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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회사무실 꾸미기 및 행사비용 | |||
거래일자 | 출금금액 | 거래내용 | 적 요 |
2019/06/01 | 121,000 | NH체크 | 벽면도색 KCC페인트대리점(고려상사) |
2019/06/01 | 11,000 | NH체크 | 벽면도색 KCC페인트대리점(고려상사) |
2019/06/03 | 1,700,000 | 인터넷당행 | 종친회사무실집기구입(토탈중고사랑) |
2019/06/04 | 8,000 | NH체크 | 용담골 (용인~서울 운송기사 식대) |
2019/06/04 | 880,500 | G-하나은행 | 종친회사무실데코타일(010-7124-6631안산데코) |
2019/06/04 | 20,000 | NH체크 | 에이원그래픽(종친화 간판) |
2019/06/05 | 110,000 | NH체크 | 토탈중고사랑샵(간막이 3개구입) |
2019/06/05 | 130,500 | G-우리은행 | 지게차하역비(용인 책상,쇼파) |
2019/06/07 | 24,000 | NH체크 | 원삼농협원일지점하나로마트 |
2019/06/07 | 70,750 | NH체크 | 원삼농협원일지점하나로마트 |
2019/06/07 | 3,700 | NH체크 | 원삼농협원일지점하나로마트 |
2019/06/10 | 16,250 | NH체크 | 알파문구용인양지점(종친회개소소식 암림 복사) |
2019/06/10 | 51,700 | NH체크 |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종친회개소식 알림 |
2019/06/10 | 146,250 | G-국민은행 | 종친회개소식타올구입(50개, 기프트 몰) |
2019/06/10 | 12,000 | NH체크 | 아주좋은과일 |
2019/06/11 | 7,000 | NH체크 | 김밥월드(개소식관련 회장님 식대) |
2019/06/12 | 120,000 | 인터넷당행 | 종친회사무실인터넷(장비설치) |
2019/06/12 | 240,000 | NH체크 | 낙원떡집(개소식 고사, 떡 돼지머리,편육) |
2019/06/15 | 208,700 | NH체크 | 김밥월드(개소식 식대) |
2019/06/16 | 21,000 | NH체크 | 김밥월드(게소식 식대추가) |
2019/06/16 | 213,000 | G-하나은행 | 종친회사무실공사(사무실전등,현관눈 수리) |
총계 | 4,115,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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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식 참여자 후원금
1 황영환 50만
2 황기상 5만
3 황윤승 10만
4 황순오 5만
5 황윤섭 20만
6 황윤화 10만
7 황영순 10만
8 황길상 5만
9 황진구 10만
10 황종엽 5만
11 황필순 10만
12 황직상 10만
13.황영옥 음료수 3박스
14.황왕식 10만원
15.황성근 부부 화분
16. 황문식 화분
17. 황씨 중앙종친회 회환
18. 중앙종친회 황양규 화한
19. 정익공파 황직상 화환
20. 대종회장 황대식 화환
21. 황명상 화환
22. 황윤진 부인 김순자 노력봉사
사무실 도색(인건비 40만원 절약)
23 황윤진 10만
24 황정보 10만
25 황정식 10만
후원현금 총계 현금190만원
190만원
종친회 사무실 하나 꾸미고 개소식 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4,315,350원이 소요되었습니다.
현재 만공회비 2,378,096원의 잔액이 있습니다.
10월7일 단구공향사 참석
동영상제작
10월17일 봉례공 향사
향사에 축도 준비 하지 않았다.
축을 읽는 황원상은 주섬주섬 읽어 내리는데 책을 보고 읽는 것 같았다.
초헌관이 황윤섭 대부인데ㅡ 이름을 묻지 않고, 황원상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감소고우 했다.
향사비용 10만원을 찬조 했다.
왜 이러는가?
10월27일 6제 내복 묘제
10우러26일에 내려가서 병산에 있는 참의공파
병산에 있는 윤진대부님 사촌 형님네 황토방에서
잠을 잤다.
편백나무 향기가 몹시 좋았고, 집에 우풍도 없었다.
육제내복에 참석했다.
10만원을 시제 제수 비용으로 찬조 했다.
황순오,황윤섭, 황윤진,황정식, 황문식,황정보 수도권에서 6명이
참석했고,
참석자는 황연조,황윤명, 황대식, 황석암.황우상,황석암
육재내복 묘제는
이산면 운문리 산45-1 8세조 모 안동권씨 할머니 묘제부터 시작하였다.
황연조 대부의 주관으로 시작된 육재내복은 축문도 읽지 않고
시작 하였는데,
총무 황원상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남의 탓으로 돌린다.
엿장수 마음데로 가위소리를 내는 행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7세조 중알장 묘제를 올렸다.
물야면 두문리 산104
봉화군 적덕리리 산 24
8세조 묘제를 올렸다.
물야면 가평리 산 12
8세 무송유씨 묘제를 올렸다.
부석면 소천리 산98-1
9세조 봉례공 묘제를 올렸다.
부석면 보계리 산 40
9세제 곡성임시 할머니 묘제를 올렸다.
황연조 대부는 역시 엿장수 마음대로 가위질을 한다.
종헌이 끝나고 첨잔을 하는 문제에 있어서
6재내복의 시작 묘제인 8세 안동권씨 할머니이후는
첨잔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집해서
그렇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사후에 두고두고 욕을 먹을 행위를 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10월30일 황간시제 참석
생원공파 문상, 문식, 정보, 도정공파 덕규, 참의공파 윤진회장님이 참여 했다.
