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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3) /
"낮아지는 성육신의 사명을 다하라!“
☞ 말 씀 : 요한복음 1장 14절 - 18절 (신약 p.142)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멘!
오늘 본문 요한복음 1장 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린 신학적 용어로 ‘성육신’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까? 왜 성육신 하시어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성육신이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낮아지셔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는 낮아지는 복음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낮아지는 섬기는 삶을 살 때,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거룩 거룩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이요,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이시요, 사회에서도,
하나님이시오, 학교에서도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직장에서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등경 위에 있는 세상의 빛”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 가운데 너희가 들어가 빛을 비취라. 빛을 비춰 사람들을 살리라.” 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육신의 사명,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두움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
이런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은 우리가 성육신하여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할 사람들이며, 온전히 사랑으로 품고, 생명의 빛을 비추어 온전히 변화시켜야 할 어두움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를 밝고 편한 곳으로,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를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성육신한 성도,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할 성도의 기도는 아닙니다.
성도는 높은 자리가 아니라 성육신한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고, 밝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어야 할 생명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의 주변에도 항상 세리, 창녀, 중풍병자, 귀신들린 사람,
아니면 앉은뱅이와 같이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사람들만이 들끓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의 빛, 그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섬겨야 할 문제 많은 어두움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요,
어두움이 있는 곳에 가서 생명의 빛을 비추어야 할 사명을 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이 많은 것이, 참된 교회의 표지입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쓰러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주님께서는 가장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들을 건지고 치유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부름 받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낮아지는 성육신의 사명,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므로,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은 하나님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중반절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임재하는 곳에 자유함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 받게 되면,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에게 임한 영광은, 원초적인 영광이 아니라, 반사되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됩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 내려올 때에,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씀한 일로 그의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나타났는데, 정작 모세 자신은 그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40일 동안 체험한 일로,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수건으로 그 얼굴을 가리게 됩니다.
똑같은 예가 사도행전에서도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 말씀을 보니까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을,
주목하여 바라보았더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더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보좌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더니, 그 영광이,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에 반사되어서,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던 것입니다.
설교자는 강단에 설 때마다 스데반 집사님의 영광을,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보게 됩니다.
성도님들은 앞 사람의 뒷모습만 보지만, 설교자는 설교하면서 성도들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세상에 찌들어 피곤하고 지친 얼굴들이,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그 얼굴에 비취게 되면서, 점점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 영광으로 우리의 얼굴이 변할 때, 우리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사라지면, 독생자의 영광이 그 예배에서 사라집니다.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사라지면, 그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영광이 없어 답답하고, 사망의 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최대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최대의 목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일입니다.
성경속의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 하나님 영광이 임했고, 찬양이 있는 곳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영광을 가지고 복음전하여 삶의 현장을 정복하고,
그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찬양가운데 나타나고,
그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기도하므로 귀신이 물러나고, 기적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계시록에, 24장로가 면류관을 벗어 어린양의 보좌 앞에 던지며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받은 영광이 있어야 돌려 드릴텐데, 받은 영광이 없어 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돌려 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 그 빛난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 그 모든 영광을 주께 돌려드리며 살아갑시다.
우리의 매일의 삶 가운데 영혼이 소생케 되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임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 영광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고, 세계 속에 나아가 많은 영혼들을 살립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를 따라서 해주십시오.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여주심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교회, 가정, 직장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라지게 만듭니까?
죄입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다함께 하나님을 큰소리로 찬양합니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하. 아멘! (사 6:3)"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이사야가 서 있습니다.
그때 이사야가 깨달은 것은,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게 하는 죄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게 만드는 죄를, 천사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바 핀 숯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이사야의 악이 제하여졌고,
이사야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포되므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악을 사함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교회가 강력한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죄 사함을 받은 교회가 가장 강력한 교회입니다.
악한 마귀는 교회가 영광을 잃고, 우리 성도들이 무능하게 되도록 범죄케 만듭니다.
그래서 로마서 3:23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예배가 회복되고,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립니다. 능력을 파괴하고,
우리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됨을 파괴해 버리고, 에덴동산을 파괴했고, 예루살렘 성을,
파괴해 버렸고,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해 버렸고, 지금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토하듯이 고백함으로, 죄를 뽑아 내야 능력 있는 성도가 됩니다.
오늘 본문 16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아멘!
우리 예수님은 충만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세상의 모든 충만함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만 나아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골 1:19,2:3,9)
예수님 안에 영생이 충만하게 있습니다. 영원한 평안의 충만함이 있습니다.(요10:28, 14:27)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충만함이 있습니다.(요 15:11, 20:22)
그러므로 물질적인 것, 영원한 것,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가난한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갖기를 원하십니다.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영원히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온갖 좋은 것이 철철 넘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엉터리 신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 안에 충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구하는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1절에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그런데 우리가 왜 이 모든 것들을 누리지 못합니까?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입니다. /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겠다고 욕심을 부립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얻겠다고 살인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얻겠다고 시기를 합니다. 그러나 욕심, 살인, 시기에서는 얻지 못합니다.
전능하시고 충만하신 예수님께 구하여야만, 많은 것을 얻게 되고, 그것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일꾼이 됩시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에 능력이 부족합니까?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에 지혜가 부족합니까?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능력과 지혜뿐만 아니라, 부족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오늘 본문 14절 - 17절 말씀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진리와 함께 있어야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진리는 거부하고 은혜 얻기만을 간구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는 값싼 은혜가 되어버리고, 우리의 신앙이 기복신앙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와 진리로 함께 충만하고, 그 충만한 은혜로 진리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받은 충만한 은혜, 곧 심령의 부흥과 양적 성장의,
은혜가 충만하고, 마음의 평안과 물질의 복도 풍성하고, 건강의 은혜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은혜와 축복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위해 헌신되어야 할 은혜와 축복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이 세상에는 상처받고 쓰러져,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건지고, 치유하고,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서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고,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성육신의 사명,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용욱이라는 아이가 어느 백일장에서 ‘장원상’ 을 받은 후,
그가 쓴 글을 읽고 저는 울었습니다. 너무 가슴 찡한 글이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 구로 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 아시지요? /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 방문에 1, 2, 3, 4, 5... 번호가 써 있어요. / 우리 집은 32호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호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요. / 우리 식구는 외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4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 대로 라면 박스만 해서, 4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 2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죽었다고 말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구호 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마셔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처럼 엉엉 우시고,
우리를 보고 "이 애물단지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자" 하고 말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 부활절 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거든요.
저는 죄가 없는 사람인줄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저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술집 작부' 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활절 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주세요'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 날 교회에서 찐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 전도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 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더 올려달라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50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이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그리워하면서 불행한 지금의 상황을 썼거든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그리워하시고 계실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 날 제가 1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하나도 없다고 할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였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수가... 이렇게 고마운 분이 계시다니" 말씀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오셨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 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50만 원도 주셨구나." 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예요.
대예배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주신 돈을 꼭 갚아 드린다고 말이야" 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돌봐주세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용욱이 드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이 세상에는 상처받고 쓰러져,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건지고,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름을 받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셨습니까?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성육신의 사명,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