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댄스 스포츠
표 운
시월의 어느 날, 탁 트인 파아란 하늘이 높고 청아하다.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지고 싶은 날이다. 그 하늘 아래에서 세 쌍의 노부부가 라틴 댄스 룸바를 한 곡 막 끝냈다.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며 사뿐사뿐 추고 있는 노부부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유유히 연못을 유영하는 금붕어인가 하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홍학과 같은 모습이라고 나 할까… 국화향이 잔잔히 흐르는 정원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이들의 춤에 탄성을 자아내며 박수를 보낸다. 이윽고 주민들도 함께 어울려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그날 수지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가을 만끽 축제’는 절정을 이루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은퇴한 부부 교사다. 이 분들은 노년을 보람 있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취미 생활로 처음에는 영어회화와 컴퓨터 공부를 해 보았으나 댄스 스포츠만큼 흥겹고 잘 맞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댄스에 심취한 지 8년이 된 이 들은 왈츠와 탱고와 같은 모던 댄스에서부터 룸바, 자이브 같은 라틴계열까지 모두 출 수 있어 그 실력이 대단하다. 지금은 교회 시니어스쿨에서 오륙십 명의 교인을 지도하면서, 또한 교회 노인학교와 양로원을 방문하여 외롭고 쓸쓸해 하는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봉사 활동으로 보람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 부부는 젊은이 못지않게 항상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모든 이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노래 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한다. 예부터 마을잔치 같은 데서 덩실덩실 어께 춤을 추며 흥과 끼를 발산하여 왔다.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춤사위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어 온 댄스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춤도 시대의 기나긴 흐름과 사회 변화에 따라 다양한 댄스로 발달해 왔다. 오늘의 라틴 댄스는 카리브 연안의 섬 원주민과 신대륙으로 팔려온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자연스럽게 풀어 낸 춤이다. 노예생활을 하던 이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잊고 시름을 달래기 위해 추워 온 춤이 오늘 날 독특한 율동방식과 생동감 넘치는 춤으로 발전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서 룸바는 사탕수수로 유명한 쿠바의 대표적인 춤으로서, 크고 작은 타악기의 연주로 이루어진 흑인 특유의 미묘한 리듬과 이곳을 지배했던 스페인 사람의 정열적인 멜로디가 함께 조화를 이룬 매혹적인 춤이다.
나는 신장 암을 수술한 후 이를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하여 이 분들의 권유로 교회 시니어 스쿨에서 댄스 스포츠를 배우게 되었다. 음악과 함께 유연하게 스텝을 밟으므로 몸에 무리함을 주지 않고 나빠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좋은 운동이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2차로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을 때는 몸과 마음이 너무 쇠약해져 있었다.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6개월 간 엿새 씩 입원하는 동안 식욕 감퇴, 구토, 설사와 어지러움 증, 무력증이 찾아와 수술보다 더 어려운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퇴원하고 계속해서 아내와 함께 댄스 스포츠를 배우면서 나의 몸과 마음은 차차 안정을 찾게 되었다. 어쩌면 나와 같은 환자에게는 이 이상 더 좋은 운동이 없으리라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언젠가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교습소로 향하기도 하였으니까, 항암 주사로 인한 무력증으로 힘이 들었으나 즐거움 속에서 아내와 같이 댄스 스포츠를 배우니 힘든 항암 치료도 거뜬히 이길 수 있었다.
넓은 홀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추는 댄스 스포츠는 신체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3분 정도의 곡을 추는데 8백 미터의 거리를 뛰는 호흡량과 맞먹어 유산소 운동으로서는 매우 탁월하다고 한다. 칼로리 소모가 많아 체중을 줄이게 하고 몸매를 날씬하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탄력 있는 몸매를 유지해 주면서 심폐 지구력의 강화와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도 예방할 수 있단다. 항상 음악과 같이 율동을 함으로써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다시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는 댄스가 탈선의 온상으로 매도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 외교관이나 해외 주재 상사원의 외교활동에서 마저 큰 지장을 받을 정도로 댄스를 경원시하기도 했다. 몇 해 전 어느 문학단체 가을 세미나가 열린 날 댄스 스포츠를 잘 추는 한 회원과 즉흥적으로 '왈츠'와 '차차차'를 추었다. 우리 회원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모습으로 보였는가보다. 춤을 추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나의 뒤통수를 향해 어느 회원이 ‘그 아내 속 많이 썩혔을 것 같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춤이 관객들에게는 그런대로 잘 추게 보였는가보다. 나는 그 모습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건전한 만남과 사교활동의 한 매체로 인정할 정도로 우리사회도 많이 변모하고 있다.