봄철에 새 단장을 했고 잔디가 잘 자랐다.
멧돼지 올라오지 못하게 와이어를 쳤으나 멧돼지가 봉분 위로 올라와서 파헤치고 똥을 싸고 갔다.
11월 2일~ 11월3일
11월2일은 찬성공, 용헌공,선무랑 묘제를 지냈다.
11월3일은 일요일인데 정익공, 도정공, 조대공 묘제를 지냈다.
11월 18일
송간공 시;제를 서강공파 단독으로 지내는데 수도권종친회장님만 참석했다.
2020년 3월18일
문중에서 국회의원후보가 나왔다. ㄷ도정공파 28세 황헌이다.
정치는 변수가 많아서 예비후보 선거가 치뤄지게 되었다.
예비후보에서 당선되기 위해 문중에서 움직였다.
예비후보 경선에서 실패했다.
문중에서 인물이 나는가 했더니 그러하지 못했다.
직상아재가 정암정사 비지정문화재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았다.
3얼19일
황참의교의 위치를 확인 하러 다녔다.
지도에서 황참의교 자리를 찿았다.
서울시청 문화재 담당자 박나운에게 황참의교 자리에 표석을 세워 달라고 신청 했다.
3월21일
정암정사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 했다.
영주시청에서 64,000,000원을 지원하고
문중의 자부담 2,720만원을 모금하여야 하는데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종친들에게 협조를 구했다ㅣ.
4월4일
도정공묘 가토작업을 했다.
송간공 묘역으로 올라가는 곳에 돌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기 쉽게 했다.
수백년을 이곳을 후손들이 이용 할 것이다.
5월30일
정암정사 보수 공사를 위해 포크레인으로 가도로를 만들었다.
직상아재 혼자서 도맡이 일을 한다.
6월 8일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상량문 내용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강병수 박사가 도움을 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 I>
中山齋 移建 上梁文
齋宇傾而汰礫方侵 不宜修補仍舊. 地武下而菴址 尙厚肆于前 見結構維新. 豈敢求多于前 蓋亦圖久於後.
惟我先祖 松澗府君, 早受陶山正學 晩托金華隱倫. 試一城之牛刀 菀有絃歌化俗, 助邊軍之犒餉 恨不荷戈遂忱. 漢水歸帆發老矣 秋風之歎, 雲松高節 留與爾終歲之期.
惟玆二水三峰 正是中山一局. 數架講討之室 三百年草樹猶芳, 一家藏修之規 十餘世苗裔不替.
扁分明於揚墨 韓石峯之筆格猶騰, 壁玲瓏於懸詩 趙月川之吟賞可敬.
嗚呼! 陵谷易變 將有不虞之憂, 況又榱桷已頹 難售姑息之策. 敢效肯構之策 爰契移築之邱. 敢效肯構之責 爰契移築之邱. 證菴名之尙傳 靑山欲語, 撫礎痕之不泯 碧蘚長封.
往塵已空依俙 鄭部將之廟址, 別業雖古 昭著李鵝溪之碣文. 實要耿因圯 而乃遷 終見雷潛地而必復. 是豈偶也? 倘先靈之誘衷 爾惟勗哉, 喜少輩之執事.
慮悠遠而重刱 猶器置安, 回叅差而旣同 如綱畢擧. 誠則有物 奚憂事巨而力綿? 成之在人 勿謂門凋而運剝.
仰占方中之象 適値淸和之辰. 索役丁於諸孫 無非耕桑之廬, 招匠手於素熟能 兼凡斲之工. 取其材用 諸山之林養寔美. 整厥方面 舊砌之裁制可推.
始也勤斯而鳩集 倐然奐焉而翬革. 午馬南盖 拱衆而貴臨. 右室左堂 制簡而勢豁. 理園蕪而開逕 陶令之松菊猶存. 連巷曲而爲隣 韋氏之花樹可樂.
冬詩夏禮牖 後生之蒙迷, 朝往暮來送 諸老之餘景. 聚於斯而循序 惟順惟恭, 屬玆許而念先 是瞻是仰. 迨楣梁之擧 陳規祝之辭.
兒郞偉! 抛梁東 峯頭朝日射窓紅
春光寂寂林菲合 菴裡書香昔此中
兒郞偉! 抛梁西 隔溪煙雨濕苔堦
桑隣花巷聞人語 聚鼓堂前老稚携
兒郞偉! 抛梁南 三峯秀色帶晴嵐
滿前雲物依如昨 八詠篇中感淚含
兒郞偉! 抛梁北 戀闕當年拜斗極
海內腥塵更至今 挽河一洗愧無力
兒郞偉! 抛梁上 滿天星宿爛垂衆
周流元氣互相回 瑞色祥光山際朗
兒朗偉! 抛梁下 源頭碧澗無窮㵼
繼玆重葺那無日 留待來來與後者
伏願上梁之後,
門祚有再造之符
村容啓重回之運.
寓羹墻之孺慕 宗黨有均是之心
藏石室之遺文 子孫勤稽古之業.
完美旣苟 不必崇高乃宜
成毁無常 只關嗣守益謹.
十一代孫 在鎭 撰, 十二代孫 規欽 書
漢陽八壬申 五十二年 癸亥 四月 初二日 庚寅 未時 開基
同月 十二日 庚子 巳時 立柱
同月 十三日 辛丑 寅時 上梁
亥坐巳向
都監 十一代孫 基憲
十一代孫 在燾
<번역문 I>
중산재 이건 상량문
재사(齋舍)가 기울고 낡아 부스러져 바야흐로 무너지게 되어서 옛 것과 같이 보수(補修)하지 않을 수가 없었네. 무하(武下)의 땅 새 재실터전은 훨씬 도탑고 넓으니 그 구조가 아주 새롭게 나타났도다. 어찌 감히 이전보다야 더 많이 구하겠는가? 대개 후대에도 역시 오래 이어가기를 의도하는 바이네.
