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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 29일. 사순절 마지막 수요예배 설교 +
+ 제 목 :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오신 예수님!”
+ 본 문 : 마가복음 10장 42절 - 45절 (신약성경 72쪽)
4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복의 근원으로 살리라. 그러므로 나는 축복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나눔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섬김의 통로로 살리라. 아멘! 아멘!
“인사만 잘 해도 먹고 산다.”
- 반미고잘 / “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마지막 수요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를 나누어서,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나요?
우리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친히 오셨습니다. /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 죄 값을 대신하는 대속물로 자신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 우리를 풍성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오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이 세상은 대속물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행동, 모든 물건에는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사려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사려고 값을 지불하는 것이 대속입니다.
무엇인가를 심으면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거두기 위해서는 대속물이 있어야 합니다.
대속물이란 말은 헬라어로 “뤼트론” - ‘해방하다. 결박에서 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는 대속물인 짐승을 대신,
죽게 함으로 사함 받고 살아나게 됩니다. 그렇게 나의 죄 대신 죽는 동물을 대속물이라 합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시는 대속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점은 대속물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대속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 이란? 온 인류의 대속물,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부산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신실하신 집사님입니다. 어느 날 손님 가운데,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내리신 분이 있어, 그대로 경찰서에 갖다 주고 다시 운행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경찰서에서 와 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영업을 중단하고 경찰서로 갔습니다.
지갑 주인이 경찰과 함께 있었습니다. 경찰이 말했습니다. "지갑에 40만원이 들어 있었다는데,
10만원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30만원 내놓으세요." - 집사님은 억울하였습니다. 시간을 내어 신고하고, 지갑과 핸드폰을 경찰서에 갖다 주었는데 도둑놈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해도, 지갑 주인은 분명히 40만원이 들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집사님은 당당하기에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30만원 꺼낼 가질 생각을 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10만원 남기고 신고했겠습니까? 차라리 지갑을 버리고 40만원 다 가져가지요.
나 이제 택시회사에 가서 부산 택시기사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앞으로 택시에서 지갑을 보거든,
절대로 신고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정직하게 신고하면 억울한 일 당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이 집사님의 진심을 받아들였습니다. 거짓말한 지갑 주인은 혼나고 내쫓겼습니다.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감동시킵니다. 그래서 진실이 이깁니다. 이것이 보상입니다.
진실을 대속물로 지불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이런 대속물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예수님의 목숨은 사람을 구원시켜주는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민족, 인종, 학력,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새 생명의 역사의 복음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의 생명을 가지고 와서 대속물로 우리를 위하여 지불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기 전 구약에서 대속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였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 대속물입니다. 구약은 짐승이 죽었고, 신약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짐승이 죽든 예수님이 죽든,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누군가가 사는 것이 대속물의 법칙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교회의 종탑에는, 양과 십자가를 같이 조각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교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 교회를 지을 때에 건축비가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몸으로 봉사하며 짓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종탑위에서 일하다가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습니다. 마침 양떼들이 종탑 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양위에 떨어져서 양이 죽고 그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아! 양이 죽어야 사람이 사는 구나!” - 그렇습니다. 구약시대는 양이 죽어야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신,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구약을 의미하는 양과 신약을 의미하는 십자가가 같이,
종탑 위에 조각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속제물은 양이지만 신약의 대속제물은 예수님입니다.
어떤 여자 분이 목에 십자가 목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교회 다니신가 보죠?”
그런데 그 여자 분의 대답은 “아니요.” 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목에 걸었나요?” “그냥 예뻐서요.” 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십자가는 목에 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는 것이랍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대답합니다. “가끔 십자가가 등으로 갈 때도 있어요.”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가 예수님 믿을 때요. 그렇게 등에 지고 살아야 구원받습니다.”
십자가 목걸이 하신 분들, 대속물이 되신 십자가는 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네 가지 면에서 대속물이 되셨다고 이사야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히브리서를 신약 속에 구약이라고 한다면, 이사야서는 구약 속에 신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중에서도 특별히 53장은 신약 중에 신약이요. 예수님에 대한 예언 중에 예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켐벨 몰간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다."