이성간의 자연스러운 ‘동작 언어’는 세련된 예의와 훌륭한 파트너십이 요구 된다. 남녀 한 쌍이 추는 모습은 아름다운 선과 공간미를 창출한다. 그래서 지금은 풍부한 예술성과 품격 높은 도덕적 가치관을 지닌 실내 스포츠로 공인되어 올림픽의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댄스 스포츠는 국제 표준 용어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댄스 스포츠의 열기가 대단하다. 대학에는 댄스학과가 신설되었고, 문화센타와 구민회관의 강좌에도 금세 정원이 찰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최근에는 중.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으니 이제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생활 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오늘도 연습하고 있다. 내일 노인학교 행사에 초청받았으니 이들과 어울려 즐거움을 품어 내야겠다. 댄스를 통한 봉사는 엔돌핀이 많이 생성되어 면역을 높여 주고 있으니 내 건강도 점점 좋아지리라.
댄스 스포츠, 아직 나에게는 낯선 단어이지만 이는 아내와의 변함없는 사랑의 표현이며, 암을 이길 수 있는 건강증진의 디딤돌로 여겨진다. 아니 봉사를 통한 정열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스포츠예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끝)
일산 어린이 쉼터를 위문 갔을 때 춤과 노래로 원생들과 즐겼다. 우리들도 라틴 댄스를 하다. 룸바의 '뉴욕'
아그라(Agra)의 사랑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것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많은 관객을 울린 70년대 영화 ’별들의 고향‘의 주제곡이다. 지금도 곡이 좋아 널리 부르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서라면 불가능한 것이라도 해 주겠다는 남자의 순수한 사랑의 표현을 우리가 공감해서가 아닐까?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여자에게는 약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고 또 그것이 인간 능력을 벗어나더라도 이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남자의 마음 아닌가?. 그래서 남자의 뜨거운 사랑은 여인을 감동시킨다. 인도 아그라에서 나는 영혼을 울리는 남자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았다.
아그라 행 첫 기차는 아침 6시 30분이다. 새벽의 뉴델리 역은 벌써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상인들의 호객 소리, 소란한 인파의 흐름, 그 사이로 소들이 점잖게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다. 뉴델리의 새벽은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아그라로 가는 객차 안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대부분 새벽잠을 설친 부부나 연인들로 보이는 쌍쌍들이다. 그 곳이 어떤 곳이기에 많은 사람이 새벽 기차를 탓을 까 궁금했다.
2시간 후, 아그라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우유 빛 ‘대리석 궁전’을 보는 순간 모든 피로는 봄 눈 녹듯 사라졌다. 힘겹게 이 곳을 찾아 온 나에게 환희와 감탄을 안겨준다. 더군다나 이 궁전 같은 건물이 한 여인의 무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380년 전 인도를 통치했던 무굴제국의 다섯 번 째 왕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한 왕비 ‘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통히 여기고 그녀와 같이 지낼 미래의 궁전을 지었던 것이다.
빼어난 미모도 아니고 작은 키에 피부도 까만 여인, 다른 왕비의 미모에 비하면 너무나도 볼품없는 여인이었으나 맑은 목소리와 넘치는 애교, 그리고 꾸밈없는 밝은 성품으로 그녀의 지성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였다고 한다. 샤 자한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해서 언제나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미리 준비하는, 언제나 샤 자한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그런 여인이었다.
샤 자한도 자신의 마음을 읽고 따르는 착한 그녀를 혼신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다. 더군다나 17년 동안 무려 열 세 명의 자식을 낳아 그를 흡족하게 해 주었다. 그런 왕비가 열네 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샤 자한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임종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왕비 뭄타즈 마할> <왕 샤 자한>
22년에 걸친 공사 끝에 아그라의 야무나 강 남쪽에 기념비적인 타지마할(Taj Mahal)이 세워지게 된다. '왕관모습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무덤은 이탈리아와 터키에서 수입한 최고급 대리석과 중국과 아라비아에서 갖고 온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옥으로 장식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놀랄 정도의 섬세한 조각과 백색 대리석의 정교한 기술은 더 이상 다른 건축물과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주위의 빛과 분위기에 따라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같이 변화하는 불가사의한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가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로 추천된 타지 마할-
정작 샤 자한은 말년에 아들에게 쫓겨나 아그라 성채의 작은 방에 유폐되었다. 타지마할 건립에 너무나 많은 국고를 탕진했기 때문이다. 무려 8년 동안 이 방 창가에서 멀리 안개와 구름 속에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내는 타지마할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아내를 그리워 하다가 75세의 나이로 그녀의 곁으로 갔다. 뭄타즈 마할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타지마할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아그라를 먼저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랑과 애달픔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 아그라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아그라의 사랑을 통하여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였다.
독일 남부 퓌센에도 영혼의 사랑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다. 알프스 산록의 가파른 절벽과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이 곳에 ‘백조의 성‘이 있다. 보는 사람이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하얀 아름다운 성이다. 19세기 중엽 바이에른 국왕 루드비히 2세는 오스트리아 왕비 엘리자베스를 못 잊어 하고 그녀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중세의 동화 같은 이 성을 17년에 걸쳐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루드비히 2세는 국고 탕진으로 권좌에서 쫓겨 난지 사흘 만에 호수에 빠져 죽었다.