생각건대 우리 선조 송간(松澗) 부군은 일찍이 퇴계(退溪)의 정통 학문을 수학하시고, 만년(晩年)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隱居)하는 도리에 의탁하시었네. 큰 인물로 고을에서는 백성을 교화하셨으니 자유(子游)가 음악으로 순화했던 것과 같았으며, 일선의 군인들을 도와 군량도 제공하셨으나 무기를 들고 끝까지 나서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네. 한강에 배를 타고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노년이라 가을바람을 한탄하셨고, 자연 속에서 높은 절개를 지키며 이와 더불어 말년의 때를 머무셨네.
오직 여기가 안동(安東)과 단양[三峰]에서 똑바로 그 한가운데인 중산(中山)의 한 구역이라네. 시렁 몇 개를 걸어서 만든 강의실은 여전히 숲속에서 3백년 동안 향기가 나니 한 집안에 보전되어 온 규례가 10여 세대의 먼 후손에 걸쳐서도 폐하지 않았네. 편액은 분명 한석봉(韓石峯) 품격의 글씨가 높이 날아오른 듯하고, 벽에는 영롱하게 걸린 조목(趙穆)의 읊은 시를 감상하니 가히 공경스러웠네.
아! 언덕과 골짜기는 쉬 변하니 장차 염려할 근심이 없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또 서까래가 퇴락하게 되면 안일한 유화정책으로는 유지할 수가 없다네. 감히 선대의 뜻을 이어받는 책임을 본받으려고 이에 재실을 옮겨짓도록 터전을 계약했네. 재실 이름의 증명은 일찍이 전해왔으니 청산도 말하고자 하네, 없어지지 아니한 기초의 흔적을 어루만져보니 푸른 이끼가 오래 덮여져 내려왔네.
옛날의 티끌은 이미 사라졌으나 정 부장(鄭 部將)의 사당 터는 어렴풋하고, 특별한 업적이 비록 오래되었을지라도 이 아계(李 鵝溪)의 비문이 분명하도다. 실로 이를 빛나게 하려고 무너진 터를 옮기게 되었으니, 마침내 땅속에 묻혔던 터가 필히 회복되어 나타났네. 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혹 선대의 영령(英靈)이 충심으로 권하신 바이리라, “너희는 오직 힘쓸 찌어다! 기뻐하라, 젊은 집사들이여.”
멀리 염려하며 기물(器物)을 안치하듯이 중건(重建)을 시작하였으니 들쭉날쭉 차이를 회복함은 본래 한가지였으므로 벼리처럼 모두 들어 올려야 하네. 지성(至誠)이면 물질도 있으리니 어찌 일이 크고 힘은 적다고 걱정하겠는가? 일의 성취는 사람에게 달렸으니 문중이 쇠락하고 운명이 박하다고 말하지는 말지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중에서 방위의 자리를 우러러 정하고, 화창한 좋은 봄날을 적절히 잡았네. 여러 자손들 중에서 일꾼을 찾는 데는 농가만한 집이 없었으며, 본디 숙련된 목수를 겸하여 무릇 깎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초청했네. 재목의 소용을 취함에는 여러 산 숲에서 아름답게 자란 것들로 하였고. 그 방향을 정돈하고 묵은 섬돌은 다듬어 마름질하니 쓸 만하였네.
시작도 이렇게 힘쓰고 재정도 모아서 재빨리 진척되었으니 크게 빛이 나게 되었네. 소와 말이 남쪽을 뒤덮고 사람들이 모이며 귀한 손님도 왕림하였네. 좌우로 방과 마루가 간결하고 형세가 활짝 트였도다. 정원을 다듬어 무성케 하고 작은 길을 열어 도연명(陶淵明)의 집처럼 소나무와 국화가 있으며, 굽이쳐 마을이 잇닿아 이웃이 되니 위씨(韋氏) 종친들처럼 모여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네.
겨울엔 시를 여름엔 예(禮)로 깨우치니 재실로 가는 후손들이 아득하며, 아침저녁 오고가고 전송하니 온 노인들의 마음속 여운의 아름다운 광경이로다. 여기에 모여 서열 따라 효순(孝順)하고 공경하세, 부탁하노니 이를 받들어 선조를 생각하며 우러르고 앙모할지어다. 이제 들보를 들어 올릴 때에 규례에 따른 축하의 말씀을 펼쳐보네.
아랑위! 동쪽으로 들보를 던지니
산꼭대기의 아침 해가 창문에 붉게 비추네.
봄빛은 고요히 울창한 숲과 어우르고
재실 안의 책 향기 예처럼 이 속에 넘치네.
아랑위! 서쪽으로 던지니
내 건너 안개비 섬돌 계단 적시네.
고향 꽃길에 사람소리 들리니
북치는 집 앞에 노인 아이들 손잡고 모이네.
아랑위! 남쪽으로 던지니
삼봉(三峰)의 빼난 경치는 아지랑이로 둘렀네.
영롱한 구름 가득히 어제와 같으니
팔경시편 속에는 감동의 눈물을 머금었네.
아랑위! 북쪽으로 던지니
그 당시 궁궐을 그리며 임금께 절했네.
