 세계 최대란다 구경 후 다시 나라 역으로 와서 법융사 역으로 가서 법융사를 구경한 뒤 나라 역으로 와서 - 교토 - 동경으로 왔다. 동경에서 다시 환승 하마구찌죠 역에 와서 인근 지산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숙소 밖 식당에서 저녁을 한 뒤 취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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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교토를 떠난다. 역 여행객 화물 보관함에 배낭을 넣고 동대사로 가서 사슴들을 보고 절 안에 들어가 구경했다. 신사 구경하는 중 한국 배재대학 생들과 조우했다 매번 느끼지만 절도 한국의 절 같지 않고 신사 또한 내 느낌으로는 으로는 우리나라 절의 삼신당이나 명부전 같은 느낌이다. 아님 무당 신전 같다면 어떨런지, 법륭사는 법륭사 역에서 미니버스 같은 작은 버스로 법륭사를 왕복 운행하는데 이곳은 백제시대 때 우리나라에 온 성덕태자가 창건한 절이 바로 법륭사라 한다. 여기서 볼 곳은 세 곳으로 나뉘어있는데 saiin garan( 西院伽藍) daihozoin( 大宝藏院) toin garan( 東院伽藍) 등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느껴보자는 상준의 말을 들어 본다 허나 이미 과거는 흘러갔고 = 허지만 기실 선조 대에 영의정을 했다한들 지금 무신소양이람 = 건축양식은 지금껏 보아온 양식과는 차이를 느낀다. 시가지는 아주 한가롭고 조용하며 깨끗하게 생각 된다 그리고 옛 내음이 풍기는 것 같다. 어느 가게 앞을 지나는데 경주와 결연지역이라 쓴 간판이 보이는데 혹시 우리나라 아닐까?. 피곤이 밀려오지만 가는 길이 구만리라 바쁘다. 다시 나라 역으로 와서 배낭을 찾아 메고 교토로 향했다. 교토 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2시간 40여분 달리는데 흡연 가능 칸이라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냄새가 독하다. 남녀 가리지 않고 뿜어댄다.( 도박판에 들어선 것도 아닌데 원 펴대긴) 내려서도 한 참 동안 냄새가 몸에서 났다. 좌석이 통로기준 2인 3인 석으로 나뉜 히카리 열차인데 일행의 자리가 모두 3인석의 가운데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캔 맥주 한 깡씩 마시며 견디려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든 것 같다 도쿄의 입성은 이렇게 시작 된거다.
# 동대사 (東大寺)
남도(南都)7대사의 하나로 745년 쇼무왕 (聖武王)의 발원으로 로벤(良弁)이 창건하였다 본존은 비로자나불로 앉은키 16M 얼굴길이 5m로 속칭 나라재불이라 한다 일본 3계단(三戒壇)의 하나로 주요시되고 헤이안(平安)시대를 통하여 고후쿠사와 더불어 일본 불교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다. 금당도 에도( 江戶)시대 재건된 것으로 높이 47.5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 법륭사(法隆寺)
스이코왕(堆古王)의 조카 쇼토쿠(聖德)태자가 601 - 607년에 세웠다고 전하며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목조 건물이다 스이코양식인 금당 오층탑을 중심으로하는 서원 덴표(天平)양식인 몽전(夢殿)을 중심으로 하는 동원부분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미술품으로는 불상으로 금당의 약사여래상,석가삼존불상,아미타삼존불상,등이 있고 벽화는 금당4벽의 4불정토도 등 수 백점이 있으며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다 금당 내부 벽화는 610년 고구려 영양왕 21년 고구려 담징이 그린 것으로 중국의 원강 석불. 경주의 석굴 암.등과함께 동양3대 미술품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있음
10.13일 (토)
역 근처인 탓일까 깊은 잠을 못자고 두어 번 깼다. 4시 40분경 기여이 깨여 뒤척이다 식당에 내려가 순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좌우당간 먹고 또 먹어야 겠기에 ........
도쿄 - 오다와라 -하꼬네 - (하꼬네에서 일일관광 표를 사다 (3900엔) )- 하꼬네 유또(온천지역)- 고라 - (해발535) - 소운산- (해발 761)- 케이블 카 - 로프웨이 - 涌谷驛 하차하여 온천수가 나오는 곳(해발1050지대)을 구경함. @ 온천지 온도 80 증발 전 온도 95~100라 기록됨 근처 땅에서 수증기나오는 곳들을 돌아보고 다시 유황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오와구다니(大涌谷) 1044 m를 본 뒤 로프웨이를 타고 - 토겐다이 호수로 가서 배(명칭 해적선)를 타고 호수(해발724)를 건너 하꼬네마찌 항에도착 인근 식당에서 우동으로 점심을하고 다시 역순으로 돌아와 저녁을 한뒤 숙소에 들다 .
