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 번 주 는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바로 본 문은 예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시면서
수난주간 첫날에 일어난 사건으로 써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은 여리고 로 부 터 예루살렘에 이 르렀습니다.
그들이 감람산 동편 능선에 위치한 뱃바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두 제자들에게 나귀와 어린 나귀를 준비시켰습니다.
그리고 스가랴의 예언대로 (슥9:9) 어린 나귀를 타시고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고,
예수께서는 다 른 전도 여행시에 항상 걸어다니셨는데,
여기서는 거리상으로
약 3Km정도 되는데,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유태인들은 상식적으로
슥9:9절이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알고있고 즉
스가랴는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 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는 작은 것
곧 어린 나귀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는이스라엘을 위하여 예정된 왕이 오실 것인데,
그 의 성품과 행실은 의롭고 공정하며,
구원을 베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스가랴는 겸손하여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겸손하심을 선포하 였습니다.
이는 호전적인 화려함이나
세속적인 위대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뜻합니다.
더욱이 나귀를 타신 모습은 가난하거나
고난 당하는 처지에 있음을 나타냅니 다.
또한 스가랴는 어린 나귀임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짐을 나르는 암 나귀의 일종 으로 훈련되지 않는 나귀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임을 가리키 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순전한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옛 시대에는 사 사들과 고귀한 사람들이 나귀를 탔다. (창22:3)
그러나 솔로몬 시대부터는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있어서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렘17:25)
그러므로 본문에서 어린 나귀가 언급된 것은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어떤 분으로 오 실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전투 마나 전용 자동차 나 비행기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승리 의 개선 장군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세속적인 왕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무력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지도, 않고 유지되지도 않음을 시사합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였던 유대인들은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를 대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은
겉옷이 나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며 환호와 경의를 표시하였습니다.
고로 오늘 여러분과 함께 겸손하여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대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 감람산 뱃바게
1)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수난 주일이 시작됨을 나타내며, 이의 중요성은 복음서
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막11:1-1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
성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의 메시야 됨이 세상에 드러나자 유
대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의 공생에 기간 중 여러 번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아기 때 소년기 때 시험
때 (눅2:22) 공생에 제1년 유월절 때 부림절 때, 제2년 유월절 때, 장막절 때, 예루살
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요2:35) 본문에서는 공생에 제 3년 즉 마지막 유월절을 지
키러 가신 것이었고 이 것이 바로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이었습니다. (요1:29)
2) 승리의 입성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왕 되시는 메시
야로서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승리의 입성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라크와 미영 연합군의 전쟁에서 연합군이 바그다드에 승리의 입성 한
것처럼 전쟁의 입성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승리의 입성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메시야 되심을 분명히 밝히시는 예루살렘 입성은 일주일 후 이루어질 예수님의 부
활 승리를 예견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3) 감람산 뱃바게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편 기드론 시내를 건너 남북으로 약 10리가 되는 동산으로
감람나무가 많아 감람산으로 불렀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도중 주님은 벳바게에 들
리셨는데 이 마을은 구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며 신약 성경에도 이 곳에서만 나올
뿐입니다. 벳바게는 감람산 동편 산록에 위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
성하실 때 택하신 경로는 군사 도로로 해발 약 900m에 위치한 길입니다. 감람산 벳
바게의 길을 택하신 것은 사랑하는 예루살렘 성 읍의 전경을 한눈에 보고자 하심이
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도성이었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
는 예루살렘 성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
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둘째 : 예수님이 쓰실 나귀
1) 두 제자를 보내심
예수님은 두 제자를 벳바게로 미리 보내어 나귀를 데려 오도록 하셨습니다. 이 때
의 두 제자는 아마도 베드로와 요한으로 측정되어집니다.(눅22:8) 이렇게 제자들을
시켜 나귀를 데려오도록 하신 의도는 슥9:9의 말씀을 일깨워 주시고 예루살렘 입성
에 동행할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믿게 하려는 데 있습니
다. 직접 이 일을 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키우러 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전지 예견성
예수 그리스도의 초인간적인 전지성은 세밀한 데까지 미칩니다. 나귀의 주인은 바
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집의 주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의 숨은 제자
였을 것입니다. 두 제자에게 내리신 예수님의 지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
며, 예지의 능력을 소유하신 당신의 능력을 나타나 보인 것 이로 주님의 신성이 두
드러지게 강조되었습니다.(마24:36)
3) 주님이 쓰실 나귀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 나귀를 풀어 올 때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
다'는 말을 하라 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자칭으로 '주'로 부르신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자신을 '주'로 부르신 것은 그가 이미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신 사실
과도 상통하며, 더욱이 명백히 자신을 드러내신 말기사역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예
수님이 '주'라는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이며, 이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도 적
용되는 당신의 주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주'로 믿는 것이 필수 불가결합니다. 주님의 '주'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입니다. 마가와 누가에서는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
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귀의 순결성이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었고, 예
수님의 쓰심에 합당했습니다. 이와 같이 순결한 신앙을 간직한 성도만이 예수 그리
스도를 모실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부르심과 택함에 합당한 자입니다. 만일 예
수를 고백하면서도 마음에 순수함이 없다면 그것은 나귀만도 못한 신앙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존 귀에 처하되 깨닫지 못하면은 멸망하는 짐승만도 못
하다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
1) 평강의 왕 예수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남쪽의 언덕인데 그 곳에 성전이 선 후 예루살렘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 주민을 가리키는 문학적 표현으로 예수님의 입
성이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서 이루어질 것을 암시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여
러 번 이방의 정 복 군이 위풍당당하게 군 마를 타고 입성하는 것을 맞은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겸손의 왕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
성하신 예수께서 평화의 왕이신 것같이 성도들도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한 예수님과 같이 평 강의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담당해야 합니다.
2) 구약의 예언 성취
마태는 늘 하던 것처럼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 예언의 성취를 말해 줍니다. 이 말
씀은 구약에서 인용된 것으로 도입은 사62:11에서 그 나머지 부분은 슥9:9에서 인용
되었습니다. 다만 슥9:9의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라는 구절이 여기서는
생략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왕의 겸손함을 강조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
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시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약
속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짐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가 필요할 때입니다.
3) 신약의 예언 성취
선지자를 통한 예언이 성취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심판주로, 만
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리라는 신약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행1:11) 구약
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진 것과 같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신앙의 모든 예언이 분명
히 이루어질 것을 믿어 성도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앙의 삶
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을 믿은 자들이 성실한 신앙 생활을 해서 하나
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바와 같이 오늘날도 신약에 예언된 말씀을 신실히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은혜가 넘쳐 날 것입니다. 고로 승리의 입성하신
예수님 어린 나귀를 타신 겸손을 본받고 또 예수님을 태운 어린 나귀 와 같이 자
신을 나추고 묵묵히 주님을 서기는 자 들이 되시길 예수이름 의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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