나라의 오욕(汚辱)이 지금에 또 이르렀는데
큰물 끌어다 씻어낼 힘이 없어 부끄럽네.
아랑위! 위쪽으로 던지니
하늘 가득 뭇별이 찬란히 드리우네.
우주의 넘친 원기 서로 돌아오니
상서로운 빛과 경치 산 사이에 밝도다.
아랑위! 아래쪽에 던지니
원천(源泉)의 푸른 시냇물 끝없이 흘러내리네.
이를 이어 수리할 날 어찌 또 없으랴
계속 후대에 나중일로 남겨두네.
상량한 후에 엎드려 바라오니, 집안의 가운(家運)이 다시 이루어지는 증표가 되고, 마을에도 거듭 행운이 열려 돌아오기를 바라네.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듯이 옛 선조의 자취가 머무는 곳이니 그 사모하는 정을 종친들은 다 골고루 그 마음에 지녀야 하며, 견고하게 간직해온 선대의 남긴 글을 자손들은 그 옛 유업으로 계속 힘써서 상고할지어다.
충분히 아름답게 되었으니 구태여 숭고하다고할 것은 없으나 이루어내고 허물어짐은 덧없는 것이니 다만 이것을 이어서 지키는 일에 더욱 주의할지어다.
11대손 재진(在鎭)이 짓고,
12대손 규흠(規欽)이 쓰다
한양천도 8임신 52년 계해 1923년
4월 초2일 경인일(庚寅日) 미시(未時)에 기초를 파고,
4월 12일 경자일 사시(巳時)에 기둥을 세우고,
4월 13일 신축일 인시(寅時)에 들보를 올리다.
해좌사향
총감독 11대손 기헌(基憲)
11대손 재도(在燾)
<원문 II>
中山齋 移建 上梁文
地固有秘靈 杖履之懿躅依舊, 天若爲陰相 棟宇之肯構載新. 輪輿豈不美哉, 繼述無以加也? 恭惟贈吏判 松澗先生, 成材於南山喬木之蔭, 講道於東方考亭之門.
筆法勁遒過顔筋 而挹旭草, 文章簡古韻衡泌 而楷楚騷. 儀漸芹庠士咸 穪三代人物, 淹滯臺省 誰知爲兩朝淵耆. 斂而施於偏陬 劇之選-還可惜, 竭其誠於輸委 答勳之賞-非所榮. 終迺托跡 金華之山, 不過容膝 圖書之屋.
寒松臥壑 長帶十里風聲, 碧草滿庭 空留一般意思. 三百年已陳之迹 無恠榱桷杇傷, 八九分不虞之灾 難支沙汰侵囓. 嗣守寧或怠任 聽造物之威權, 修繕亦多方 幾費賢仍之營度.
末如何今日 移築之計, 東則有當年舒嘯之皐. 楊侯指某樹之邱 鄕語傳授, 公西誌易簀之事 庵址分明. 咫尺其間 勢便宜於取舍, 剛燥厥土 圖久遠於美完. 材貲之需用紆餘 籌畫取諸宮舍, 砌礎之典刑呈露 圭景視以弁髦.
於是而斧鉅畢趍, 如彼其簷牙高啄. 新楣舊架遵用 尙儉之規模, 燠室凉堂 假像燕居之位次. 右以翼繡板藏閣世世焉 文獻足徵, 傍仍置花竹小園 在在乎羹墻寓慕.
羣石隨水不暫離 搝仙之家, 古杏臨壇 何日非撫琴之地. 風月爲之倍爽, 溪山爲之競奇. 杳靄森羅 收拾八景詩料, 傴僂呼應粧飾 四時村容.
毁有限而成有期 奚問伸屈之氣數, 補其虧而剪其翳 尤喜敞豁之眺望. 東南行過之人 尙能知咨嗟動色, 鄕䣊衿紳之列 孰不欲遡洄遺風. 恭䟽短引之篇, 庸贊脩樑之頌.
兒郞偉 抛樑東, 飛鳳千尋護竁宮.
想像精靈來又往, 霞衫珠佩響淸風.
兒郞偉 抛樑南, 大野平鋪炯水涵.
菊酒茱棘携賞地, 不隨塵海變桑三.
兒郞偉 抛樑西, 竹嶺崎嶇 行路迷.
衝熱浩歸 何日事, 木蓮花下 歇驪蹄.
兒郞偉 抛樑北, 石室遺墟 懸澗側.
松下有苓 丹未成, 千年有待 仙人識.
兒郞偉 抛樑上, 萬里瑤空 臨翠嶂.
懷糈一招 去不回, 傅箕劉乙 應相傍.
兒郞偉 抛樑下, 澗水源源 流日夜.
種德餘休 同此長, 名家何讓 晉王謝.
伏願上梁之後, 林藏虎豹, 壑遁魅魑. 噲噲軒楹奠磐 泰之鞏固, 肅肅原濕遍 桃李之芳響. 絃歌於斯講學於斯 振作一家風敎, 燕賓之所聚族之所 隔斷八垓腥塵. 旣底法於追先 甄家之亭 所以作也, 永有辭於來後 王氏之福 盖未艾夫!
後學 全州 柳東秀 撰
<번역문 II>
중산재 이건 상량문
땅은 진실로 신령함이 있으며 예와 같이 거기 접촉했던 사람의 아름다운 자취가 남아있으니, 양(陽)의 하늘이 만약 음(陰)의 모양이 된다면 조상의 유업(遺業)을 잇는 건물에 새롭게 나타난다네. 기술자가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며, 그 아무 것도 없이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보태나갈 수가 있겠는가? 증직 이조판서(吏曹判書)이신 송간(松澗) 선생을 공손히 생각하건대, 남산 큰 나무 그늘의 재목으로 재실을 짓고, 조선의 고정(考亭)으로서 성리학(性理學)을 가르치셨네.