--- 오늘이 벌써 5일 --- 그리고 도쿄에서 첫 아침이다 하꼬네를 가는 열차는 하꼬네 유또 역에서부터다. 여기서 가는 열차는 꼬부랑길을 지그재그 또는 뒤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소운잔 역까지 가는 케이블 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멋있다 가을 단풍이 들면 볼만 하겠다. 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차와는 다르다. 이차는 열차와 비슷하고 케이블로 끌기는 하지만 공중에 메 달리는 게 아니고 레일 위를 달리기는 하나 아래에 케이블이 있는 것 같고 로프웨이는 스키장에 리프트 비슷하나 많은 인원이 승차할 수 있고 외형은 우리나라 케이블 카 비슷하다. 인근에는 유황냄새가 지독하다. 산에는 이 곳 저 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펴오르는 게 온천 지대가 틀림없고 흙물이 끓어오르는 곳도 있다 멀리 후지산 윗부분이 구름을 깔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허나 예전에 미시마에서 보던 산 모습보담 훨씬 못하다 호수는 굉장히 깊은 것 같고 커다란 잉어가 많이 뛰노는 걸 봤다 호수건너편에서 식사하고 배를 기다려 타고 오면서 생각하니 우동 한 그릇 먹으러 갔다 온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왔다. 오면서 하꼬네 유또에서 목욕하려다 장소와 시간이 적절치안아 포기하고 그냥 왔다. 오늘은 하꼬네 구경으로 하루를 보냈다 도쿄에 와서는 긴자거리를 구경하고 식사할까 했으나 일행이 여럿이라 장소가 마땅치 않아 하마야쯔죠로 와서 식사를 했는데 별로 였다 가격은 비싼 편 --내일은 도쿄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 하꼬네(箱根)
하꼬네는 후지산과 마주한 전형적인 복식 화산 지대로 깊은 산과 호수 계곡 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옛날에는 천하의 험준한 곳이라 불릴 만큼 험한 길이기에 사람조차 고개 넘는 걸 피했다고 한다. 산이 험해 하루에 넘을 수없어 일찍부터 숙박지가 개발됐고 화산 활동의 부산물인 풍부한 수량의 온천이 도처에 널려있어 병을 치료하기위한 온천지대로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어왔다.
10.14.(일)
도쿄에서 이틀째다 .오늘도 변함없이 7시 정각에 순대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내려가 여유 있게 ? 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에노 공원으로 가서 휘~이 돌아보고 아사쿠사 역에서 내려 아사쿠사 신사를 구경하고 도쿄에 와서 옛 역사를 구경한 다음 황궁근처를 돌아보고 신주꾸로 나와서 늦은 점심이지만 사케 한잔 곁들인 다음 이이다바 - 이끼히바다로 나와 어두워졌지만 야스쿠니 신사를 보고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숙소 근처로 와서 저녁을 하고 잠들었다 .
내일은 닛꼬로 향할 예정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좀 한가하다. 아마 도쿄 시내 관광이라 그런걸까. 아야마쯔죠 역을 나와 우에노 공원으로 가보니 예전보다는 깨끗한 느낌이 든다. 지난번에는 곳곳에 노숙자 천막이보였는데 오늘 안 보인다. 혹시 장소가 바뀐 걸까?. 이곳저곳 약 40여 분간 돌아보고 긴자선 아사쿠사 역에서 내려 아사쿠사 신사와 상가를 구경하고 우진이 닌자 셔츠를 구입했다. 칸다 역을지나 도쿄 역에서 내려 황궁 방향으로 나오니 구 역사가 서울 역사와 흡사하다. 아마 일제 강점기 때 서울 역사를 지으며 어떤 이유에선지 설계를 같게한게 아닐까. 지난번에도 보았지만 혹시나 하고 갔으나 역시 출입 금지다.
그 곳에서 노부부를 뵙는데 강점기 때 한국에 와서 사시다 81년에 귀국하셨다한다. 평화스럽고 다정해 보이는 게 참 보기 좋다. 너무 늦었지만 야스쿠니 신사를 돌아보는데 늦도록 참배객이 있다 피곤도하고 쉬고 싶다 .
