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비즘의 재정립
피카소는 말년에 고전 회화를 재정리하면서 자기 스타일로 대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재해석해 나간다. 이전의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 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리 속에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마네나 세잔 같은 화가들 스트라빈스키 같은 음악가들 그리고 장 콕도 같은 시인들도 다 그랬다. 옛 거장들의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어느 장르건 마찬가지 고전적 규율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방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는 이 어려운 난제를 풀어 나갔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들라크루아 [알제의 여인] 14점이나 벨라스케스 [메닌느가의 사람들] 44점 그리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27점 등 과거 대가들의 그림을 해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과거와 대화를 나누었고 진정한 피카소 식의 큐비즘의 핵심을 정리해 나갔다.
피카소는 20세기에 가장 유명인이 되었다. 1956년(75세) 독일 뮌헨에서 피카소 회고전을 시작으로 1962년(81세) 미국 뉴욕에서 피카소 80세 기념 회고전, 1964년(83세) 일본 동경에서 피카소 전, 1970년(89세) 스페인 아비뇽 법황궁 고딕식 성당에서 피카소 전, 1971년(90세) 프랑스 파리에서 피카소 탄생 90년 大회고전 등 피카소는 미술사에서 드물게 보는 성공적 예술가가 되었다. 파카소는 말년의 자신의 죽음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그의 자화상에 솔직하게 닮았다. 피카소 이렇게 말했다. "렘브란트 당신은 죽음을 냉소했지만 난 죽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