글씨 쓰는 법도가 아주 굳세었으니 안진경(顔眞卿)과 유공권(柳公權)을 능가하여 아침햇살의 풀잎처럼 퍼내었으며, 문장은 간결하고 옛 운은 균형 있게 흘러나왔으니 초사(楚辭)를 본받았네. 예의가 성장해 성균관에선 생원들이 다 걸출한 인물로 일컬었고, 오래 대관(臺官) 지위에 머물러서 두 임금 동안 연로하실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한쪽 구석에서 정숙하게 선을 베풀면서도 번폐한 일을 선택하여 훌륭히 처리하셨으니 - 더욱 애석하며, 맡겨진 일은 상훈(賞勳)의 보답은 차치하고 정성을 다했으니 영광을 위함이 아니었네. 종내는 금화(金華)의 산에 자취를 감추시고, 무릎을 들일 정도에 불과한 작은 집에 도서(圖書)로 채우셨네.
한겨울 소나무는 깊은 계곡에서 십리의 바람소리 오래 두르고, 뜰에 가득한 풀들도 같은 뜻이라네. 이미 삼백년 옛 자취라 서까래가 상한 것은 괴이하지 않으나, 열에 여덟아홉은 갑작스런 재난이 아니니 사태 나고 침식되어 지탱키 어려웠네. 후사(後嗣)가 혹 책임을 태만했을지언정 자연의 위엄은 청취하였으니, 수선 역시 여러 가지나 그 비용은 후손이 헤아려 경영해야하네.
마지막엔 오늘 어떻게 옮겨 짓는가의 계책이니, 동쪽엔 그때 공이 휘파람 불던 언덕이 있네. 양거원(楊巨源)이 고향의 나무와 그 언덕을 가리켰으니 고향 말로 전해왔는데, 공의 서지(西誌)에 임종(臨終)의 일이 있으니 재실터전이 분명하네. 그 사이가 지척(咫尺)이니 형편에 편리한 대로 취사선택(取捨選擇)하고, 그 땅을 잘 말려서 오래 아름답게 보전되기를 의도했네. 자재와 재물의 꼭 필요한 것은 여유가 있게 여러 집에서 헤아려 거두고, 섬돌과 기초석이 드러났으니 그 규모측정은 소용없어 보이네.
이에 톱과 도끼의 일 끝마치니, 저렇게 그 처마가 높이 튀어나왔네. 새 도리와 옛 시렁을 그대로 사용하니 오히려 규모는 검소한데, 따뜻한 방과 시원한 마루에 제비집 차례로 자리할 상상을 하네. 오른쪽에 나는 듯 예쁜 현판 누각에 대대로 간직해왔으리니 문헌이 족히 증명하네. 옆으로는 꽃과 대를 심어 작은 정원 만드니 곳곳에서 선조의 모습을 앙모하네.
물을 따른 온갖 돌들이 잠시도 떠나지 않으니 도가(道家)를 떠올리고, 옛 은행나무 강단 아래는 어느 날인들 거문고 어루만지는 땅이 아니 되리오. 자연의 경치는 갑절이나 상쾌하니, 산천이 기이함을 다투고 있네. 삼라만상에 아지랑이 아득하니 팔경(八景) 시의 소재를 거두고, 곱게 차린 경치를 내려다보며 응답하니 사철의 아름다운 마을 모습이로다.
허물어짐은 한계가 있음이고 이루는 것은 기약함이 있음이니 어찌 펴고 움츠리는 기운의 운세를 질문하리요? 이지러진 것은 수리하고 넘침은 잘라내니, 활짝 트인 조망이 더더욱 유쾌하도다. 이 동남쪽을 지나가는 사람은 이제껏 능히 안타까이 탄식하며 얼굴색이 변하며 놀랐고, 마을사람들이며 선비들과 벼슬아치의 반열에선 그 누가 그 유풍을 거슬러 올라가보려고 하지 아니하였던가. 공손히 소박한 시편을 끌어내니, 상량의 노래로 도와보네.
어기여차! 동쪽으로 던지니, 천길 높이나는 봉황 선영(先塋)을 보호하네.
영령이 오고 가심을 상상하니, 노을빛 적삼에 진주를 차고 청풍을 울리시네.
어기여차! 남쪽으로 던지니, 넓게 펼친 큰 들에 잠긴 물길이 빛나네.
국화주에 멧대추 가지고 즐기는 땅, 덧없이 상전벽해 세 번이나 변했네.
어기여차! 서쪽으로 던지니, 죽령은 험난하여 행로가 아득하네.
열의를 쏟으며 호방한 귀향이 언제 적 일이던가, 목련꽃 아래 말발굽을 쉬었네.
어기여차! 북쪽으로 던지니, 돌방의 유적 터는 시냇가에 남아있네.
솔 밑의 복령 있으나 불사약 이루지 못하고, 천년을 기다리면 선인을 알리라.
어기여차! 위쪽으로 던지니, 만리의 푸른 하늘에 신선세계 이르네.
양식을 안고 불러도 가서는 아니 왔으니, 스승 기자(箕子)와 유을(劉乙)이 짝일세.
어기여차! 아래쪽에 던지니, 시냇물은 근원에서 주야로 흘러내리네.
음덕을 심어 기르면 이같이 자라니, 명문가는 어찌 진나라 왕 씨와 사 씨에 뒤지리오!
