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내 기
21회 이 종 옥
“이랴!(앞으로) 좌라!(좌로) 이리!(우로)”
온 들판엔 모내기를 하기 위해 소(牛)와 쟁기로 논갈이가 한창이다.
참 오랜 만에 들어보는 소를 부리는 소리는 내가 살던 원색적인 시골 풍경의 소리이다.
이때가 바로 농촌에서는 가장 바쁜 시기이다 지금은 보통 벼 일모작 이지만 그 시절에는 일 년에 벼와 보리를
수확하는 이모작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트렉트나 경운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한 이랑 한 이랑씩 오직 소의 힘에 의존하고 쟁기를 사용하여 젖은 땅을 뒤집어 엎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도 소 역시 힘에는 한계가 오게 된다 쟁기를 끌고 가는 한발 한발 디뎌놓는 소의 걸음걸이는 가다 서다를 반복 한다. 눈을 반쯤 감은채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무의식중에 어금니 가는 소리를 내는가하면, 귀찮게 파리 떼가 괴롭혀도 기나긴 한숨소리만 계속 내고 있을 뿐 피를 빠는 파리를 쫓을 힘조차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야속하게도 이랴! 하고 빨리 가자고 재촉 하신다.
그 당시는 수리시설이 변변치 않아서 천수답이 많았으며 장마가 시작될 때 논일을 하지 못하면 결국 모내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들 장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논일을 시작하게 된다.
또한 집집마다 소를 기를 처지가 못 되어 바쁜 와중이라도 이웃집 논갈이를 해달라고 하면 모두가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인지라 이웃과 이웃이 서로 거절하지 않고 돕고 사는 것이 농촌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풍습 이었다.
그렇게 좋은 미덕의 손길들은 지금은 모두가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는 희미한 기운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며 개인주의로 물들어 있는 현 시대와는 너무나 거리감이 있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덧 들판에는 어둠이 밀려오고 논일을 마친 어른들이 한집 두집 집으로 귀가하기 시작 한다. 아버지께서도 남은 논일은 내일하자 하시면서 소 등에서 멍에를 벗겨내린다. 그런데 멍에를 얹은 자리에 피부가 벗겨져 상처가 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조금만 피부에 상처가나도 병원에 간다고 야단인데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였지만 소가 가엾다는 생각은 분명했기에 그때 그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소는 아픈 것도 잊은 채 힘겹고 그 지긋지긋한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는 온 몸에 붙은 펄(뻘)을 씻어내고 물로 목욕하는 것조차도 거부했다.
어느덧 모판에서 모의 크기가 반 정도 자라게 되면 그때부터 모판에는 잡초(피,동방삭이,달개비)를 뽑아내고 웃 비료를 주어 모내기 하는 날에 맞추어서 모의 자람을 조절 한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께서는 품앗이(두레와 비슷한 서로주고 받는 공동 노동조직)라고 하여 모내기 공동작업을 하기위해 시간 나는 대로 미리 품을 앗아 놓고는 자기집 모내기에 대비한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한글은 잘 모르지만 열사람이 넘는 모꾼(모심는 사람)이름을 다 외우는가하면, 어느 동네 누구 집에 품을 앗았다는 것 까지 아무 기록도 한사람의 오차도 없이 모두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고,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삶의 지혜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부모님들의 생애는 어떠했는가? 이 시대는 왜 우리 부모님들은 불러주지 않았는지 야속할 따름이다.
또한 대다수 우리 어머님들께서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우리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고 인근 시골 마을로 시집와서 변변치 못한 시골 살림살이에 요즈음 소위 말하는 흙수저가 되어 시누이 시동생을 줄줄이 거느리고 단칸방에서 아이들 세네명은 기본이었고 거기다가 조부님을 합하여 삼대가 한집에 같이 사는 집도 허다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들께서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인처럼 장님3년 벙어리3년 귀머거리3년 이라는 굴레를 쓰고 한 사람에 대한 인격체로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모진 시집살이를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 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추운 겨울날 빨래터에서 시린 손을 입김으로 불면서 녹이는가 하면 뒤늦게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판에서 돌아와 식구들의 저녁식사를 챙겨야하는 어머님의 고달픈 하루는 더 물러설 곳이 없는 한계에 와 있는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개념은 어떠한가? 조그마한 다툼으로 이혼이 행해지고 가정은 분해되어 사람에 대한 존엄성이 바닥으로 추락하는가 하면 인간의 고유한 본성마저 망각케 하는 현대사회는 지난 시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렇게 고달픈 모내기의 하루가 내일로 다가오면 아버지께서는 미리 모내기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는다.
먼저 쪄 놓은 모춤을 바지개에 짊어지고 모내기 할 논에 던져 넣는다 하지만 언제나 지개는 나에게는 힘이 드는 대상이었고 바지개를 진채 논에서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온몸에 차거운 펄을 뒤집어쓴 경험이 있다 그래서 지개는 나에게 항상 부담스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이처럼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 이었지만 고향의 품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찾아가도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준다.
또한 우리 부모님들의 삶의 애환이 묻혀있는 시골마을은 여러 부모님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영혼이 살아 숨 쉬듯 항상 우리 고향을 지켜 주리라는 철없는 바램으로 그들의 자리를 영원히 비워두고 싶다.
2018.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