그가 죽은 후 엘리자베스 역시 레만 호반에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비극적인 두 사람의 슬픈 운명이 지금도 안타깝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마 저 하늘에서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매일 밤마다 이곳에 내려와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성의 아름다움에는 한 남자의 영혼의 사랑이 있었다.
(백조의 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남자의 순수한 모습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환희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고통과 좌절에서 얼마만큼 이를 견딜 수 있는 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랑은 영혼을 앓는 사람들의 몫이다.
영혼의 사랑은 슬픔과 고통을 겪으면서 승화되는 것이다. 이들을 떠올리면 그리움이 싸하게 솟아오른다. .
영혼의 사랑을 생각하며 오늘도 전 세계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아그라와 퓌센으로 몰려들고 있다.(끝)
희망은 힘이다
표 민웅
그토록 기다렸던 항암 치료를 끝내는 날이 왔다. 가슴이 설렌다.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지난 해 2월에 신장 암 수술, 그 해 7월에 대장암 수술, 그리고 때로는 수술보다 더 힘들었던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지난 1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기간이었다. 두 번이나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겪은 두려움을 이겨나가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재발 방지를 위하여 의학적 치료인 항암 주사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주치의를 믿고 고된 치료를 끝까지 견뎌내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의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10여명이 입원한 성모 병원 726호 암 병동에는 희미한 불 빛 속에 동료 환자들이 곤한 잠을 자고 있다. 모두들 지쳐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닷새씩 여섯 번 6개월 간 입원 치료를 받다 보니 이들과 오랜 친구처럼 친숙해 졌다.
비록 내일 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암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환자들이지만 같이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 서로를 격려하기도 하였고, 두려움을 넘어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전우애가 아마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날 아침 동료 환자들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길로 인사를 건넨다. 마지막 항암 주사를 놓는 간호원의 손놀림이 가볍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수술보다 더 어려운 고통이 밀려오기도 했다. 식욕 감퇴, 구토, 설사, 탈모에서부터 백혈구 감소와 어지러움 증, 밤이면 어김없이 온몸을 뒤트는 고통이 찾아오곤 했다. 이럴 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나 혼자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이겨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의 권능이 나를 붙들어 주셨고, 아내와 가족의 사랑, 친구와 문우들의 격려, 사회의 동료와 학회 회원들의 염려가 있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이제는 재발이 되지 않는 한 더 이상 의학적 치료 방법은 없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3개월에 한 번 씩 정기 검진과 의사의 조언을 받아 내 몸을 내가 지켜야 한다. 암과의 싸움은 5년 이상 장기전을 해야 완치가 가능한 병이다. 그러기 위하여 무질서했던 지나간 생활을 버리고 이제는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재발을 막고 건강을 다시 찾아야한다.
처음 암으로 진단받았을 때 정신적으로 무기력해 지면서 두려움과 분노와 불안이 전신을 엄습하였다.
엘리노 루즈벨트 여사는 ‘두려움과 맞서는 모든 경험을 겪어낼 때마다 우리는 강한 힘과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암의 파괴적인 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기 쉽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면역을 높이는데 게을리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음식을 조절하고 적절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신앙생활, 창조적인 사고와 봉사 생활 같은 정신적인 삶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간암 말기 환자 김 모씨는 마지막 봉사라도 하기 위하여 말기 암 환자들의 병동에서 호스피스로 자원 봉사를 하였다. 그런데 보살핌을 받는 암 환자들은 죽어 나가고 있으나 간병하고 있는 말기 간암 환자는 생명을 유지하고 1년 후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적이 일어 난 것이다. 마더 테레사가 했듯이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몸에 면역 물질이 많이 생긴다. 학자들은 봉사를 하면 엔돌핀이 웃을 때 보다 백배나 더 생긴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테레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건강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아직도 내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목적의식과 긍정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년여 투병 중에도 회사 일을 계속하면서 발병 직전 맡은 학회의 행사도 무난히 수행하였다. 학회가 주관한 인도와의 회의를 위하여 뉴델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수술 후 한 두 달 만에 순천으로, 부산으로, 그리고 해외까지 움직일 수 있게 됨은 사명감과 봉사의 마음으로 가능하였다.
교회의 성도들이 수술과 항암 치료 중 치유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다. 하나님의 권능과 성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도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한 주일에 한번씩 중보기도실에 가서 나와 같이 힘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한달에 두 번 씩 성모 병원 726호 암 병동을 찾아가 전우애를 나누고 있다. 나의 희망을 그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봉사를 하면서 나의 병은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일상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꼭 빼놓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희망을 찾는 것이다. 이제 희망이야 말로 내가 호흡하는 산소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었다.
이 번 일을 겪으면서 그동안 앞만 바라보고 바쁘게 살아 온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자그마한 일에도 항상 감사하고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모든 일을 넓게 또 아름답게 생각하고자 한다.
이 해인님의 시와 같이 바다처럼 내 마음도 한없이 넓어지고 싶다. 늘 부서질 준비가 되어 있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더 낮아지고 깨지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