엎드려 상량 뒤에 바라나니, 숲에는 호랑이 표범이 숨고, 골에는 도깨비 숨었네. 마루와 기둥의 터전 환하고 시원해 크고도 공고하니, 엄숙하고 촉촉한 언덕 도리(桃李) 향기 가득하기 바라네. 여기 현악의 노래와 이곳 학문의 가르침이 집안의 풍교가 되고, 제비 손님의 처소와 종족의 이 장소는 세상 더러운 먼지를 멀리하리라. 선조를 따르는 법도의 뿌리가 이미 있으니 견씨(甄氏) 집안의 정자처럼 되려고 이를 지었으니, 후대에 새기는 말씀은 대개 왕 씨 네와 같은 축복이 끊이지 아니 하리로다!
후학 전주 류동수 지음
수백년을 이곳을 후손들이
6 월30일
내가 상량문의 초안을 작성했고, 윤진대부님과, 헌 아우, 중석 조카님이 손을 봐주었다.
正菴 重修 上梁文
西紀 1575年 松澗公께서 서재골에 中山齋를 지으셨다. 송간공이 휴가차
고향에 오시면 留宿하시던 곳은 正菴으로 고모부인 鄭子荃이 터를 닦으신 곳이다.
公은 西紀 1588年 “나는 늙었도다.”라고 하시며 벼슬을 버리고 히여골로 낙향하시어 正菴과 中山齋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시던 중 임진년 왜란이 발발하자 전선에 군량미를 보내시면서 나라 지키기에 헌신하시었다.
1598年 公께서는 正菴에 자손들을 불러 “아직 왜놈이 물러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신 뒤 눈을 감으셨다.
오랜 세월 風霜에 시달린 正菴은 주춧돌만 남았다. 中山齋 또한 세월과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서기 1923年 陰曆 4月 11代孫 基憲, 在燾 先賢께서 앞장서서 무너지고 있는 中山齋를 이끼 낀 주춧돌만 남은 正菴의 옛 터로 移建하면서 正菴精舍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리기 위해 正菴 이라 현판을 걸었다.
移建 후 97年의 星霜에 正菴의 기와는 무너지고 서까래는 썩었다.
후손들이 이를 안타까워 하여 2019년 正菴을 壽樂堂, 貞翼公 神道碑와 함께 경상북도의 문화재로 신청했으나 正菴은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2020年 14代孫 淔相은 영주시의 비지정 문화재로 승인 받아 일부 지원을 받고 또 宗人들이 힘을 모아 중수공사를 시작하였다.
正菴을 해체해보니 아, 놀랍게도 대들보는 445年 前 中山齋를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게 아닌가.
오늘 上樑 후에 후손들이 엎드려 송간공을 우러르며 비오나니,
이 役事로 인해 집안의 기운이 다시 크게 용솟음치는 기틀과 증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西紀 2020年 陽曆 6月3日 丁丑 巳時 着工
西紀 2020年 陽曆 7月3日 丁未 午時 上樑
亥坐巳向
主管 14代孫 淔相
撰 15代孫 炳烈(鳳植의 子)
이 상량문을 한지 복사를 했다.
4만원, 그리고 정암정사에서 발견된 상량문 2개도 한지복사했다.
한지 전지 10만원 작은것 7만원
21만원을 들여서 복사해서 우체국 택배로 직상아재에게 보냈다.
7월1일
건뭃이 팔려서 깁밥가게도 옮겨야 하고,
종친회 사무실도 이전 해야 한다ㅓ.
그래서 역삼동 770-10번지를 얻었다. 보증금 1,000만원
월세 90만원, 관리비 20만원
7월11일 이전을 할 계획이다.
이상비용이 100만원든다. 또 간막이 공사에도 몇십만이
들어간다.
2019년 수도권종친회를 구미는데 411만원 들었다.
이제 또 백 몇십만원은 들것이다.
수도권종친회 사무실이 잇다믄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많이 이용해야 할 것이다.
7월11일
수도권종친회 사무실 이전
이전비용 용달화물 이사비용 100만원
역삼동 770-10번지 부동산 거간비 50만원
간막이 공사 165만원
총계 315만원이 소요 되었다.
디지탈 액자 제작
육종공, 학사공, 창원황시 액자 3개 제작 198,000원이
들었다.
수도권종친회 회비에서 1,1980,000원을 인출하였고,
영환대부님께서 100만원을 후원하시겠다고 했다.
족친들의 도움이 이/ㅅ으면
2020년 7월 25일 수도권종친회 개소식
황순오 50,000
황영환 1,000,000
황영옥
황윤섭 50,000
황윤진
황문상
황직상
황문식
황 정식 50,000
황진구
황종엽
황정보
황 헌
황명상 100,000
황덕규 200,000
600,000원
계 2,050,000원 후원금 입금
수도권종친회 사무실 이전관련 비용이
부동산 거간비 500,000원
이사비용 1,000,000원
공사비용 1,600,000원
영정액자 198,500원
고사비용 95,000원
수퍼 93,740원
식대 99,000원
총계 3,586,240원이 들었습니다.
이중 2,486,240원은 종친회비로 지출하고
나머지 1,100,000원은 황정보가 부담했습니다.
개소식때 후원금은 2,050,000원이 지원되었습니다.
