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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12
유럽의 시대별 그림들
▲ 작품1 - 알바로 피레즈 데보라, ‘세례 요한, 대야고보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1415년쯤.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세계 여러 나라의 운동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펼쳐 보였던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림픽 기간 경기를 보려고 밤잠을 설치고, 또 선수들을 응원하느라 손에 땀을 쥐곤 했을 텐데요. 이제는 올림픽에 쏟았던 관심을 파리가 있는 유럽의 미술 쪽으로 옮겨볼까요? 마침 서울 여의도에 있는 알트원에서 전시 '서양 미술 800년展-고딕부터 현대미술까지'가 진행 중이어서, 유럽 각국의 미술 작품을 시대별로 볼 수 있어요.
템페라 기법
'유럽의 전통 회화'라고 하면 우리는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떠올립니다. 유화는 색소 가루인 안료를 건조 오일에 혼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에요. 캔버스와 유화 기법이 세상에 소개된 것은 오래됐지만, 본격적으로 화가들이 그림에 활용해 발전시킨 시기는 15세기입니다. 캔버스는 이탈리아 화가들이, 유화는 네덜란드 화가들이 처음 시도했다고 알려져 있고 15세기 말에 이르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돼요. 캔버스와 유화 기법은 15~17세기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을 꽃피우는 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이전 화가들은 캔버스 대신 나무판자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건조 오일 대신 달걀노른자에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템페라(tempera) 기법이라 불러요. 달걀노른자는 금세 굳어지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화가들은 제한된 색채 몇 가지만 써서 작업을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했어요. 중간에 새롭게 생각나는 것이 있어도 고치기 어려웠고, 그림에서 전체적으로 노르스름한 느낌이 났어요. 청명한 하늘을 그리기엔 좋지 않았죠. 다행히도 중세의 그림에는 현실의 푸른 하늘을 담아내는 일이 매우 드물었어요.
〈작품 1〉은 나무판자 위에 템페라로 그린 것입니다. 이탈리아 피사의 한 작은 마을에 있었던, 산타 크로체 교회의 제단화예요. 제단화는 예배를 위한 공간에 사용되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그림을 말합니다. 제단화는 금가루와 금박을 이용해 성스러운 광채를 표현하는데요. 그림 속 인물들의 머리 주변에 둥그런 황금 후광이 표현돼 있는 것을 통해, 이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중앙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예요. 왕관을 쓴 채 다소 무표정하게 앉아 있네요. 양옆으로 기독교 성자 두 명이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
유화 기법이 템페라 기법을 대체하게 되면서 유럽 화가들은 보다 여유롭게, 명암과 색채의 풍부한 표현에 몰입할 수 있게 됐어요. 명암법은 빛을 받는 부분은 환하게, 그림자 부분은 어둡게 칠해서 평면에 그려지는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에요. 이탈리아어로 키아로스쿠로(밝음과 어둠이라는 뜻)라고 해요. 사람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에도 효과적이지요. 명암법은 낮의 빛과 그림자뿐 아니라,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촛불을 그리듯 명암을 강렬하게 대비하기도 합니다. 예를 살펴볼까요?
〈작품 2〉는 어두운 배경과 환한 얼굴이 대조적으로 표현된 그림입니다. 바로크 미술 화가 미하엘 스위어츠(1618~1664)가 그린 '촉각의 우의화'예요. 그림 속 남자는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는 중인데, 귀엽고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고양이와 같은 방향을 쳐다보며 혀를 내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스위어츠는 이처럼 그림을 통해 여러 종류의 얼굴 표정을 다뤘어요.
〈작품 3〉은 여성이 차별받던 시기에 피렌체 아카데미(상급 미술 학교이자 미술가 단체)의 첫 여성 회원으로 활약했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6?)가 그린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젠틸레스키는 그림 속 인물이 어두운 무대 위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듯한 극적인 그림들로 유명해요. 이 그림은 마치 인물 앞쪽에 촛불이 놓여있는 것처럼 빛이 얼굴의 반쪽과 목, 그리고 손과 가슴까지만 환하게 비춥니다. 눈을 내리뜬 겸허한 표정과 그늘이 반쪽에만 드리워진 얼굴을 통해 뉘우침과 깨달음이 반반 교차하는 인물의 심리가 섬세하게 느껴집니다.
해골과 메멘토 모리
해골은 17세기 바로크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의 종착지는 죽음이기에 참으로 덧없다는 의미를 품고 있어요. 나아가서는 죽음을 상기하면서 삶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숨어있는 셈이죠.
전통적인 해골 소재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끌어온 대표적인 미술가는 영국의 데이미언 허스트(59)입니다. 허스트는 해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장식한 작품으로 유명해요. 죽으면 다 소용없기에 헛되고 무의미하다는 걸 나타내는 해골과 단단하고 영원하고 최고로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모순적으로 만나게 한 작품이었죠.
〈작품 4〉는 허스트가 창백한 죽음을 나타내는 플라스틱 뼈대를 다채로운 색으로 꾸며 해골의 의미를 유쾌하게 바꿔놓은 것이에요. 죽음을 기억하는 대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 작품2 - 미하엘 스위어츠, ‘촉각의 우의화’, 1655~1660년쯤. /지엔씨미디어
▲ 작품3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625~1630년쯤. /지엔씨미디어
▲ 작품4 - 데이미언 허스트, ‘성 비투스의 춤’, 2008년. /데이미언 허스트(SACK, Seoul 2024)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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