그리고 신학자 델리취도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이다."
종교개혁자인 칼빈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력서다."
우리 사람들이 평안을 좋아하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밝게 살기를 좋아하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밝음을 주시려고 어둠속에서 죽으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받기를 좋아하기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전부인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더 살려고 하기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위에 있기를 더 좋아하기에, 우리 예수님은 우리 대신 친히 낮아 지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섬김 받기를 더 좋아하기에, 우리 예수님이 우리 대신 친히 섬기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허물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허물이 무엇입니까? 모르고 지은 죄를 허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까지,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찔리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이렇게 모르고 지은 죄가 허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지은 죄는 물론, 모르고 지은 허물까지도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허물이 아니라, 우리들의 허물을 없애 주시려고 찔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창에 찔리고 가시에 찔리시므로, 우리 허물을 대속하시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러 오신 미국 선교사님이, 어느 시골 농부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늘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선교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에 같이 가보자고 해서 갔는데, 닭장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한 마리씩 기어 나옵니다.
그런데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리니, 푹 쓰러집니다. 죽어 있었습니다. 그 농부가 말했습니다.
“저 암탉의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암탉의 몸에서 피를 다 빨아먹었습니다.
어미 닭은 족제비가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었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이 예수님을 안 믿는 농부에게 서툰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저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시느라고,
십자가 고통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허물의 대속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죄악의 대속물도 되어 주셨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허물은 모르고 지은 죄입니다. 죄악은 알고 지은 죄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온 몸이 고난으로 몹시 상하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으로 머리가 상하셨습니다.
채찍과 못 박힘으로 온 몸이 상하셨습니다. 창에 찔리심으로 옆구리가 찢어져 가슴이 상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렇게 상하심은,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죄악의 원어는 원죄입니다.
때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원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이 고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저와 여러분의 원죄를,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사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장자요.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평화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은 우리 허물을 없애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죄악을 씻는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가야바와 유대인들에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도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도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평화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영원한 평화입니다.
우리 안에 이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평안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병을 고치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우리 예수님은 약 3시간 동안 채찍에 맞으시고,
약 9시간 동안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병을 고치시기 위한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스스로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아멘! 예수님은 우리의 병도 고치시려고,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덴마크의 윌리라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눈병을 고치는 데에는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안과계의 최고 전문 의사였습니다.
안과의사 윌리는 사회사업가이며, 구세군을 창설한 불붙는 전도자 캐서린 부드의 전기를 읽고,
크게 감격하여 복음전도를 위해서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안과의사로 성공한 그였기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돈도 포기하고, 명예도 버렸습니다. 선교사가 되어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한 후 선교부로 가서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의 소원대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 곳은 눈병환자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큰 안과 병원을 설립하고,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하여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고침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30년간을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다가 노령으로 은퇴하였습니다. 네델란드의 여왕은 그에게,
그 나라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 안과 의사로서의 의술과,
복음에 불타는 열정과 주님이 함께 하시는 병 고치는 신유가 겸한 선교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기적 같이 고침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고, 우리가 고침 받습니다.
세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똑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장례식에 조문을 온 친구들이 무엇이라고 말해주면 좋겠습니까?” 한 사람이 먼저 말했습니다.
“휼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해 주었으면 합니다.” /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까운 사람 죽었다.”
마지막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장례식에서 이런 말을 듣기 원합니다. 앗! 이 사람 움직인다.”
사람들은 병들었을 때에 모두 고침 받아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병에서 나음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 - 허물의 대속물, 우리가 알고 지은 죄,
- 죄악의 대속물, 우리에게 하늘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 평화의 대속물, 우리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건강을 주시고, 병들었을 때에 치유받도록 - 질병의 대속물로 주려고 우리 예수님,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받습니다.
이 모든 예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아멘!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 예수님처럼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면서 살아갑시다.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
허물과 죄악의 대속물, 평화의 대속물, 질병 치유의 대속물로 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대속물로 살아가고, 하늘의 평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가지는 대속물,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치유의,
대속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