정암정사 보수
지 파 | 항렬(世) | 성 명 | 금 액(원) | 순번 |
정익공파
12,400,000 | 27 | 황직상 | 5,000,000 | 1 |
28 | 황성욱 | 3,000,000 | 2 | |
27 | 황영식 | 1,000,000 | 3 | |
28 | 황사덕 | 1,000,000 | 4 | |
27 | 황상륭 | 200,000 | 5 | |
27 | 황상원 | 300,000 | 6 | |
| 대하리문중 | 500,000 | 7 | |
28 | 황진구 | 200,000 | 8 | |
27 | 황상국 | 500,000 | 9 | |
27 | 황은상 | 200,000 | 10 | |
| 울산문중 | 500,000 | 11 | |
|
|
|
| |
도정공파
11,100,000 | 26 | 황영환 | 8,000,000 | 12 |
종손 | 황덕규 | 1,000,000 | 13 | |
28 | 황 헌 | 500,000 | 14 | |
28 | 황진회 | 300,000 | 15 | |
27 | 황후진 | 200,000 | 16 | |
28 | 황우섭 | 300,000 | 17 | |
28 | 황진국 | 500,000 | 18 | |
26 | 황윤섭 | 300,000 | 19 | |
|
|
|
| |
생원공파
5,700,000 |
| 충주문중 | 1,000,000 | 20 |
28 | 황병열 | 1,000,000 | 21 | |
28 | 황병훈 | 200,000 | 22 | |
27 | 황금상 | 500,000 | 23 | |
27 | 황문상 | 300,000 | 24 | |
29 | 황용기 | 200,000 | 25 | |
27 | 황만상 | 1,000,000 | 26 | |
29 | 황영기 | 500,000 | 27 | |
29 | 황만기 | 500,000 | 28 | |
29 | 황윤재 | 300,000 | 29 | |
29 | 황순기 | 200,000 | 30 | |
|
|
|
| |
서강공파 800,000 | 28 | 황종엽 | 300,000 | 31 |
29 | 황중기 | 300,000 | 32 | |
29 | 황중석 | 200,000 | 33 | |
|
|
|
| |
부훤당파 1,500,000 | 26 | 황영록 | 500,000 | 34 |
27 | 황우상 | 500,000 | 35 | |
27 | 황명상 | 500,000 | 36 | |
|
|
|
| |
호판공파 | 26 | 황경식 | 1,000,000 | 37 |
대종파 | 27 | 황문식 | 1,000,000 | 38 |
첨지공파 | 26 | 황윤현 | 500,000 | 39 |
참의공파 | 26 | 황윤진 | 300,000 | 40 |
종사랑파 | 27 | 황창원 | 300,000 | 41 |
수도권종친회 |
|
| 500,000 | 42 |
백리친목회 |
|
| 1,000,000 | 43 |
|
|
| 36,100,000 |
|
正菴 重修 上梁文
書記 1527年 송간공께서 서재골에 中山齋를 지으셨다. 송간공이 휴가차 고향에 오시면 留宿하시던 곳은 正菴으로 고모부인 鄭子荃이 터를 닦으신 곳이다.
공은 西紀 1588年 “나는 늙었도다.”라고 하시며 벼슬을 버리고 히여골로 낙향하시어 正菴과 中山齋에서 여생을 보내셨다. 낙향 기간 발발한 왜란 중에는 송간공께서 직접 의병을 모으시고 군자금을 지원하시며 나라 지키기에 헌신하시었다. 1598년 송간공께서는 正菴에 자손들을 불러 “아직 왜놈이 물러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으신 뒤 눈을 감으셨다.
오랜 세월 風霜에 시달린 正菴은 주춧돌만 남았다. 中山齋 또한 세월과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서기 1923年 陰曆 4月 11代孫 基憲, 在燾 先賢께서 앞장서서 무너지고 있는 中山齋를 이끼 낀 주춧돌만 남은 正菴의 옛 터로 移建하면서 正菴精舍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리기 위해 正菴 이라 현판을 걸었다.
이건 후 97년의 星霜에 正菴의 기와는 무너지고 서까래는 썩었다. 2020년 안타까움에 후손들이 正菴을 경상북도의 문화재로 신청했으나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宗人들이 힘을 모아 영주시의 비지정문화재로 승인 받아서 중수공사를 시작하여 正菴을 해체해보니 아! 놀랍게도 대들보는 493年 前 中山齋를 지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오늘 상량 후에 후손들이 엎드려 송간공을 우르러며 비오나니, 이 役事로 인해 집안의 기운이 다시 크게 용솟음치는 기틀과 증표가 되어주소서.
西紀 2020年 陽曆 6月3日 丁丑 巳時 着工
西紀 2020年 陽曆 7月3日 丁未 午時 上樑
亥坐巳向
主管 14代孫 淔相
撰 15代孫 炳烈(鳳植의 子)
이와같이 정암정사를 보수하고 있다.
2020년 8월 17일
대종회정기총회가 열려서
황대식 회장이 퇴임하고 황우상 회장이 선임되었다.
2020년 8월 17일 대종회 정기 총회가 있었습니다.
황대식회장님이 퇴임하사고 황우상 회장님이 취임하였습니다.
대종회는 우리문중이 미래지향적인 발전방향을
제시하면서 추진하며 종인간의 친목과 화합을 통하여 선조님들이 물려주신 문중 토지. 건물을 잘 관리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의무를 가지고 있고,
대외적으로 황씨 중앙종친회에서 우리문중의 위상을 높이는데 주력할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추후 이런 방향으로 대종회가 운영될 것입니다.
황우상회장 체제의 대종회 임원이 고문 5명,
부회장 5명, 총무, 감사2명
이사 10장이 선임되었습니다.