# 우에노 공원 (上野 公園)
도쿄의 대표적 공원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사람의 발길이 이어 진다. 특히 봄에 벚꽃이 필 때는 사람구경만 하고 돌아선다는데 이 공원에는 비둘기가 많고 자칫하면 비둘기 똥에 벼락을 맞는다고 전 한다. 우리나라의 옛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곳인데 내 기억에도 여러 책에서 본 적 있다.
# 황궁(皇宮)
일본의 천황과 그 일가가 사는 궁이다. 정문에 안경모양의 돌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메가네바시다. (메가네는 안경의 뜻)일 년에 두 번 개방하는데 신년과 천황 생일이며 일본의 상징이라 한다.
# 신주쿠(新宿)
도쿄 신주쿠구 신주쿠 역을 중심으로 번화가 1991년 도쿄 도청이 들어선 후 신도심 중심이 됬 고 역을 중심으로 고급 백화점 극장 카바레 레스터랑 등이 밀집한 환락가.
# 야스쿠니 신사 (靖國神社)
도쿄의 한 가운데 황궁 북쪽에 위치한 신사로 8만여 개에 달하는 일본 전역의 신사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신사중의 신사로 메이지 유신 직후 1869년 막부 군과 싸움에서 숨진 영혼을 호국의 신으로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되었다.
수년전 전 당시 총리인 고이즈미가 공식 참배해 우리의 반발을 샀다.
10.15.일 (월)
관광의 마지막 날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 도쿄로 향했다 .신간센 열차로 우찌노미야 역 - 니꼬 역 - 니꼬 관광버스로 (5400엔) 신교 - 케곤 폭포 - 린노지 - 토쇼구 - 구경한 뒤 니꼬 역 - 도쿄 -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내다.
----- 이른 아침 일어나 식사도 아니하고 도쿄에서 도시락을 구입 기차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10시경 니꼬 역에 내려 인근에 있는 관광회사에 들려 하루에 한 번 운행한다는 버스로 니꼬 관광에 올랐다. 근처에 있는 신교를 보고서 이어 산길을 계속 오르다 휴게소에서하차 케곤 폭포를 구경한 뒤 인근에 있는 니코 Lake side hotel에서 중식을 하였다 식당은 호수(쮸젠지)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관이 수려하다 오는 도중에 터널이 두어 곳 있고 해발이 1300 이 넘는 것 같다 내려오는 길도 심한 커브길이 무척 많고 경사도 졌다 커브길마다 번호가 적흰 표지판이 있다 차에서 가이드하는 분은 70세가 넘어 보이는 할머니인데 시종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쉬운 건 못 알아듣는 말이다. 중간에 가끔 관광객들이 소리 내어 웃는데 왜 웃는지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어떻든 노익장을 과시하는 가이드의 직업정신이 대단하다. 거의 다 내려와 린노지 절과 토쇼쿠 신사를 구경했는데 신사 뒤 계단(207계단)을 오르면 삼나무 숲에 세워진 (약 5m)작은 탑이 있고 여기에 토꾸가와 이에야스 시신이 묻혀 있다한다.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돌아보고 박물관에 갔으나 입장료를 내라기에 그냥 돌아와 버스에 올라 니꼬로 향했다. 책에 보면 여러 볼 곳을 기록했는데 시간상 생략되나 부다 . 기억에 남는 일은 신사에는 입장객들을 마루에 안 치고 무녀?가 춤을 추며 경내에서는 기복을 비는 물품을 선전하고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 예수님이 쫒아내는 기록이 있다)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지만 관광객들을 못 가게 세워놓고 한 참을 설명한 뒤 강권한다는 게 도시 어줍잖다. 좌우지당간 만신의 나라여서일까 신이 많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번창을 못 하나보다. 관광을 끝내고 온천욕을 하려했으나 이 또한 여건이 안 돼 포기하고 기차에 오르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온천욕 복이 없나보다 .신기하게도 비는 멈췄다. 도쿄로 와서 저녁을 회전초밥으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
# 닛꼬 (日光)
닛꼬를 보지 않고 멋있다고 하지 말라는 일본 속담이 있을 만큼 일본에서는 특급 관광 명소라 한다. 닛꼬에는 국립공원이 있다한다 가을 단풍시즌 때는 인파에 밀려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허나 교통이 생각보다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곳에는 동조궁. 신교 .쭈젠지 호수. 케곤 폭포.타로스키.등 여러 볼거리가 있다고 기록돼있다.
