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낭만논객’ 김동길
[아무튼, 줌마]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2.10.08
지난 4일 소천한 김동길 박사는 ‘멋쟁이’로 유명했습니다. 단정한 양복에 색색깔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가슴엔 손수건(행커치프)을 꽂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였지요. 제가 TV조선에서 ‘시사토크쇼 판’을 잠시 진행할 때 첫 손님이 ‘월요일의 논객’으로 불리던 김동길 박사였는데, 지팡이를 집고 느릿느릿 등장한 노신사가 대본 혹은 메모지 한 장 없이 특유의 유머와 직설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모습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비넥타이만 이삼백개 있다는 김 박사는 ‘낭만논객’으로도 큰 사랑 받았지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TV조선 ‘낭만논객’을 다시보기 하며 혼자 웃을 때가 많은데요, 김동건 아나운서와 가수 조영남씨가 티격태격하면 이를 중재하기 위해 위트와 너털웃음을 동원하던 김 박사의 여유와 수완을 따라 배우고 싶을 정도였지요.
평생 독신이었지만 “여성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짓궂은 답변처럼 김동길 박사는 중장년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저희 친정엄마도 왕팬 중 한 사람인데, “나이가 들어도 품격을 잃지 않는 최고의 신사”라며 좋아하셨죠. 어떤 여인들은 멋진 콧수염의 그를 할리우드 배우 말런 브랜도에 견줄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요.
‘낭만논객’에서 저를 울린 건 박사의 어머니 이야기였습니다. 노다지를 찾겠다며 집 떠난 아버지 대신 남의 집 빨래하고 삯바느질하며 생계를 이어간 어머니는 가난한 형편에도 딸 김옥길을 공장 대신 학교로 보내 총장으로, 장관으로 키워낸 여장부였지요. “나이가 구십이어도 삶의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어머니가 그리워진다”던 김 박사는 어머니를 품에 안고 운명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통을 다 끝내고 마지막 숨을 길게 내쉬었을 때 어머니 얼굴에 감돌던 미소를 잊을 수 없어요. 평생 가난과 싸우다 자식들이 성공하니 또다시 병마와 싸워야 했던 어머니의 미소는 ‘나는 인생을 승리한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읽혔지요.” 그는 이제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을까요?
이번 주 뉴스레터에는 <Why?>와 <아무튼, 주말>에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을 연재했을 만큼 인연이 깊은 김동길 박사의 인터뷰를 배달합니다. 2013년 봄 선우정 기자와의 대담으로, 결혼을 안 한 ‘진짜’ 이유와 평안도 출신인 김 박사 집의 슴슴한 냉면 맛의 비밀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