고문: 황대섭, 황연조, 황충식, 황창식, 황대식,
회장: 부훤당파 27세 황우상
부회장:
26세 우윤공파 황윤명,
26세 남애공파 황윤승,
27세 대종파 황문식,
29세 서강공파 황중배,
29세 생원공파 황영기
총무
정익공파 27세 황직상
감사:
참의공파 27세 황화식
성균관생원공파 28세 황병열
이사:
25세 판관공파 황봉흠
26세 대종파 황윤수
27세 생원공파 황문상
27세 정익공파 황상국
27세 부훤당파 황명상
28세 도정공파 황 현
28세 참의공파 황완섭
29세 정익공파 황덕규
29세 서강공파 황중석
29세 생원공파 황만기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수도권종친회는 대종회의 산하 지역모임으로서
황윤진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들은
대종회를 후원합니다.
황연조 대부님을 추종 하는 종친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을 바라는 종친간의 치열한 세력싸움이 있었다.
결국 황윤진 수도권종친회장님의 탁월한 능력으로
황우상회장님이 무난히 회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2020년 9월1일 정암정사 후원금.
문화유산과
문화재 위원회 9월 4일 가결 권경숙
2021년 7월 4일
수도권종친회 정기총회
2021년 1월20일 임기만료되는 회장, 사무총장, 부회장, 감사의
재 선출에 대한 정기총회
코로나19로 인하여 정기총회 기일이 미뤄진
7월4월 12:0- 14:00
서울강남구 역삼동 770-10번지 수도권 종친회 사무실
참석자
황윤진, 황윤섭, 황영환, 황윤대,황영태, 황문상, 황문식,
황정식,황영선,황진구, 황계로,황종엽, 황병훈,황병열
14명 참석
의결사항
회장 황윤진, 부회장 황문식, 사무총장 황병열, 고문 황영태태
유임 2024년 1월 20일까지
풍수암 보수비용 찬조
황영환 100만원, 황윤섭원 100만원, 황문상 50만원, 황문식 50만원, 황진구 30만원 총 330만원 후원원
7월 17일 ~ 18일 청도단양, 송간공유적지지 여행행 보고
2022년 3월 27일
성균관 생원공 할아버지 가토 사업
황정보가 발의해서
휘 로자 후손 황병열, 황윤대10만원, 황문상20만원, 황지상10만원, 황호상10만원
휘 찬자 후손 황윤옥, 황윤철, 황원석 50만원
취 염자 후손
황영기 20만원 황창기 10만원, 황용기 10만원, 황순기 10만원
을 내서 공사하다.
공사비용 잔디 30만원, 포크레인 55만원, 인부 65만원
삭댜 10만원 간식비 5만원 계 165만원
비석 35만원
고유제 재물 76,000원
운행비용 10만원 식대 15만원 황병열, 황윤진, 황윤대,
황영기, 황용기, 황순기
총비용 246만원
총 비용
2022년 4월 8,9,10일 송간공 가토사업을 하다
송간공 가토사업 수입과 지출사항 보고
지출현황
둘레석 석재값 4,500,000원(통장입금)
설치비 1,000,000원(통장입금)
잔디공사 포크레인 1,100,000원(통장이금)
잔디구입 1,300,000원(통장입금)
인부 850,000원(통장입금)
간식비 200,000원(통장입금)
표지석과 입구정비
비석값 (글씨각인포함) 4,340,000원(통장입금)
흉관 150,000원(통장입금)
포크레인 550,000원(통장입금)
인부 150,000원(통장입금)
기타지출
또와식당 70,000원(현금지급)
또와식당 117,000원(현금지급)
완섭식사준비 200,000원(현금지급)
잔디칼구리 5,000원(현금지급)
고속도로 통행료 17,000원(병렬지급)
세차비 70,000원(병렬지급)
유류비 110,000원(카드사용)
제수물건 구입 400,000원(통장지급)
제수물건구입 107,400원(카드지출)
총지출 15,236,400원
후원금현황 15,100,000원
부족분 136,400원
부족한금액은 수도권종친회 회비에서 충당합니다.
부족사유
당초 80평잔디를 구입사용하려 했으나,
진입로를 최절부 산소옆으로 포크레인 진입로로
하다보니 잔디가 훼손이 되어 잔디 50평을
추가 구입하여 500,000원이 처음예산과 달리
초과되었습니다.
그리고 포크레인이 올라가는 길은 흙이 패여서
경사로에는 비가 오면 물길이 생겨 파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종회 황직상 총무님의
창고에 있는 야자매트 7장을 가져다가 길에
깔았습니다.
2일간 숙박은 8명이 풍수암에서 했습니다.
숙박비 20만원은 절감되었고,
예상식대를 음식점에서 해결하는 조건으로
385,000원으로 정했는데, 2일간 식사만 할 수는
없고 술도 먹어야 하기에 돈이 더 필요 할것인데
아침과 저녁은 풍수암에서 삭사와 주류를 준비
하여 먹어서 387,000원을 사용하였습니다.
숙박비와 주류대는 절약이 된것입니다.
후원금이 남으면 추후 송간공의 청도와 단양의
비석 세우는데 사용코저 하였으나,
막상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예상데로 지출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의 스타렉스리무진 차량도 산길을 오가면서 엉망이
되었기에 세차를 하여 70,000원을 지출하였습니다.
4년동안은 영주를 오고갈 때 차량의 청소가 필요해도
제 개인돈을 사용했는데, 이번만은 세차비를 사용했습니다.
이로서 송간공 가토사업의 총수입과 지출사항을
보고드렸습니다.
수도권종친회장 황윤진
사무총장 황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