# 신꾜 (神橋)
나라 시대 말 불법을 전파하러 온 쇼도 쇼닌이 다이야가와를 건널 수 없게된 순간 부처님께 빌자 지나가던 뱀이 다리로 변했다는데 1636년 토쇼구 재건 시 닛꼬의 영주가 다리를 만들어 바쳤다하며 당시는 장군 승려 칙사 정도가 건널 수 있었다 한다 . 원래 다리는 1907년 불이나 90여년 전 새로 놓았다한다. (우스운 일은 20여 m 되는 다리를 건너보는데 300엔이다 )
# 린노지(輪王寺)
776년 개창한 이 절은 닛꼬 산악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유명한 것은 붉은색 삼부쯔도 848년에 세워졌으며 폭이 33.8m에 이루는 닛꼬 최대 건물이다. ( 천수관세음보살. 아미타여래. 마두관세음보살)
# 토쇼구(東照宮)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을 이장하면서 지은 사당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신으로 떠받드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토쇼지 (東照寺)에서 신을 모신다는 뜻의 토쇼구(東照宮)으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한다
10.16.일(화)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을 좀 느긋이 먹고 출발하려 했는데 마지막 밤이어서 일까 잠이 쉬 오지 않아 수면제 한 알 먹고 잤다. 새벽에 깨어 다시 한 알 먹고 잤다. 어제 저녁 상준이가 비행기 예매표 부본을 잃어버렸다고 태산같이 걱정하더니 아무래도 공항에 일찍 나가는 게 상책 같다고 하여 모두 배낭을 메고 9시가 채 못돼 숙소를 빠져나왔다. 도쿄에서 나리타행 기차를 타고 공항에 나오니 11시가 채 안 돼 우선 Jal항공 매표소에 가서 분실사유를 말하고 승차권을 받아 화물 수송에 짐을 맡기고 면세점 구경을 하다 14시 티케팅을 하고선 비행기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17시 조금 못 미쳐 인천공항에 도착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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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랜만에 집사람과 동행 했다. 지난번에도 느낀 일이지만 정녕 일본은 무서운 나라라 생 각 된다. 특히 그들의 친절한 행위는 우리 나라 젊은이들도 많이 배우고 느껴야 되리라 고베 지진현장 복구 또한 배울 일이다. 한 번 격으면 두 번 격지 않으려는 노력 그게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에 “천황의 대는 천대만대로 작은 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란 구절이 있단다. 우리나라의 “애국가”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란 구절이 있다. 두 구절모두 영원한 장구한 세월을 뜻한다면 전자는 엄청나게 부풀어 가는 과정이고 후자는 닳아 없어지는 소멸의 과정이다. 결국 두 과정사이엔 보이지 않는 성장과 소멸이 있는 걸로 생각 된다. 특히나 교통망은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역시 대단한 나라다. 가는 곳 마다 관광객 그 중에도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습을 위한 관람행위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유치원생이 뭘 알랴만 일찍부터 가르치는 데는 원대한 뜻이 있는 건 아닐 런지 가능한 우리도 산과 자연을 학습시킴보다는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배우면 어떨까, 동대사나 청수사등 절에가보면 정작 입장료징수는 절 입구에서 하지 우리나라처럼 절과는 동떨어진 매표소에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사원은 관리차원에서 돈을 받으나 사원을 참배하지 않을 사람은 넓은 공터와 주변을 구경하라는 배려가 아닐까 이 또한 합리적인 것 같다. 우린 절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입장료를 내야하지 않은가. 전철에서도 보면 여러 사람들이 책이나 신문을 보고 있다. 또 우린 빌딩이 들어서거나 아파트가 들어서면 복덕방과식당이 먼저 자리를 벌리는데 변두리 주택가나 빌딩 근처에 가면 식당이 드물고 기껏 가게가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출근대열도 보면 거의가 가방을 들고 다닌다 우린 앉자마자 눈감고 사색?에 잠겨 지내는데 이 번 여행에서 여럿이 다니다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었다. 아쉬운 일은 언어소통이 한 사람밖에 안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지난번에는 단 둘이여서 그렇게 못 느꼈는데... 허나 중요한 사실은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이해한다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스미요시에 내려 돌아보지 못한 일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채취가 있든 곳을 지나쳐간다는 일이 내겐 중요했다. 언제가 내 죽어 아버지를 만난다면 할 말이 있게 됐으니 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남자들은 그렇다 하드래도 여자분 들이 고생 많았고 불편했으리라 우쨌든 벗 상준이 고생이 젤 많았고 힘들었으리라 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